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나는 작년부로 유부징어가 된 이제 젊지 않은 여자임.
아주 길고 꾸질꾸질했던 연애경험썰을 풀어놓고 싶어서 몇 글자 끄적여봄.
(여기 나오는 연하남과 현남편은 다른 인물임. 내 인생 제일 잘한 두 가지가 연하남과 헤어진 거랑 현남편이랑 결혼한 거임.)
본인 27세경, 6세 연하남과 연애를 시작함.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는 내 상태가 좀 괜찮았는데 연애 시작하고 2달인가만에 폭망함.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이 넘도록 새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기숙사에서 나와 살기 시작한 자취방은 1층- 겨울이었는데 정말정말 추웠고,
노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생활고가 시작되었고, 그 외 가정사로 인해 내 자존감이 절벽으로 미끄럼틀타기 시작함.
그 와중에 연하남이 헤어지자고 이별을 고했는데 당시 나년은 헤어지지 말아달라며 매달림. (당시의 나는 정말 나년임)
얘까지 없어지면 내 상태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없어질 것 같았음. 그래도 마음 쉴 곳은 있어야하지 않겠냐면서. 나란년.....
한 두 번 정도? 더 그랬음. 그 사이에 어찌저찌 안정을 찾아갔지만 헤어지자할 때마다 매달렸음.. 하... 나란년....
그래 뭐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을 수도 있겠지. 뭐 어찌됐든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게 나쁜 건 아니잖음?
하지만 일련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둘 사이에 묘한 서열같은 게 생김. 분명 연인이면 동등한 관계여야 할텐데 나란년때문에 그게 실패함.
상대는 마치 나를 '만나주는' 느낌이 됨.
심지어 연하남의 엄마가(어머니라는 단어도 쓰기싫음) 나를 만나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를 '할매'라고 지칭한 사실을 알게됨.
당시 27세!! 주름 하나 없었는데!! 그리고 저 말은 연하남이 친절하게 알려준 사실임.
웃는 사진을 보고 입이 찢어졌다는 둥 선물을 줬는데 '이런 거 많은데 뭐하러 주냐'고 했다는 둥... 이게 만나고 1년 정도 안에 다 생긴 일임.
(이 엄마는 헤어지기 1년 전에 대히트를 침. 결혼할 때 현금 예단 5천 들고오라고 했음. 근데 연하남은 이게 뭔 뜻인지도 모르고 나한테 전함)
나년은 그래도 그 엄마한테 잘보이겠답시고 생일선물로 우리엄마한테도 안 줘 본 백화점표 고오급 스카프도 사서 바치고
철철이 명절마다 선물 보내고 생일 때 케이크 사다드리고 그럼. 하............. (과거의 나년 진짜 때리고싶다)
그 연하남 화장품도 사서 바치고.. 더 쓰면 자기비판이 너무 심해질 것 같으므로 중략하겠음..
암튼 바리바리 잘 싸서 보내고 바침.
내가 받은 거? 6년 만에 이름도 모르는 어디 길거리 잡화점에서 하나 줏어온 듯한 스틱 선크림 하나.. 자기 엄마가 준거라며... 아.... 그래...
7년, 2500일을 만났는데 기념일은 400일 이후로는 안 챙김. 이유는 귀찮다고.
(생일 선물은 서로 정해진 금액 안에서 주고받았으므로 제외함.)
아, 하나 덧붙이고 싶은데, 헤어지면서 연하남이 나한테 자기 부모에게 잘보이려는 노력이라도 해봤냐고 함.
명절이랑 생일때마다 내가 사 준 선물들은 다 무엇이냐 물으니 직접 갖다주지 않은 것(연하남을 통해 전달)이므로 무효라고 ㅋㅋㅋ
연하남은 14번의 명절이 지날 동안 단 한 번도 나의 부모님께 선물을 준 적이 없었음.
이런 꾸질꾸질한 연애를 계속하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아끼는 동생과 전화를 하다가 크게 깨우침.
동생이 물어봄 : 언냐, 바쁜 남자랑 연애하면 어때?
당시 연하남은 매우매우 바쁜, 나에게만은 미어터지게 바쁜 남자였음. 개발자라는 직업의 특성 상 밤샘도 잦았고 암튼 바빴음.
이렇게 근무시간 중에 오유에 글 쓰는 시간 같은 건 낼 수가 없었음. 이런 바쁜 상태가 한 5년 정도 지속됨.
나는 대답함 : 니가 너무 너무 좋다면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아.
그랬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연애를 하고 있었음. 당시 나에게 연애가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단호히 "놉"이라고 함.
행복하지 않았음. 늘 나는 기다리는 쪽이고 을이어야 했으며 늘 먼저 숙이고 들어가야 했음. 늘 내가 맞춰야만 지속되는 연애.
농담이었지만 "이 연애를 함으로써 나는 보살이 되는 거 같다" 고 했음. 약속이 파토나는 일은 다반사였으며, 그럼에도 이해해줘야함.
그렇지 않으면 이 연애가 쫑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를 가장한 포기를 해야했음.
왜 연애를 계속했냐고 물어본다면, 당시의 나는 대답하지 못했겠지만 이제 나는 대답할 수 있음.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연애를 시작했다. 당시 상대는 나에게 쉴 수 있는 곳이라고 인식이 되었고, 그것은 마치 습관처럼 굳어졌다.
한 번 그렇게 깊게 뿌리박혀버린 상대와 헤어진다는 것은 마치 아기에게서 부모를 떼어놓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 부모가 타인이 보기에 아무리 나쁜 부모라 하더라도, 아기에게는 그냥 부모일 뿐이다.
길고 긴 자기비판의 시간을 거쳐 깨달았음. 결국 내 문제였음. 바닥을 치다못해 뚫고 들어가버린 나의 자존감.
나는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연애를 하고 있었음. 내가 없었으므로 상대를 나에게 채워갔음. 마치 상대가 나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나에게 해줬어야 마땅한 많은 것들을 상대에게 해주고 있었음.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었음.
마치 내가 무엇이든 다 포용할 수 있는 이해심이 태평양같은 여자인양,
니가 안해줘도 나는 괜찮아^^ 내가 더 하면 되지 뭐^^ 이 지르박댄스를 추는 중이었음.
나는 속이 좁고 뒤끝이 길고 이기심이 가득한 여자임. 욕심이 많고 계산적이며 게으른 그런 여자!!!!
내가 뭘 하나 해주면 너도 나한테 해줘야지^^ 이게 당연한 여자인데 연하남 앞에서는 작아지기만 함.
※지금 이런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자기비판의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음? 멀쩡해보이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다 나쁜 사람인 경우, 또는 끝이 매우 안 좋은 경우.
물론 나쁜 사람도 있음. 왜 없겠음. 근데 안 그랬던 사람도 연애를 하면서 나빠지는 경우도 봤음.
늘 받아주니까. 내가 나쁜 짓을 해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나 조금 수그러진 모습을 보이면 만사 오케이니까.
난 그런 여자를 알고 있음. A라고 하자. A는 늘 연애를 할 때마다 남자가 좀 쓰레기였음. 다양함. 바람을 피거나 폭력...도 있었고,
좋게 끝난 경우를 본 적이 없음. 처음에 나는 다 남자가 쓰레기라서 그래! 라며 위로해줌. 근데 가만히 보니 A가 그렇게 하는 면도 있었음.
헌신하다 헌신짝 되는 게 바로 A였음. 그.. 묘하게 남자에게 굴복하는 듯한 이미지, 겁먹은 듯한 제스춰, 자신없는 행동이나 말투...
근데 밖에서 보면 또 똑소리 나고 야무지게 말도 잘하고 요목조목 잘 따지는데 남자 앞에서는 안 그럼.
그 묘한 분위기? 마치 자기가 남자 밑에 있는 듯한... 이게 잘 되면 남자를 조종하는 여운데 A는 그냥 여우같은 헌신짝이었음.
그리고 나도 그랬음. 연하남 앞에서의 나를 되돌려감기해서 보면 그랬음.
연하남이 나를 막대하는데도 나는 그걸 몰랐는지 모르고 싶었는지 그냥 그러려니 함. 내 안에서는 계속 합리화 시전 중.
피곤하니까 그렇겠지.. 나한테만 저렇게 행동하는 것도 내가 제일 편해서 그런걸꺼야. 이따위의 합리화.
나는 이것도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함.
자존감이 높다고 해서 막 닥치는대로 불합리를 따지고들고 그러지 않음. 어느정도는 참아주지만 그게 안되면 단호하게 나설 수 있음.
왜냐고? 연애보다 내가 더 위에 있어야 하니까. 연애라는 행위도 내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알아야 함.
연애는 다시 할 수 있지만 나는 다시 할 수 없으니까. 나에게 있어서 나는 가장 소중한 상대라는 것을 알아야 함.
나는 이걸 7년동안 분실한 상태였음. 나 자신은 맨홀구멍 안에 꾸역꾸역 밀어넣어두고 상대방을 반짝이는 내 의자에 앉혀놓은 것임.
나는 언제나 내 의자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연애는 내 옆에 다른 의자를 하나 더 마련하는 것이지 내가 내 의자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님을,
그 오랜 시간동안 망각하고 있었던 것임. 그래서 상대가 내 의자를 발로차고 더럽혀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할 뿐이었음.
그리고 나는 정말 끝내주게 헤어짐. 내 자존감은 물론이거니와 나 자신조차도 망가질 뻔했음.
깊고 깊이 뿌리박힌 인식을 고치는 건 정말 힘들었지만, 그 시간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함. 7년어치 밀린 나와의 이야기를 모두 마무리 해야했고,
7년동안 처박혀있느라 꼬질꼬질해진 나를 깨끗이 씻어주어야 했음.
탈탈 털어 말리는 도중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남. 목욕 후의 고양이처럼 예민했던 나에게 남편은 시간을 주었음.
그리고 다정히 옆을 지켜주고, 나를 다 받아주려고 노력함.
그 차이는 정말 대단히 큰 것이어서 나는 정말 놀랐음. 아! 이게 연애라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었음.
행복하다는 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임을.
이 긴 이야기의 끝?
나는 내 의자를 깨끗이 닦고 부서진 곳을 싹 고친 후 앉아있음.
그리고 내 안에 나와 비슷한, 하지만 다른 모양의 의자를 하나 더 들여놨음.
우리는 같이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눌 것임. 오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