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해지고, 해질 무렵의 노을은 잠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창가로 발걸음을 옮기게 합니다.
가을이 되니 여기저기서 결혼식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신혼여행, 웨딩사진촬영, 신혼 집 마련.. 저에게도 저와 같은 시간이 있었나 할 정도로 기억이 아득합니다.
몇 일 전에는 새신랑이 된 처남이 웨딩사진집이 나왔다며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처남 댁과 찍은 예쁜 결혼 사진들을 보면서 사뭇 저의 신혼시절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진집을 정말 오랜 만에 찾아보며, 벌써 중년이 된 아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결혼생활 13년 동안 무엇을 해주었는가…… 한마디로 해준 것이 참 없더군요…… 눈가와 목의 주름만 더 얹어준 거 같아 참 마음이 씁쓸해졌습니다.
결혼 전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아내에게 노력했었던 것 같습니다. 도서관 자리 대신 맡아주기, 말도 안 되는 기념일 만들어서 챙겨주기, 항상 아내 기분을 생각하며 맞춰주려고 노력했었던 저의 옛 모습을 회상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왕좌까지 던져버렸던 영국 국왕 애드워드 8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꼭 당신에게 그렇게 하겠노라며 청혼했던 나의 옛 모습이 무척이나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항상 최우선이었던 아내가 항상 남편과 딸아이에 밀려 맨 나중이 되어버린 지금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내답고 엄마다워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내가 무척이나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도 예전엔 자신을 꾸미는 것과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참 철없어 보여도 예뻐 보이는 소녀일 때가 있었는데……
올 가을엔 몇 해전부터 가지고 싶다던 베이지 색 트렌치 코트 꼭 사줘야겠습니다. 그리고 꼭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야겠습니다.
“어떠셨나요? 오랫동안 고마웠습니다. 다음에 또 같이 삽시다” 얼마전 읽었던 [아내에게 바치는 1778가지 이야기]의 책을 보면 남편이 30년간 넘게 같이 지낸 아내의 마지막 가는길에 보낸 글귀.. 이 가을 약간 센티해지지만 외롭다기 보다는 아내에게 괜스레 미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