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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의 고수
우리 부부가 어린이집을 청산하고 아내는 친구회사로 나는 구직활동에
들어 갔어요. [유치원 정교사 2급, 보육교사 1급]
주경야독 어렵게 공부하고 전학년 장학생으로 고귀하게 얻은 자격증이지만,
실무 경험이 없어 이력서 경력란에만 적었고 지원 분야는 차량기사로
워크넷에 구직 등록을 하고 이내 면접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린이집 원장님의 첫 인상은 ...솔직히 우리동네 건어물집 아줌마랑
너무 닮아 ... 이력서를 찬찬히 살펴보시던 원장님은 이력서를 돌려주시며
유치원교사로 다시 등록하면 채용하겠다는 겁니다. 주업무는 차량운행이겠지만,
일단 교사로 등록하면 고용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니 이력서 수정하고 다시 제출하면 즉시 채용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력서 수정후 바로 출근을 했고 차량 운전 업무를 전임자로부터 인수받는 동안 나머지 시간을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 열심히 했습니다.
그 곳은 한때 원아수가 130명이 넘는 시설이었지만, 당시에는 전체 인원 30명 내외 그리고 초등 방과후 아동센터 아이들 10명 내외로 쇠락해 가는중이었고. 건물도 곳곳이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혀 어지러웠어요.
오전 운행이 끝나고 창고에서 기다란 낚시대를 찾아내서 거기에다 정전기 발생 먼지떨이를 달고
지하층부터 옥상까지 거미줄을 걷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거미들은 강제철거에 반발했지만,
원장님은 환호하며 놀라더군요. 어쩜 이리 맘에 쏙 드느냐고....
거미는 매일 새로 집을 짓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저녁 시간날 때마다 열심히 걷어냈습니다.
오르내리며 계단 난간을 닦아주고 쓰레기 더미가된 놀이터와 화단을 정비하고 밭을 새로 갈고
어지러운 정원수를 잘라 정리하고...참 많은 일을 했었고 원장님의 기쁨은 나날이 저에 대한 신뢰로 쌓여갔습니다. 우습게도 나의 운전실력은 장롱면허 10년에 우리 어린집을 하기 위해 아는 형님에게 두달 정도
개인 연수받은 정도라 가벼운 접촉사고를 자주 냈습니다만, 차는 고치면 되는거고
사람 안다치면 문제없다며 넘어 가주셨어요. 그래서 고마웠고 더 열심히~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저의 업무 범위가 엄청나게 늘어 나기 시작하더군요.
그 곳은 한 건물에 어린이집, 유치원, 아동센터, 나중엔 노인 방문요양시설까지 발을 넓힙니다.
그곳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힘들었지만, 배움이 컸습니다.
저의 공식 직무는 유치원 담임교사. 실제 하는 일은 차량운전.
부수적으로 하는 일은
1-어린이집 보조교사 2-아동센터 학습부진아 교육 3-아동센터 주말 견학
4-4시에 수업마친 센터 아이들 5시까지 관리하며 함께 놀아주기 (힘듬)
5-시설내 식재료 구입담당 및 푸드뱅크 음식 수령,
6-원장님 개인 비서역할(자녀들 유학비 송금, 통장관리, 은행, 구청업무, 원장 회의, 교육 대리출석,
7-시설밖 놀이터 청소와 정비, 화단 및 텃밭까꾸기. 원내 시설수리
나중에 방문요양 시설이 개소되자 노인들 병원이송까지 맡게 되었지요.
원장님은 내게 “나 선생님 일하시는거 너무 맘에 든다. 선생님은 절대 안짜르고 오래 함께 할거다”
라고 공언하시면서 절대 신뢰를 보여 주셨지만,
2년 가까이 함께 지내는 동안 나에게 많은 경험과 새로운 일들을 배우게 했지만,
존경보다는 실망이 컸고, 모든 일이 비리로 얼룩져 스스로 벗어나고 싶게 되었습니다.
절약의 고수라고 말한 것은 최저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데에는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여서입니다.
법을 어기는 듯 아닌 듯 온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말이죠.
고용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지원자만 채용함으로써 임금의 40%만 원장님이 부담합니다. 나머지는 국고로..
저처럼 자격증이 여럿 있으면 적시에 돌려쓰기를 합니다.
그곳의 유치원 담임은 사회복지사였습니다. 그래서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연구수업 보러 나왔을때는
제가 하루 담임을 해서 잘한다고 극찬을 받았고 격려도 받았지만, 양심에 찔려 부끄러웠습니다.
시설의 모든 아이들에게 차량운전을 하지만 기사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불렸기에 호칭은 문제 없었지만요.
조리사가 없어서 원장님이 반찬, 간식을 직접 조리를 하는데 너무 형편이 없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집에서 바찬을 싸가지고 와서 밥만 먹었지요. 멸치볶음을 했는데
팬속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한 덩어리. 그런 솜씨라 결국 조리사를 채용합니다.
그런데 조리사 지원자 이력서를 보니 전 음악학원 원장입니다.
역시 이력서를 수정 방과후 음악교사로 채용합니다, 그분은 점심, 간식 준비를 하고 3층에 올라가
아이들 피아노 가르치고, 다시 설거지를 합니다.
자부담 40% 의 임금으로 채용한 조리사의 겸업으로 아이들 특별활동 교습비를 챙기는 겁니다.
원장 부부는 대형교회의 장로였습니다.
주말마다 아이들 먹인다고 푸드뱅크에서 한가득 얻어온 빵을 원아들에겐 주지않고
모두 교회로 가지고 가서 배푼답니다. 인자한 장로님.....
아동센터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하니 나무라면서 몇 개 주더랍니다. 나눠 먹으라고...
원래 그 애들 몫으로 나눔 받은 것을...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 아동센터 아이들 동원해서 몇주간 노래 율동연습시키면서
교회행사 잘 해주면 문화 상품권 선물로 주겠다고 꼬였다네요.
그리고 행사 끝나자 모르쇠하는 바람에 아이들은 원장을 “마녀”라고 불렀습니다.
절대로 앞으로 원장 말 안듣는다고. 욕을 하더군요. 그 아이들 대부분 극빈 아동들입니다.
자신이 돌보아야 할 아이들은 외면하고 이용하면서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교회에 봉사하는
개신교 장로의 모습에서 혐오를 느꼈습니다.
열심한 신자인척 하면서 남편과 교회봉사하는 사진 액자로 만들어 걸어 놓았지만
실제 부부사이는 냉랭하고 어린이집이 한가한 날엔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남자가 찾아옵니다.
둘이서 소주를 나눠 마시고 몰래 스킨십도 하고...그 모습을 사회복지사가 보고 제게 말해줬답니다.
다시 환멸....
정부에서 시설 보조를 의해 쌀 두가마니가 나옵니다. 어떻게 차지했는지 그것을 가지러 제가 다녀왔습니다.
국민은행에서 월 80만원 지원이 있어 매달 받으러 갔습니다.
매 주마다 푸드뱅크를 통해 받아오는 빵이 100개 정도,
폐업하는 마트에서 몇상자의 식품수령....
그러니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없었습니다. 원장실 옆 창고에 차곡차곡
그리고 자신이 소비하거나 교회에 사랑을 베풀었지요.
그렇게 환멸과 자괴감 속에서 갈등하던 날 이제는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는
저에게 막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장롱을 옮기라는 것인데 너무 무거워 혼자 감당이 안되어 이사장과 둘이서 힘들게 옮기려는데
하는 말이 순화해서 옮기자면
“사내 둘이 그것도 못드나 그래가지고 어따 쓰겠냐. 쪼다같이 비켜라 내가 한다”
이런 말을 들으니 울컥해서 그 자리에서 나 그만둔다 하고
집어 던지고 나왔습니다. 원장 , 이사장 둘다 운전을 잘 하고 시간도많으니
나 없어도 지장 없을 것 같아 미련없이 던져 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일일이 다 밝히자면 숨이 막힐 내용도 많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만 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원장님은 어느 이름없는 대학 생소한 학과에 교수로 재직중이고
해외선교에도 활발하시다는 최근 근황을 지인에게서 듣고 참 헛웃음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