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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섯에 시작한 첫사랑이었다.
제대로 연애 한 번 없던 복학생이 허세삼아 가입한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첫인상도 별로였고 이상형도 아니던 누나와,
어쩌다 잡아본 손 한 번에 설렌 가슴으로, 시작되었다.
여고괴담을 보며, 무서워 내 가슴팍으로 파고 들던 모습이 마냥 좋기만 하던,
썸처럼 시작한 연애.
연애 초보를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사회초년생을 일까지 가르쳐가며, 그렇게 몇 년의 연애 끝에, 헤어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가벼운 줄 알았던 그 사랑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옆에 있던 그이가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게 다 완벽했는데, 왜 나를 사랑하는지 이상한 사람이었다.
죽고 싶을 만큼 아팠고, 감사했고, 미안했다.
헤어지고 나서야 사랑할 준비가 다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다시 사랑을 하게 된 날, 실은 그 날부터,
그이를 잡을 수 없다는 걸, 가슴 한 구석에서 늘 되새겼다.
다시 날 떠난다면, 다시는 잡지 못 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늘 작기만 한 나,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이라,
사랑받는 것이 행복하였지만, 죽을 만큼 또 아플까 무서웠다.
19년의 첫사랑이 끝났다.
준비가 길었지만, 실제는 늘 연습과 다르다.
세상에 내가 초라하지 않은 단 하나의 이유,
세상에서 가장 큰 내 편, 이제 그인 내 편이 아니다.
그리고 더는, 난 그를 울며 붙잡을 수 없다.
잡아야 할 기회가 있었을 지도, 그 천우를 무시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랴, 산은 너무나 많았고, 골은 너무나 깊었다.
다리를 놓지도 못했고, 체력을 기르지도 않았다.
겁이 나서, 두려워서 길 나서길 망설였으니,
먼저 떠나간 이의 행복을 비는 게 최선이려니.
수월한 길이 있어 산 넘지 않아도, 골 건너지 않아도 되길.
다리를 놓아주는, 산을 안아 오르는 이와 늘 함께 하길.
생각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그 때보다 조금만 덜 아팠으면 좋겠다.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하더니, 되돌아보면 후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