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기술해 놓은 것처럼 전 일개 레지던트 입니다. 원래 주로 웃대 눈팅하는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놨네요. 예전엔 여기 유머자료 보러 가끔 왔었는데..ㅋㅋ
전 평범한 집안에 흔히 얘기하는 촌 구석에서 쭉 컸는데 운이 좋게 공부에 재능이 있었는지 모든 고등학생을 줄세우는 수능에서 한명이라도 더 앞지른다는 마음으로 살다보니 의대에 왔고, 거기서 또 하고 싶은 공부하겠다고 내과 전문의의 문 앞까지 와 있습니다.
저도 누구나 가지는 의협심과 의사에 대한 편견이 쥐꼬리만큼 있었는지 고등학교때는 도둑놈같이 돈 밝히는 의사가 되기 위한 의대 안가고 공대 같은 곳 가서 열심히 연구하면서 살겠다라고 했었는데... 정작 연구나 그 분야가 내 적성엔 안맞고 잘난줄 알았던 내 위에 하늘 같은 천재들이 있는 걸 보면서 결국엔 의사가 되도 ‘일한 만큼만 받고 사기 안치고 열심히 살면 되잖아?’ 라고 입학했고 의사 면허증이 나온 이후는 ‘의사라면 역시 Major! 중환자실에서 밤새 씨름하고 죽을 환자 살려서 보내는게 참 맛’ 이라는 모토아래 결국 내과 의사 노릇 하고 있습니다. 전 내과가 수술과보다 훨씬 힘들고 멋져보이더라구오 왠지.. 해보니까 역시 재밌더군요. 이게 내 적성이고 천직이고 앞으로도 죽을 꺼 같은 사람 살려서 병동 올리고 퇴원 시키는 맛으로 살 계획입니다.
게시판에 글을 읽으니 문재인 케어에 대해 역시 갑론을박과 충돌이 난무 한걸 보면서 생각나는 게 있어서 저도 한 말씀 올려보고자 합니다. 위에 내과 의사라고 밝힌 만큼 의사의 입장에서 말하는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개인적으로는 현재 대학병원에서 하고 있는 의료의 질은 1. 많은 생명을 살리기에 충분하면서도 2.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생명에 대해서는 무자비 합니다. 정책 방안에서 말하듯이 대다수를 급여화 하게 되면, 그리고 정말 합리적으로 그 의료수가를 보존해준다면 2.에 해당하는 사람을 더욱 구할 수 있겠지요. 아직 교과서에서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나 강하게 권고를 하고 있지 않은 치료법, 죽는 길로 가고 있다는게 뻔히 보이는데 보험 안되니 못했던 것들, 약때문에 콩팥 날아갈거 같아서 약 투약하고 소변줄에서 소변 떨어지는지 쳐다보던 환자들, 항생제 한병에 14만원 하루 두번씩 최소 2주 줘야 하는데 보호자 얼굴에 지는 그늘들... 치료 포기. ‘편하게 돌아가시게 해주세요.’ 이런 말들 다 줄어들꺼에요. 행복하겠죠. 의사 입장에서 너무 행복할꺼 같아요. 그런거 생각 덜하고 진료할 수 있다는건..
다만, 정말 엄청난 돈 들껍니다. 장담하셔도 좋아요. 처음엔 보장성 강화하면서 삭감도 덜할테고(정책이 결국 보장성을 강화하면서 열심히 삭감하는 건 어폐가 있으니) 단기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모아둔 재정이나 어디서 끌어와서 해결 될 껍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결국 다시 삭감 시작하거나 증세밖에 답이 없습니다. 무너지거나 과거로의 회귀는 시간문제라고 봐요. 여러 분야들 삭감 시작되면 위에 1. 2. 환자들 모두 손해보는 건 마찬가지죠. 그리고 그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되는 첫번째는 의사일테구요.
MRI같이 비싸고 비급여인 검사를 왜 하냐 돈벌라고 하냐 돈독이 오른 놈, 도덕적으로 이미 타락한 집단이라고 질문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애초에 나라에서 국민 분들 고작 그 정도 아픈 걸로는 보험을 안해주겠다는 거에요. ‘허리 나 엄청 아픈데 MRI 꼭 찍어야해?’ 정말 아프면 찍어야죠. 근데 환자분 아프신걸 나라에서는 보험을 안해주겠대요. 진단명도 세분화 되고 하나의 증상에 여러가지 원인이 있어서 영상으로 확인하면 정말 큰 도움이 될텐데, 나중에 혹시 심해지거나 했을 때 과거랑 비교해보면 참 명쾌할텐데 말이죠. 부디 인식만은 조금만 바꿔주세요. 그리고 부도덕한 의사에게는 항상 일침이 필요합니다. 본인과 본인 옆에 사람과 쑥덕쑥덕해서 맘에 안든다고 부도덕하다고 판단하고 일침 놓지는 마시구요.
의료 현장에서 가장 답답한 건 항상 내 발목을 잡는 보험. 그리고 너넨 다 사기꾼, 돈벌레. 필요없는 검사는 다 해놓고 환자가 사망하면 의료과실이라는 인식.
전 지금까지 이 두가지가 가장 힘드네요. 그리고 앞으로 더 힘들어질게 보여서 더 힘빠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