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신편한국사 청동기 문화와 철기문화에 나옵니다.
古朝鮮의 상한에 대해서는 기원전 20세기대부터 기원전 1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구구하다. 고조선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春秋 혹은 戰國시대의《管子》이나, 여기서는 당시 고조선의 위치에 대해서 명확한 지적이 없다.
그보다 다소 늦은 戰國시대의《戰國策》에 보면 “연나라는 동쪽에 朝鮮遼東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그나마 그 위치 폭을 좁혀 접근할 수 있다. 조선 요동을 조선의 요동이든지, 혹은 조선과 요동으로 해석하든지 간에 遼水의 동쪽 지방과 고조선이 맞물려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요수가 어느 강을 가리키는가 하는 점이다. 학자마다 지금의 난하․요하․대릉하, 심지어는 압록강․청천강 등에 비정하는데, 그에 따라 초기 고조선의 서쪽 경계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어떤 견해를 따르든지 고조선의 초기 무대는 요하유역에서 서북한지방 그 어느 범위에 해당하며, 이 지역에 비파형동검관계 유적유물군이 분포함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비파형동검은 난하유역에서부터 남쪽으로 한반도 남해안 그리고 북쪽으로는 송화강유역에 걸쳐 출토한다. 그리고 문헌상으로 이러한 지리적 범위는 대체로 東夷族,혹은 예맥족에 버금가는 집단의 거주영역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고조선 주민 문화를 구명하기 위해서는 비파형동검 유물군의 여러 유형 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84년에 역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사-고대민족의 성장편을 봐도 고조선과 청동기문화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古朝鮮은 考古學的 文化期의 구분에 따르면 靑銅器時代이다 ( 고조선은 고고학적 문화기의 구분에 따르면 청동기시대이다 )
이제 古朝鮮의 문화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잠간 靑銅器時代에 앞선 新石器時代의 문화를 간단히 언급하여야 되겠다.
만주와 韓半島에 걸쳐서 新石器時代의 문화는 土器를 標識로 삼아서 幾何文土器文化라고도 한다.
74년에 역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사-고대-한국의 선사문화에 다음의 언급이 나옵니다.
滿洲式 동검문화를 東胡民族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면, 한편 세형동검 문화는 古朝鮮 세력을 기반으로 해서 형성된 문화로 보는 것이 오늘날 고고학계의 통설이다.
이미 74년부터 식민사학의 정수 국사편찬위원회는 고조선과 세형동검문화를 역사적 실체로 간주했습니다.
지금부터 약 40년전입니다.
그리고 식민사학의 원흉 이병도 교수는 57년에 발간된 국사대관에서 고조선 단군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군은 즉 이 천황의 아들이라 하여 천황을 봉사하던 고조선 사회의 제주요 군장이었던 것이다.
고조선뿐만 아니라 신정시대 - 즉 제정일치시대의 모든 군장이 다 그러한 관념과 직책을 가져
제주는 의례히 군장의 직을 겸임하고 군장은 또 의례히 제주의 직을 겸하였던 것이다.
하여튼 나 역시 이를 고유명사로 보는 이보다 어떤 존칭, 존호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정리하면
40년전에도 국사편찬위원회는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와 한반도 청동기 문화에 대해 이미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는 58년전에도 이미 인정됐구요.
유적이 추가 발굴되서 최근에야 주류사학에서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와 한반도 청동기 문화를 인정한다는 얘긴 이제 그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