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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황당한 초고대 문명설, 다케우치 문서
게시물ID : humordata_19840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0
조회수 : 3967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23/04/18 13: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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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득히 먼 옛날, 지금보다 더욱 발달한 과학기술을 가진 강력하고 번영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가 멸망했다."라는 이른바 초고대문명설은 전 세계의 많은 지역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이 <크리티아스>에서 말한 아틀란티스이고, 한국에도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같은 위대한 고대사를 강조한 책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그런 초고대문명설에 대한 문헌이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다케우치 기요마로(竹内巨麿)가 발표한 다케우치 문서(竹内文書)인데, 그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아틀란티스를 능가할 정도입니다.  

 

竹内巨麿.jpg

 

  1874년 일본 혼슈의 도야마현에서 태어난 다케우치 기요마로는 이웃집의 농부인 다케우치 집안에 양아들로 입양되었다가, 21세가 되던 1894년 7월에 도쿄로 올라가서 돌을 다듬는 기술자인 석공의 집에서 머무르면서 석공 기술을 배우다가 당시 새로이 등장한 종교 단체인 온다케교(御嶽敎)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910년, 다케우치는 온다케교를 나와 자신이 직접 새로운 종교 단체인 아마츠교(天津敎)를 만들었습니다. 아마츠교는 당시 일본의 신흥 종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일본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문명이며, 그렇기에 일본은 세계를 지배할 자격이 있다."라는 국수주의적인 교리를 내세웠으며 그런 이유로 국수주의적인 열망이 강했던 군인들이 신도로 많이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1928년 3월 29일, 다케우치는 마침내 다케우치 문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다케우치 문서를 가리켜 다케우치는 자기 가문인 다케우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고대 역사에 대한 신비한 문서라고 주장했으나, 만일 사실이라면 아마츠교를 창시했을 때 공개했어야 타당한데 왜 18년이나 지난 다음에야 공개했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케우치는 여러 고대 문헌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짜깁기하고 베끼면서 다케우치 문서를 만들고 있었다고 봐야 타당합니다.

 

竹内巨麿1.jpg

 

竹内巨麿2.jpg

 

  다케우치 문서의 내용들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수십 만 년 전의 아득히 먼 옛날, 일본은 전 세계의 수도였습니다. 그 중에서 일본 혼슈 도야마현의 오미진산 히다의 노리쿠라 지역에는 고대의 모든 사람들이 숭배했던 황조황태신궁(皇祖皇太神宮)이라는 신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또한 고대 일본은 전 세계 각지에 문자를 가르쳐준 곳이었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의 문자로 알려진 수메르의 쐐기 문자를 비롯하여 페니키아 문자, 알파벳, 그리스 문자,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와 중국의 한자, 조선의 한글, 거란 문자와 여진 문자와 몽골 문자와 만주 문자들도 고대 일본의 문자인 신대문자(神代文字)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다케우치 문서의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의 현자들인 모세와 부처와 공자와 노자와 예수는 모두 일본에 와서 진리를 배웠으며, 그런 이후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일본에서 배운 가르침을 전파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고대 일본은 수십 만 년 전부터 전 세계를 통일하여 지배하고 있었으며, 특히 일본의 군주인 일왕(천황)들은 하늘을 번개 같이 빠르게 날아다니는 배인 아메노우키부네(天の浮船)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일왕들의 후손인 고대 일본인들은 신에 가까운 신비한 민족이어서 평균 수명이 1만 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대의 세계 각지에서는 지진과 홍수와 화산 폭발 같은 자연재해들이 계속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넓은 땅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일본의 세계 지배는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세계 각지의 외국인들은 자신들이 옛날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관련 자료들을 파괴하고 불태우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을 벌였는데, 알렉산더 대왕과 카이사르와 이슬람 제국이 그런 이유로 외국 원정에 나섰다고 합니다......

 

  다케우치 문서가 발표되자, 일본 사회의 반응은 두 가지로 엇갈렸습니다. 

 

  지식인들은 다케우치 문서가 1928년에 들어 다케우치 기요마로가 위조한 가짜 역사서라고 비판했으나, 정치인과 군인들은 다케우치 문서의 내용을 접하고 "고대 일본이 세계를 지배했으니, 그 후손인 현재의 일본이 세계를 지배할 정당한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라고 환호하면서 다케우치 기요마로에게 자금을 지원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다케우치 문서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군대 내부의 젊은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일본 경찰에 적발되어 다케우치 기요마로가 체포되었으나, 다케우치 문서에 열광했던 일본 군부의 압력에 의해 다케우치는 곧바로 풀려났습니다.

 

  다케우치 문서가 발표된 지 3년 후인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의 만주를 침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을 상대로 한 본격적인 침략전쟁에 나섰습니다. 한낱 가짜 역사서가 2천 만 명의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출처 일본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301~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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