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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 경험담-마지막이야기(숲어린이집)
게시물ID : humordata_19842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께레
추천 : 16
조회수 : 1685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23/04/21 0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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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부설 어린이집에서 토사구팽을 당하고 새로 가게 된

어린이집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장이

운영하는 다른 어린이집에 심부름을 갔는데 어디선가

낮익은 아이가 놀이방에서 놀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이름을 물어보니 전에 내가 먹여주고

기저귀 갈고 재우던 주임교사의 딸이었다.

너 맞구나 니가 여기 왜있지?”

반갑기도 하고 놀라운 내 물음에도 나를 기억못하는 그애는

어리둥절하고 다른 아이들이 얘 엄마랑 같이 왔죠라고

대답했다. 다른 방에서 그 엄마가 나오더니 나를 보고

역시 놀라며 ! 선생님 여기 왠일이죠.. 혹시?” 하길래

연유를 설명하니 아 그렇구나 우리 **이 많이 컸죠 벌써

4살이예요. 그리고 나 여기 주임이예요.” 출산한다고

퇴사한 주임은 아기를 낳고 이곳에 주임교사로 근무하는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나의 푸념을 원장에게 전달해서

나를 퇴사하게 만든 사람을 새 직장의 자매 어린이집에서

재회하게 되었던 것이라 **이는 반가웠지만 주임을 보기엔

좀 기분이 그랬지만, 결과가 그렇게 될 것을 계산하고

말한 것은 아닐거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임은 거기서도 다시 퇴사를 했다.

이제는 자기가 원장으로 보육시설을 운영하기 위해서였고

후임으로 자리한 사람이 식빵을 잘 날리는 그 샘이다.

 

 

두 개의 어린이집을 오가며 운전도 하고 보조교사도 하고

고장수리, 시설보수도 하고, 조리사님과 샘들과도 친하게

지내면서 홈페이지에 사진도 찍어 재미나게 편집해 올리고

하는 동안 학부모들과도 친해지고 좋은 인상을 남기며

바쁘고도 재밌는 시간을 보냈고 회계실수 말고는

원장 마음에 들게 일을 썩 잘했으므로 오래오래

여기서 함께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세상사 마음먹은데로

흘러가지 않았고 엉뚱한 곳에서 발생한 사소한 문제가

나 모르게 폭탄이 되어 내 등뒤에서 터지고 말았던 것.

 

 

어느날 부터인가 어린이집 현관 앞 아이들 등하원하는

곳에 주차되어있는 승용차가 통행을 방해했는데 연락도

잘되지 않았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주차를 하기에 어느날

아이들이 모두 하차한 다음 일부러 그 차가 나가기 힘든

위치에 통학차량을 주차하고 원에 들어갔다.

차 빼달라고 연락해도 무시하던 그 차주는 자기 차가

나가기 어렵게 되자 그 동안의 불편을 준것에 대해서

사과하기는커녕 내가 누군줄 알고 감히...”라고

고성을 지르며 화를 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해서

두명의 남자를 오게했는데 호출된 두 사람은

아파트관리소장과 동대표였고 발광하는 그녀는

아파트 전 부녀회장이었던 것.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감히 아파트 관리동 안에 위치한 어린이집 직원주제에

높으신 전 부녀회장의 고귀한 승용차를 막아 놓는

불경을 저지른 것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치니 원장도 나오고

동료 교사들도 나오고 전후 사정을 설명들은 사람들은

누구의 잘 못을 판단하기 보다는 그정도 가지고 뭘 저리...

지가 잘못했구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광분하는 그녀

앞에서 차마 말은 못하고 ..잘 해결하시죠.”라며

자리를 떴고 나는 잘못한 놈이 저 난리야

전 부녀회장이 그리 대단한건가? 라고 생각하며

차를 옮겨 주차하고 잊어 버렸다.

그런데 얼마후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재작성하는

시간이 되자 원장이 뜬금없이 말도 안되는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다음 학기에는 더 좋은 곳으로 가실

의향이 없느냐, 우리 원에서는 사정이 있어 어쩌구 ...

하는데 원장님 그냥 솔직히 말씀하세요 제가 그만두기를

바라시는 것 같은데 말 돌리지 마시고 말씀해 보세요

..그게 좀 그렇긴 한데 ..예 사실 그래요 그만 두셨으면

하구요”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근무하면 될까요?”

명확히 이유도 없이 권고사직을 당하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부녀회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 말고는

없다는 답이 나왔다.

 

 

명절때마다 과일 바구니와 선물을 챙겨 들고

관리 사무실을 방문해야 했던 원장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고 사건을 일으킨 나는

유능한 인재에서 어린이집 운영의 장애물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후 나는 다시 실직을 했고 자기

기분 나쁘게 했다고 다른 사람의 밥줄을 끊어

버릴 수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헌신적인 직원을 사슴없이 잘라 버리는 현실에

혐오와 환멸을 느끼며 우울한 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 시간은 좀 길었고 힘들었다.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었고

내가 도움이 되는 일을 수행할 때 만족과 보람이 컸다.

몸 아픈 것은 견디는데 익숙하지만 마음을 다치면

너무 힘들고 아팠다. 불면증이 생기고 의기소침하고

눈물과 한숨이 났다.

 

 

그러던 중에 교회어린집의 주임이었던 샘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뭐하시냐고, 몸은 안 아프시냐고 안부를 묻고

자신이 어린이집을 개원해서 운영중인데 마침 운전하는

분이 일이 생겨서 일주일만 차량운행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기꺼이 승낙을 하고 어린이집으로 찾아갔더니

**이는 어느새 1학년이 되어 학교를 다니는 중이었고

동생은 4살짜리 개구쟁이로 자라있었다.

1주일간 차량운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원장이 정말

인생을 걸고 열심히 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과 처음

경험해 보는 숲 어린이집이 무척 재미있는 곳이고

아이들이 정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숲어린이집의 생활은 자연과 함께하는 야외활동과

체험학습이 주로였다. 아이들 먹거리는 전부

유기농으로 배부를 때까지 먹이고 활동 후에는

깨끗이 씻겨서 재우고 교사들은 서로 협동해서

업무수행을 하고 친하게 잘 지냈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자 원장은 나에게 이곳의 생활이

어땠냐고 물었고 나에게 함께 일하자고 권유했으며

나는 아내와 상의한 후 그곳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나는 교사와 기사를 겸직했으나 거기서는

교사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켜 운전은

원장이 하고 나는 교사로서 근무하게 되었다.

남녀 구분없이 아이들은 야외활동이 편한 개량한복같은

원복을 입고 교사들은 같은 재질의 앞치마를 두르고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 전에도 가끔 앞치마를 두르긴 했었지만, 이제는

운전자가 아닌 차량동승자로서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

등하원을 보조하게 되니 어색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보육교사라는 직책에 맞게 학부모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처음엔 

어머...왠 남자가...”하고 놀랐던 학부모들도

이내 익숙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인근 지역인 지난번

근무지에서 나를 좋게 보았던 학부모들에게서 좋은

남자선생님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던 까닭이었다.

숲어린이집은 한 주에 두 번 산행을 하고 한 번은

동네 놀이터에 가서 모래놀이를 했다.

모래놀이를 하는 날은 캠핑용 웨건에 냄비, 사발, 주걱,

프라이팬,,국자, 모종삽, ,수저.등등 온갖 주방도구들을

싣고 가서 모래로 밥을 짓고 모래를 둥글납작 모아 그위에

꽃잎과 나뭇가지 돌맹이로 장식해 케익을 만들고,

컵빵을 찍어내고 두꺼비집을 만들며 놀았다.

가끔 친구 머리에 모래를 뿌리다 혼나는 녀석도 있었지만,

엄마가 더럽다고 만지지 못하게 하던 흙, 모래를

마음껏 주무르며 노는 모습은 자유로운 아이 본연의

모습이었다. 나도 같이 열심히, 아이들은 들기 힘든

커다란 팬으로 빵떡찍기를 하며 함께 놀았다.

숲으로 가서 노는 날은 모자, 토시, 긴양말, 운동화로

꽁꽁 싸매고 비오는 날도 바람이 심하지 않으면 우비를

입고 장화신고 숲으로 갔다. 아이들은 오히려 빗길 산행을

더 좋아하는 것도 같았는데 예쁜 비옷에 장화를 신고

물웅덩이를 만나면 일부러 뛰어들어 철벅거리며 물을 튀기고

얕은 웅덩이에 드러눕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들은 숲에 대한 지식들을 공부하고 아이들에게도

알려주니 숲길을 걷다 만나는 개미와 나비는 친구였고

나뭇잎에 붙어있는 노린재도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가마중과 맥문동 열매를 먹는 것으로 알고 따먹기도 했지만,

많이 먹으면 안된다는 선생님 말씀을 기억하고 두 세알만

따먹는 모습, 커다란 산지렁이가 흙속에서 나와도 놀라지 않고 만지며 놀다가 

지렁이가 화상입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뭇가지로 살살 그늘로 옮겨주는 모습에서 

자연사랑을 배워가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숲속 산책로를 따라 오래 걸어가는 날도 있지만 나무사이

오솔길을 올라 진짜 숲으로 가는 날에는 기저귀찬 아가들도

엉덩이 빵빵한채 산을 오르는 모습이 놀라웠다.

저연령 아이들은 조금만 올라가서 자리깔고 밥먹고 오지만,

3세 이상 아이들은 산중턱까지 올라가 동행한 숲해설가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숲의 자연환경과 꽃과 나무와

곤충에 대해 배우고 놀이를 함께하며 나뭇가지와 풀잎과 꽃을 모아 꾸미기도 하고 

솔방울과 도토리를 줍기도 하고 놀았지만, 숲해설가는 할머니였고 교사들은 모두 여자라서 벌레를 덥석덥석 잡거나 나무에 올라가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노는데 선수인 나는 곧 새로운 놀이를 찾아 내었다. 바닥이 평탄한 

넓은 장소의 나무 가지에 아이들이

쓰고 온 모자를 벗겨 걸어두고 솔방울을 던져서

모자를 떨어뜨리는 놀이는 아이들이 몹시 즐거워했었다.

기다란 나뭇가지로 풀숲을 휘저으면 놀라서 뛰쳐나오는

베짱이 풀무치를 잡아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땅에 떨어진 도토리가 몇 개 없을 때는

참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

가지를 흔들어 열매를 떨어뜨려 주었고,

밤나무 줄기 썩은 구멍에서 사슴벌레도 찾아내고,

산책로를 걷는 날에 패트병을 준비했다가

나무에 붙은 매미를 열 마리 넘게 잡아서 아이들에게

만져 보게하고 머리며 옷에 붙여 사진도 찍어주었다.

꽃과 나뭇잎은 만질 수 있지만 곤충은 만지지 못하는

샘들과 달라서 아이들은 나와 노는 것을 좋아했었다.

나는 아이들과 노는 시간에는 그냥 내 자신이 아이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 때도 좌측 고관절은

괴사상태여서 많이 걸어도 아프고 무거운 것 들면

안되는 상태였는데 아이들과 놀면 까맣게 잊어 버리고

무리를 한다. 그리고 밤에 아파 잠 못자고....

아내는 가끔 내게 말한다

자기는 오버하지마라 쫌 자주 오버를 해서

문제다 문제야맞는 말인줄 아는데

철이 안드는 나를 어째...

한바탕 놀이를 하고 숲 속 공터에 자리를 깔고

원에서 공수해온

따뜻한 밥과 찬으로 점심을 먹고 원으로 돌아오면

마당에서 일단 흙먼지를 털고 신발 양말을 벗은 후에

실내로 들어와 화장실 앞에서 속옷까지 모두 벗고

씻으러 들어간다. 씻기는 일, 몸을 닦아주는 일,

새 옷입히는 일을 샘들이 분담해서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고

아이들은 취침에 들어간다. 잠투정하는 아이들은

자장가를 불러주고 안아서 재우기도 하고 잠들때까지

토닥이기도 했다. 재우는 도중에 내옷에 3번이나

오줌싼 녀석도 이제는 청소년이 되었겠지.

아이들이 잠들면 샘들은 보육계획안이나 일지를 작성하고

간식도 먹으며 회의를 했다.

아이들은 오후 간식 시간까지 재우고 난후 일어나

침구 정리를 하고 간식을 먹는다. 간식을 먹고나면

교사들은 설거지와 청소와 숲에서 더럽혀진 옷세탁을

하는데 이 역시 역할을 나누어 하고

나는 설거지를 담당했었다. 영아반이 아니라서

기저귀 가는 일은 없었지만, 앞치마 입고 차량을 타고

설거지도 하고 아이들 먹이고 재우고 제대로

보육교사답게 일했던 시절이었지만,

내 건강이 무리라는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은 평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우수보육시설이라는

인증을 받는데 나는 첫 근무지부터 가는 곳마다

평가제를 마주치게 되었었다. 평가제는 시설외관부터

내부 공간, 활동영역의 적절한 구분, 교재교구의 비치와

품질상태, 각종 서류의 구비와 교사의 보육능력까지

모든 것을 보고 평정을 하는데 그래서 그 기간에 교사들은

서류를 만들고 원내부를 적절하게 분리하고 꾸미고 안전에

위험요소들은 제거하고 교체하는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몸과마음이 극도로 피곤하고 지쳐

예민한 상태가 된다.

전에 근무한 한 곳에서는 70가지가 넘는 서류들을

정리해야 했고 한 곳에서는 힘쓰는 일을 도맡아서 했지만,

여기서는 딱히 정해진 역할은 없어 나는 애초에

근로계약서에 정한 시간에 퇴근을 했다.

숲에 가는 날 점심배달은 원감샘과 원장님이 맡았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일을 내가 맞게 되어있었다.

아이들 산 입구에 도착하면 홀로 내려와 원으로 돌아가서

밥이 담긴 스텐보온통 하나와 국이 담긴 보온통 하나

그리고 찬과 수저가 담긴 배낭을 싣고 와서 양손에 하나씩

보온통을 들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산중턱까지

운반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더군다나 고관절 괴사로 다리가 아픈데다

무거운 것을 들고 산을 오르는 일은 고통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형벌같았다.

그 때 내 다리는 더 많이 망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이래서는 견디기 힘들어 이야기를 하고 개선점을 찾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은 전부터

내가 아픈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얘기하면 될 것도 같았지만,

평가제로 일이 늘어나 퇴근시간이 늦어진 샘들은

혼자 먼저 퇴근하는 나를 은근히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퇴근을 한시간 정도 미뤄보았자 큰 도움도 안될 것 같았고,

지금 내가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기에

그 자리에서 모두에게 얘기했다.

지금 나는 여러 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이다.

건강이 나빠져서 지금 일도 버거운데 평가제 일까지

더할 수 없는 상태이고 무리하면 더 나빠질 것이니

이쯤에서 도움이 되는 새 사람을 구해 평가제를 잘

해나가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퇴사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뜻밖의 내 말에 모두 놀라고 당황했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짐이 되고싶지 않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퇴사를 했었다.

내 적성에 딱 맞고 즐겁고 보람있고

오래 함께 하고 싶었던 숲어린이집을

내 건강 때문에 너무나 아쉽게 자진퇴사했고

나는 오랫동안 쉬면서 건강을 추스렸다,

평가제는 나중에 통과했다는 풍문을 들었고

휴식 후 다시 나는 여러 군데 어린이집을 근무했지만,

나의 보육교사 경험담은 여기서 끝을 맺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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