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이 훌륭하신 임금인건 맞지만, 천주교를 용인하는 군주는 아니었습니다.
주자학이 지배하는 조선왕조에서 천주교 용인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충과 효가 지배적 이념인데, 조상과 선현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는(당시 카톨릭의 공식입장) 종교가 받아들여질리 만무하죠.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용이나 천주교에 우호적이었던 체제공, 이가환(이기환)등의 등용을 들어, 정조대왕이 천주교를 용인했다고 생각할수 있는데,
모두 공식 석상에서는 전혀 신자임을 드러내지 않거나, 후에 배교했던 분들입니다.
아래는 후에 순교하는 이승훈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는 과정에서 정조가 하교한 내용입니다.
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va_11602028_004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일체(一體)이니, 그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절을 하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고 바로 금수이다. 스승 또한 그러한데 더구나 만대의 스승인 공자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도척(盜跖)이 후세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른바 이승훈(李承薰)이란 자는 간담이 얼마나 크길래 참으로 절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는가.
정조의 묘지문 일부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그는 굉장한 "유자"였습니다.
언젠가 이르시기를,
“내가 원하는 것은 공자(孔子)를 배우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공자를 배우려면 주자(朱子)부터 배워야 한다.”
하고는, 주자가 강목(綱目)을 썼던 것처럼 《춘추(春秋)》의 좌씨전(左氏傳)을 편정하고 어원(御苑) 속에다 집을 지어 주자의 유상(遺像)을 안치해두고 《대전(大全)》·《어류(語類)》 그리고 주자가 쓴 각종 서적의 전주(箋注)들을 책으로 엮어 그 속에다 쌓아두려 했다가 미처 못하였다.
왕은 성인이었다. 사도(斯道)의 정체를 밝혀내고 사도가 지향할 바를 주장하였다. 왕이 한 일은 복희·신농·문왕·무왕이 했던 일이며, 왕이 한 말은 공자·맹자·정자·주자가 한 말이었다. 앞으로 천세 후에 옛것을 논하는 자가 있다면 아마 이를 《시경》의 청묘(淸廟) 악장에다 실어 연주하여 역시 한 사람이 창을 하면 세 사람이 감탄을 하리라. 여기에는 특히 남들의 귀와 눈에 배어있는 천덕(天德)·왕도(王道)만을 추려뽑아 굉장한 유자이고 현철한 임금이었던 그의 법도를 이 정도로 소개했을 뿐이다.
ps. 이기환이 아니고 이가환이네요. 신유박해때 순교한 금대 이가환이 정조의 총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