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용 이야기책이나 민담책을 보면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이 어린 시절부터 희대의 장난꾸러기이자 말썽꾼으로 나오는데 이는 후대 사람들이 각색한 부분입니다. 이항복과 이덕형은 같은 동네에서 살지도 않았으며(이항복은 경기도 포천 출신. 이덕형은 한성 출신), 두 사람은 1578년 과거 시험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또한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있는데 이항복은 1556년생, 이덕형은 1561년 생으로 이항복이 5살 더 많습니다.
다만 이항복이 어렸을 때부터 희대의 말썽꾸러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따로 돌봐줄 사람이 없다 보니 도저히 집에 잡아둘 수 없는 동네 골목대장이었다고 합니다. (이항복 스스로가 "어렸을 때 많이 놀았음"이라고 인정할 지경)이런 그가 그나마 제정신(?)을 차린 것은 40 넘어서까지 니트짓을 했던 권율의 딸과 결혼한 뒤라고 합니다. 물론 장난질은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했죠.
2. 의외로 범생이인 이덕형.
이항복과는 달리 이덕형은 생각보다 얌전하고 온화한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일을 할 때의 일처리는 꼼꼼하게 잘 했고 바른말도 서슴치 않은 인물이었지만 천방지축 날뛰는 이항복과는 성품이 달랐죠.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앞장서서 해명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일도 많았는데 이 때 주로 수습해 준 인물이 친구 이항복입니다. 다만 범생이였던 것과는 별개로 이항복과 허물없이 시시덕거린 것은 사실.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을 보면 이덕형이 이항복에게 "형 뭐 좀 해줘요". "형 나 아픈데 약 좀 보내줘요". "형 나 속상해요" "형 왜 그런 말 했어요? 잘못 됐다고요." "형도 내 마음 몰라요" 하며 징징(...)거리는 글들이 나옵니다.
3. 오성과 한음의 뜻?
한음은 이덕형의 호가 맞습니다만 오성은 이항복의 호가 아닙니다. 이항복의 호는 백사(白沙)입니다. 게다가 이항복이 '오성'이란 호칭을 얻은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로 이 때 호송공신 1등으로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지면서 이 때부터 이항복을 오성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즉, 임진왜란 전에 이항복에게 오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