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6일 그림 로비 등을 한 뒤 장기간 해외도피까지 한 한상률(58) 전 국세청장에 대해 무죄판결, 파문이 일고 있다. 벌써부터 트위터 등에서는 "이게 MB정부가 말하는 공정사회냐"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원범 부장판사)는 이날 그림 `학동마을'을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상납한 뇌물공여 혐의와 주정업체 등으로부터 자문료 형식의 거액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그림 로비 의혹과 관련, "2007년 당시 차장이던 한 전 청장이 굳이 인사청탁에 나설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학동마을을 구입한 경위 및 전달과정을 통해서도 뇌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경쟁자의 사퇴 시나리오를 들고 함께 만났다 진술한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 이모씨가 한 법정 진술은 남편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협조적이지 않았던 한 전 청장에게 증오심을 갖고 한 허위, 악의의 진술로 보여 믿기 어렵다"며 전군표 부인 주장을 악성 허위로 규정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주정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이 주장하는 주정업체와 소비세과장, 한 전 청장 및 당시 국세청 대변인, 회계법인 등 관련자들의 관계에 대한 시나리오는 상대적 우월을 확보할 뿐 합리적 추론으로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한 전 청장은 국세청 차장이던 2007년 청장인 전 전청장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시가 1200만원상당의 그림 '학동마을'을 건넴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또 그림로비 의혹이 불거진 뒤 미국에 머물며 주정업체 3곳으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현직 국세청 과장을 통해 6천9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도 받고 있다. 그는 해외체류 기간중 국내 굴지의 대기업 등 7대사로부터도 6억6천만원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으나 검찰은 이를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달 열린 결심공판에서 한 전청장에게 징역 4년에 벌금1억8천만원, 추징금 6천900만원을 구형했다.
한 전 청장은 지난 2009년 1월12일 전군표 전 국세청장 부인이 "2007년에 한상률 청장으로부터 고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 받았다"고 폭로한 데 이어 2008년 12월에 포항에서 이상득계 한나라당 의원 등에게 골프접대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자, 사흘뒤인 1월15일 전격 사표를 제출했다. 그후 그를 둘러싸고는 '박연차 구명로비 의혹' 등 각종 의혹이 줄줄이 제기됐다.
그로부터 두달 뒤인 3월15일 그는 돌연 해외로 출국했고, 검찰은 그가 출국한 보름 뒤에야 수사에 착수해 '권력비호성 해외도피'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왔다.
이 과정에 안원구 국세청 전 국장이 "도곡동 땅 주인은 이명박 대통령이며 한상률 청장의 부탁으로 이상득 의원 아들에게 한상률 유임을 부탁했다"고 폭로하면서 파문은 급속 확산됐고, 검찰은 그해 11월20일 안 전 국장을 구속했다. 안 전 국장은 지난해 9월24일 항소심 공판에서 "(도곡동 땅 주인이 이명박이라고 명기된)전표를 직원들이 다 봤다"며 거듭 도곡동 의혹을 제기했다.
2년 가까이 해외도피 생활을 하던 한 전 청장은 지난 2월24일 전격 귀국했으나 검찰은 그를 불구속 기소했고, 그후 반년만에 무죄판결을 받기에 이르른 것이다.
수감중인 안원구 전 국장은 한 전 청장이 불구속 기소된 지난 4월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방적으로 한 전 청장의 변명을 합리화하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며 "언젠가는 진실이 발견될 수 있도록 진정한 수사가 이루어질 것을 확신한다"며 정권 교체후 재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장담한 바 있다. 박태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