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쯤이었지만 마음이 너무 안좋아서 오늘 문을 닫는다고 벽보를 붙여놓고
텅빈 4층 홀에서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보니 나루가 사라진 것이었다. 나루는 한국에서 네팔로 올 때 함께 온 고양이. 두어 달 전에 한 번
집을 나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종일을 헤매고 전단지 붙이고 찾아 다녔는데 다행히 30 여시간이 지난 새벽 4시쯤 돌아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무슨 일일까. 녀석은 겁이 하도 많아서 평소에도 바깥엔 나가지 않는데 말이다.
며칠전 선물로 받은 소주를 따서 마셨다. 전단지를 또 만들어 붙이고 동네 골목을 둘러봐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에 시간은 흘러 12시쯤 되었을까?
지진이 왔다.
미세한 진동이 아니라 대번에 BAR 유리 받침이 밀려 나오고 냉장고 문이 열리고 병들이 쓰러졌다. 고민이고
갈등이고 할 여유가 없었다. 가게밖 도로로 뛰쳐 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로위에 쏟아져 나와 있었고, 지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아스팔트가 울렁거리는 통에 속이 미슥거렸다. 저 앞에 목욕중에 수건 한장 두르고 뛰쳐나온 네팔리가 보였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땅은 울렁거리고...그렇게 한 2분 가까이 지진이 훑고 지나갔다.
발을 보았더니 맨발이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신발을 가져와야 했다. 그리고 최소한의 도구를 가지고 나와야 했다.
에라 모르겠다. 가게로 들어갔다.
4층,
냉장고 문이 열리고 맥주와 음료수가 쓰러지고 일부 쏟아져 깨져 있었고,
바의 칵테일 글라스들이 바닥에 깨져 있다. 맥주 냄새가 진동했다.
여권과 지갑을 챙겼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남은 소주 한 팩을 들고 다시 내려왔다. 가까운 곳에 있는 '서울뚝배기'라는 한식당을
일단 찾았다. 넓은 정원과 공터가 있고, 건물이 높지 않아 바로 대피할 수 있는 곳이라, 그리고 내 숙소가 거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음이 착잡했다.
카투만두에서는 끔찍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진도 7.9.
포카라와 카투만두 중간 약간 위쪽이 진앙지란다. 거리상으로는 포카라가 더 가까운데 피해는 카투만두쪽에 집중에서 발생했다.
지진의 힘이 거리상으로 더 먼 카투만두를 향해 뻗어나갔기 때문이라 한다.
카투만두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60미터짜리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 무너져 그 자리에서만 18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부터, 마을이 통째로 매몰되어 통신조차 두절되어 사망자 집계조차 안된다는 뉴스, 카투만두에서 들려오는 소식과, 설산쪽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사망자 숫자'에 나를 무감각하게 했다.
수백...천...천 오백...이천..
서울뚝배기에 있으면서도 여진은 계속 되었다. 밥을 먹다가 강한 여진이 들이닥쳐서
모든 손님들과 사장님과 함께 정원으로 다 내려와 대피하기도 했다.
해가 저물어갔다. 이러 저러하게 술을 좀 먹었다.
그리고 소식이 들려왔다. 밤에 지진이 한 두 차례 올 것이라고 했다.
상가들은 거의 대부분 문을 닫았다.
밤이 되자 사람들은 도로에 담요를 깔고 눕기 시작했다. 밤이 깊도록 이곳 저곳에서 걱정섞인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2015년 4월 26일 일요일, 네팔 포카라 지진 2일째]
새벽 5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여진으로 인해 잠을 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 할 찰나 여진은 멈췄다.
어제 낮12시의 지진보다는 약했지만 진도 5.5이상은 충분히 될 지진이었다. 지진과 여진을 겪어보니 어느새 이정도면 진도 몇..이라
짐작하게 되었다.
20초정도 계속 된 짧은 시간이었고, 새벽 시간이었지만
도로에서 사람들의 와글와글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찌어찌해서 날이 다시 밝았고, 가게는 오늘도 문을 닫았다. 우리 가게는 4층,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행여심리적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포카라에 있는 한인 식당과 카페, 업주분들과 전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으셨다.
하지만 여진은 계속 오고 있었고, 결국 오후 1시경 지축이 울렁거리는 여진이 한차례 왔었다.
당시 공교롭게도 카투만두 대사관측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사관 직원이
"잠시만요, 여진와요!"하면서 전화를 끊었고 20여초뒤 내가 있는 포카라에 여진이 와서 모두들 길가로 달려 나왔다.
그렇게 여기 계신 교민분들과, 여행객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포카라는 아직은 큰 피해가 없이 지진 이틀째를 맞았다.
하지만, 나의 고양이 나루는 가게를 나간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밤 12시경 여진이 올 수 있다는 뉴스 기사가 떴다고 해서
사람들은 오늘밤도 길이나 정원, 공터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2015년 4월 27일 월요일, 네팔 포카라 지진 3일째]
다행히 간 밤에는 어제 새벽처럼 강한 여진은 오지 않았던 것같다. 어떤 사람은 느꼈다고도 하는데 난 피곤해서였는지 눈 떠보니 아침이었다.
아...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게로 향했는데요. 숙소에서 가게까지는 5분거리입니다. 혹시 나루가 밤에 들어올까 해서 가게 1층 셔터를 조금 열어놨었는데요.. 셔터를 열자마자 어디선가 들리는 낯익은 소리...
냐아....옹.
1층에서 2층으로...2층에서 3층으로..4층 나루방이 가까울 수록 소리는 더 커지고 .. 뭐랄까 처음엔 나루맞나 할 정도로 좀 쉰 목소리에 힘이 없는.. 그런데 자기 방에 누워서 올라오는 나를 보더니 기분나쁠 때 하는 나루 특유의 표정...두 눈을 질끈 감고 날카롭게
'냐아아아아아아아옹! 냐아아아아아아옹!'을 시작하는데...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무섭고 힘들어 죽을 뻔 했는데 넌 어디에 있었냐고!!!!'라고 하는 듯.. 그렇게 울기 시작하더니 게속 졸졸 따라다니며 부비면서 냐옹 냐옹 냐옹 냐옹 거립니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녀석은 겨우 안정을 찾았는지 자기 전용의자에 앉아 밖을 멍하니 보고 있습니다. 살짝 냄새를 맡아보니 더러운 곳에 있었던 것 같지는 않구요..뭔가 풀냄새 같은 것이 났습니다. 아마 근처 어느 수풀같은 곳에서 이틀을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왼쪽 입가에 살짝 긁힌 자국이 있네요...
여튼 일단 걱정해주신 분들께 빨리 알려야 겠다싶어서 일단 글부터 올립니다. 좀 이따 사진하고 영상도 올리겠습니다.
기다려주시고 힘주신 벗들께 다시한 번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네팔은 카투만두를 중심으로 포카라에도 아직 크고 작은 여진들이 간헐적으로 발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 새벽엔 비가 왔는데요...충격을 받은 건물들이 무너질 우려 있어서..걱정이라 합니다.
현재 진앙지가 카투만두보다 포카라가 더 가까운데요. 그런데 피해는 카투만두쪽에 집중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진이 카투만두쪽을 향해 뻗어갔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지진이 방향을 언제 바꿀 지 모르는 상황이라 만약 포카라쪽으로 바꿀 경우...엄청 재앙이 또 닥칠 수 있어서 모두들...밤엔 도로나 마당에서 자는 상황입니다.
지진 관련해서는 해당게시판에 자세한 소식을 올리겠습니다. 동영상을 찍은 게 몇 개 있거든요. 암튼 아침 먹구요...이 글에 지진을 피해 나갔다가 여진을 견디고 이틀만에 돌아온 나루 사진과 영상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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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각 4월 27일 오후 7시 14분.
현재 네팔 포카라는 조용하다. 하지만, 지진의 여파는 아직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가 없고, 카투만두와 여타 지진 피해 지역의
사망자는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그 수는 사천을 육박하고 있고, 1만명에 육박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 온다.
나를 가장 오싹하게 한 이야기는,
현재 지진 진앙지가 카투만두보다 포카라가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카투만두에 대부분 나타난 것은 역으로 포카라가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진앙지에서 지진이 발생할 때 포카라쪽과 카투만두쪽으로 동시에 힘이 뻗어 나갔는데
포카라쪽은 강력한 힘이 응축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흡수해 버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당장은 포카라에 피해가 없지만
아직도 응축되어 있는 힘이 포카라에서 수십 킬로에 존재하고 있어서 절대 긴장을 늦추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카투만두와는 달리 포카라는 페와호수라는 네팔에서 2번째로 큰 호수가 있어서 지진이 일어날 경우 범람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지상에 대피해 있어도 범람한 물로 인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80여년만의 큰 지진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으로 희망을 찾는 하루하루가 시작되길 바랄 뿐이다.
모든 지진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추모의 마음으로 애도한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피해자들이 꼭 구조될길 바라며, 목숨걸고
구조에 나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과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