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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청일전쟁 때문에 망했다.
게시물ID : humordata_19866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3
조회수 : 2486회
댓글수 : 28개
등록시간 : 2023/05/14 21: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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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일전쟁이 터지자 청나라와 일본은 보급을 조선에서 해결하려고 했음. 청나라는 소와 말을 징발해갔고, 일본은 전운사와 이운사의 증기선을 죄다 징발하였음.


이는 조선의 육상운송체계와 해상운송체계를 완전히 마비시킨 것으로 가장 치명적인 문제로 지적이 됨.

 

144척의 기선과 수천 마리의 우마가 징발되는 바람에 조선 정부의 경제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임. 거기에 일본군의 병참은 뭐...거의 숫제 20만 대군의 의식주를 조선보고 해결하라는 식으로 흔들어버렸음.

 


2. 

일본군은 조선 측에 군표를 주고 물자를 가져갔는데, 일본 측이 군표 수납을 거부해버리면 걍 종이쪼가리 되는 것임. 실제로도 그랬음. 그렇게 해서 몰락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이런 식으로 군표 경제권이 조선의 경제 시스템을 완벽하게 마비시켜버린 것. 거기에 군표를 이용해서 12톤에 해당하는 귀금속도 그냥 꿀꺽해버렸으니 뭐... 

 

어느 정도냐면 일본군 선발대가 평양 인근에서 제대로 식량 분배를 받지 못하자 평양 인근의 쌀을 지들이 징발해서 도정해다가 밥해먹고 있던데 이러한 약탈 행위가 합법적인 징발 행위로 포장되어버린 것.


당연히 보상 못받았지. 군표 주고 산 것도 나중에 일본 정부가 상환 거부해서 망한 곳이 수두룩한데 그냥 징발해버린 것에 대한 값을 쳐주겠음? 절대 그렇지 않음. 특히나 조선이 믿고 있는 서북 지방의 경우 완전히 개박살이 났음.

 

 

 

3. 여기서 인력도 대거 징발하였음. 일할 인력들을 죄다 전쟁 때 청나라와 일본이 삭삭 긁어가버렸는데 누가 경제 활동을 함? 나머지는 피난 가버리고, 그나마 남은 인력은 전쟁 수행 당시 군수지원에 투입되어버렸으니 뭐...


거기에 현물 징발도 엄청 심각했음. 일본군이 진짜 있는대로 다 긁어감. 조선이 인천과 한성에 갖추고 있던 화약창고도 삭삭 긁어갔으며 양곡 300만 석도 털어감. 

 

 

4. 조선 정부가 보고만 있었냐고? 보고만 있었지.

1894년 경복궁 쿠데타로 이미 조선의 군대는 무너졌고 제 기능을 상실해버린지 오래였음. 한성 내의 무기고도 일본군이 다 털어갔고, 조선군에게 남은 것은 빈 소총들 뿐이었음. 이들이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5. 

경제적으로 이러한 대타격을 주었다면, 행정 체계에도 막대한 문제를 끼친 것이 있음. 바로 전보총국을 일본군이 장악해버렸다는 점

일본군이 전신체계를 장악한 이후로는 중앙과 지방과의 연결이 다 끊겨버림. 아예 평안도 지방의 경우 중앙과의 연결이 끊기자 평안도 관찰사 민병석이 알아서 평안도를 통치하며 청군과 함께 싸웠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임. 아예 지방 통제 역량을 잃어버렸고, 이는 구한 말에 대한제국이 앓았던 가장 큰 문제인 지방이완의 문제로도 연결되는 점임.


 

6. 

조선 정부는 이미 1894년 7월 23일에 모든 역량을 상실하고 사실상 빈껍데기만 남았음. 그리고 이러한 시발점이 바로 청일전쟁에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조선이 입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자면, 진짜 참혹함.


우선 1895년 조선 정부의 세입은 93년 800만 엔 이상에서 심각하게 떨어진 110만엔 이하로 떨어졌음. 세금이 걷혀야 뭔가 쓰던가 말던가 하는데 저 110만엔도 겨우 걷힌 것.


거기에 평양부 수출액이 50만 달러에서 1/10 수준이 5만 달러 이하로 뚝 떨어졌고, 원산부의 해관세는 아예 0을 기록함. 제물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데 기존 120만 피아스트에서 11만 피아스트로 급감.


원산의 경우 아예 경제 활동이 중단이 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는데, 일본군이 상륙하자마자 원산부 주민 1만 명이 죄다 피난을 가버리는 바람에 경제 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어 버렸음. 

 

일본군 24만에 청군 2만을 부양해야 했으니 뭐...

 

7.

거기에 평안도 주민들은 황해도로, 충청도 주민들은 대거 전라도와 제물포로 도망쳤고, 그 덕분에 물가가 5배로 폭등하는 기염까지 토함. 


한 예로 짚신 1짝에 4전 하던 것이 30전까지 폭등했다는 기록이 있음. 


주요 곡물수출 기지던 원산은 오히려 곡물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 식량난에 시달렸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음. 


청일 양국 군대가 이질과 콜레라도 같이 가져오면서 30만 명(평안도만 6만)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대재앙인 수준임.


조선은 조선 그 자체로 인하여 망한 것이 아니라 저 청일전쟁에 휘말렸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발전하던 역량마저 상실해버렸던 것임. 그나마 일본한테 300만엔 차관 빌려달라니까 생색부리면서 안빌려주려고 하더라고.


조선이 빈자의 국가로 인식되는 것은 청일전쟁의 여파가 너무나도 큼. 진짜 해관세 체제의 붕괴와 서해 교역망 파괴가 뼈아프더라고.

출처 https://blog.naver.com/kkumi17cs1013/22174421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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