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치 대중들에게 송시열은 김육이 주도적으로 시행했던 대동법의 반대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역사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는 분들이면 아니라는 걸 아시겠지만,
누군가의 영향인지 이런 내용은 너무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죠.
물론 송시열이 대동법의 절대적인 찬성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당대에는 대동법에 대해 우려를 안 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광해군뿐 아니라 인조, 윤방, 신흠, 김집, 원두표, 안방준 등등
대동법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띄지 않은 사람은 사실 널리고 널렸고 그 중 송시열도 해당이 됩니다.
역사를 너무 선악관계로 끌고 가려하시는 분들이 대동법 찬성론자 = 선, 대동법 반대론자 = 악으로 구분지으시려 하는데,
대동법이라는 건 조선사에 유례없는 엄청난 개혁이었고 그 결과를 사실 누구도 장담치 못했습니다.
개혁의 규모도 단순히 세율을 찔끔찔끔 바꾸는 현대의 조세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세제 개편을 통째로 바꾸는 것이었기에 100년이란 기나긴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우려를 띄는 모습을 가진 사람도 많음이 당연합니다.
이는 단순히 그들이 기득권이라 자신들의 이익을 놓지 않기 위해 그런 사람도 없지는 않겠으나,
사실 대동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정말 그 결과를 알 수가 없고,
시행중에 대동법에 의한 문제점들이 진짜 발생했기 때문에 반대를 한 것입니다.
물론, 스승인 깁집이 대동법의 대표적 반대론자였기에 그 밑에 있었던 송시열이 대동법 찬성을 함부로 할 수 없기도 하였고,
오히려 송시열의 경우 김육과 김집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발생하던 대동법 찬/반 논란의 간접적으로나마 중재자 역할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김육과 김집이 대동법에 대해 서로 의견이 갈리고 효종의 그 사이에서 결단을 못하니 김집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난리를 피는 와중에
송시열은 효종에게 대동법 시행에 있어 서로 뜻이 맞지 않아 말과 행동이 극단적으로 되어 자기도 답답하게 여기나,
이는 서로 나라를 위한 마음에 의한 것이라며 효종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줍니다.
또 알려진 것과 다르게 사실 송시열 자신은 조정에서 대동법 반대를 크게 주장한 적이 거의 없으며,
대동법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보기 시작하자 대동법이 좋은 법이라며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요.
상이 이르기를,
“호서의 대동법은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가?”
하니 송시열이 아뢰기를,
“편리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좋은 법이라고 하겠습니다.”
효종 20권, 9년(1658 무술 / 청 순치(順治) 15년) 7월 12일(정미) 1번째기사
김육이 죽으며 올린 상소에서도 나라의 근본을 맡기는 일이 급선무이고,
그렇기에 찬선(왕세자 교육 담당)으로 송시열과 송준길보다 나은 자가 없으니 그들을 멀리하지 말라고 당부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보답하듯 다음 해 효종이 죽고 현종이 즉위하자마자 송시열은 효종의 묘지문을 올리며,
대동법 진행사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종에게 대동법에 관련하여 분명히하고 추진할 것을 당부합니다.
“신이 기억하기로는 금년 봄에 대행 대왕께서, ‘호남 지방의 산군(山郡)에 대동법을 시행하는 일의 여부에 있어서는
가을에 가서 논의하여 결정해야겠다.’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일이 만약 행하여도 될 일이라면 비록 산릉 전이라도 서둘러 사리에 맞도록 처리하여 분명한 지휘가 있으셔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경의 차자를 보고 또 제술한 지문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통곡이 나왔다.
호남 대동 건은 만약 경의 말이 아니었던들 내 어찌 알았겠는가. 논의하여 처리하도록 하겠다.”
현종 1권, 즉위년(1659 기해 / 청 순치(順治) 16년) 9월 3일(신유) 2번째기사
또한 송자대전에서 최신과의 문답에 남겨져 있는 기록을 보아도 대동법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최신 : 잠곡(潛谷:김육)이 대동법(大同法)을 만든 일은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신독재(김집)가 이론(異論)을 제기하고 국정(國政)에서 떠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송시열 : 이 점은 신독재가 당초에 대동법이 어떤 것인가를 알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송자대전 부록 제17권 최신(崔愼)의 기록 - 상
이와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당론에 의해 대동법을 극렬히 반대했다는 송시열의 이미지와 다르게
송시열은 대동법에 대해 절대 부정적이지도 않았고 그 시행에 직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상당히 많이 끼칩니다.
물론 김육만큼 주도적으로 대동법을 시행하지는 않았고,
대동법도 완벽한 법이 아니기에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폐단이나 문제점을 조정하려는 시도를 하긴 하였으나
대동법을 이해관계에 의해 부정하고 문제 삼으려고 했던 사람이 애당초 아니었음에도 대동법이란 선에 대항한 악의 축 정도로 묘사되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