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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 이자혜 2차 해명문
게시물ID : comics_199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브리다
추천 : 13
조회수 : 1463회
댓글수 : 86개
등록시간 : 2016/10/21 16:49:21
저는 만화가 이자혜입니다. 레진코믹스에서 2014~2016년 간 <미지의 세계>를 연재했으며, 그것은 출판사 유어마인드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있었습니다. A의 글에서 저와 제 친구 이익을 지목하며 거기서 성폭력이 있었다는 토로를 읽을 수 있었고, 그것을 읽은 많은 사람들과 독자 분들은 그 글에 나타난 저의 행위를 비난하였습니다. 그에 대해 저는 매우 당황스럽고 분노하였으며 긴 반박문을 써 공유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저에게 공격을 하여 충격을 받았고 이성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반박문을 삭제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트윗을 올렸습니다. 이 트윗들은 지금 삭제된 상태입니다. 여기까지의 일은 당시의 당황스러움으로 인한 충동적인 행동이었으며, 지금은 시간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저의 기억을 되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한 결과로서 이 글을 씁니다.

우선 제 만화 <미지의 세계> 가 성폭력에 동조하고 그것을 희화화함으로써 2차 가해를 조장하는 비도덕적 작품이라는 판단에 대해 부정하고 싶습니다. <미지의 세계> 및 제 모든 창작물은 저의 창작자적 시선에 의하여 고안된 가상의 서사입니다. 과거 수많은 독자들이 제 만화에 대해 ‘자신의 상황 같다’며 공감을 강하게 표현하셨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읽고 지인인 자신의 고통을 특별히 희화화하기 위해 제가 그러한 상황을 재현하였다는 식으로 언급한 점에 대해서 저는 부정합니다. 
제 만화에서 읽는 이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는 묘사로 인해 상처가 커지게 된 것에 대해서는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외설적/비윤리적 서사의 만화를 그릴 때 그것은 남들의 불쾌감과 수치심을 통한 배설적 쾌감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고, 제가 그런 디테일을 관음증적으로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며, 전체 서사에 있어서의 고유한 창의적 효과를 위한 것입니다. 저는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데에 있어 창작자로서의 소명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에서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자유만이 접근/성취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동시에 일반 시민으로서의 윤리의식과 인간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게 있어 만화를 만드는 일은 스스로의 상처나 단점을 마주하고 제 지난 행동이나 사고를 반성하도록 함으로써 독립적 인간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과거의 단편만화들이나 <미지의 세계>를 그려오면서 스스로의 추한 점들에 대한 반성과 자기비판을 반복하는데에 초점을 두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만화를 그렇게 읽어왔습니다. 저의 창작물은 현실을 흉내내는 데에 충실하기만 한 서사가 아니고, 창작자로서의 고유한 개인의 세계관과 고안된 편집이 적용된, 가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만화들이 제 개인의 욕망과 배설을 투사하기 위한 얄팍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은 억울한 판단입니다. 부디 <미지의 세계>를 범죄적 작품으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현재 A의 글로 인해 저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를 저지른 인물로 사회에서 거의 확실시되었고, 수많은 익명의 제3자들에 의하여 개인정보가 공유되고 있어 본인 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도 위협에 노출된 위험한 상태입니다. 
또한 제가 관계된 모든 직업적 계약이 일방적으로 해지되었으며, 제 작업물들은 폐기되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법적 처벌을 받을 범죄자로 국가기관의 판결이 확정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첫 공론화글이 올라온 지 만 24시간, 아니 12시간조차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제게 통보하며/혹은 아예 통보조차 하지 않고, 저의 작가이자 노동자로서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일말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많은 회사와 단체들의 대처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레진코믹스, 핀치 와는 동의하에 게시중단을 결정하였습니다.) 공적인 회사/단체라면,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저에게 사실인지 물어보는 과정을 거치거나, 논란이 되는 사건의 사실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저의 컨텐츠 서비스를 동결하며 계약해지 등의 사후 처분을 유보하는 입장을 취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작가와 컨텐츠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 예술 관련 단체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일 뿐더러, 이익단체라면 법과 계약으로 보장되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책임 또한 기본적으로 있습니다. 
제가 그 공론화 글에 묘사된 모든 일을 사실로 인정했다는 것처럼 빠르게 기사화한 언론사들에 대해서도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사태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이 당사자들의 피해를 크게 키운 책임을 묻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결과적으로 A의 글이 객관적으로 정리된 사실관계에 입각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그 글을 읽고 처음에는 저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으나, A가 그 글에서 과거의 일로 고통을 겪고 있음을 호소하였고 당시에 제가 폭언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그에 대해서 사과했습니다. 저의 감정적 대응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오해하셨을 것이고, A가 묘사한 당시 상황들을 모두 사실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하는데, 저는 성폭력을 방조하거나 알선하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글이 담고 있는 사실과 다른 묘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해명하고 반박하고 싶습니다. 그 글 자체는 제 기억과 기록들, 남아있는 당시 대화 내역들과 주변인의 증언을 확인해보니 상당히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A와 2012년부터 서로의 작업물에 호감을 가지게 되어 대화하게 되었으며, 당시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해보고 싶다” 같은 성적 판타지와 성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당시 성적 호기심이 컸던 저희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쉽게 친밀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주제에 대해 활발히 대화를 나누었기에 이후로도 A와 친하게 지내던 시기 동안은 서로 성적 대화에 거부감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이익, A가 친목의 목적으로 처음 다같이 만나게 된 이후 A가 저에게 당시 이익에게서 피해를 입었다는 식의 호소는 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익과 A가 첫 만남 이후로도 몇 달 간 자주 만나며 연락하는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A가 이익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희화화하거나 놀렸기 때문에 저는 A와 이익 사이의 친밀함을 전혀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이익을 ‘당신’이라고 부르던 저와 달리 A는 첫날 이후 이익을 ‘야, 너’ 등으로 불렀고, 거기서 위계를 느끼기도 어려웠기에 그들의 사이가 빠르게 가까워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익과 A 둘 사이에만 있었던 사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었던 입장입니다. 또한, A가 저에게 이익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식의 호소를 했었다면 저는 위험을 감지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성적 자유분방함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A가 이익과의 관계에서 부당함이나 불쾌감을 느꼈는지의 여부에 대해 제가 예민하게 포착할 수는 없었습니다.

몇 달 후 저는 A와 사적으로 급격히 사이가 나빠졌으며, 그 이유는 A의 이기적인 행동이나 발언에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A에 대한 폭언을 올린 후 A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고 더이상 A에게 접근하거나 연락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A와 관계회복을 위한 직접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A는 제가 A에 대한 트위터 차단을 풀기를 바랐는데, 어머니와의 연락 이후에 저는 A와 더이상의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고, 당시의 인간관계에 대해 부담스럽고 복잡한 마음을 느끼고 있어 더이상의 친분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차단을 풀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여러 개의 sns 계정이 있었고 메일주소가 고정적이었기에, 행여나 저에게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면 창구는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 입장과는 다른 A의 글이 널리 퍼지며 당사자들의 명예에 손상을 가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시의 일들을 구체적으로 해명하여 저의 억울함을 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저와 당사자들의 사적인 기억이자 정신적 상처를, sns에 낱낱이 전시하며 익명의 제3자들의 주관적인 판단과 모욕에 휘둘리는 것은 거부합니다. 이는 A에게도 피해가 되는 일입니다. 아직 어떤 법적인 절차나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들의 신상정보를 노출시키고 공유함으로써 사적인 심판을 내리는 것은, 이 사건과 관계없는 제3자들의 권리가 아닙니다. 저는 제게 성폭력의 죄가 씌워진 사안에 있어, 저의 무고함을 주장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기록과 자료들을 필요하다면 최대한 활용할 것입니다. 

그와 별개로 당사자들의 일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A가 지금까지 당시의 일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은 저 또한 안타까우며 그가 빠르게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작가로서 공적 자아를 구분하지 못한 점과 그로 인해 독자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스크린샷 2016-10-21 오후 4.46.56.png

출처

https://www.evernote.com/shard/s483/sh/7c8c0c40-0031-47e0-b830-96561fabb2bc/2139d950bee5511477baae0f150b04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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