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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섹 수술 회복기
게시물ID : freeboard_5366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술취한코양이
추천 : 2
조회수 : 364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9/11 13:21:08
라섹 수술의 고통에 대해서 공유하고 싶기도 하고,, 다음에 일기처럼 읽으면 재밌을것 같아서 글을 씁니다

왼쪽눈 근시 -5.8 난시 -1.5
오른쪽눈 근시 -5.5 난시 -0.5

라식은 깍아내는 깊이가 너무 많기에 불가능하고 라섹으로 선택했다.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웨이브프론트 양막M+ 라섹' 수술을 선택했다.
비용은 180만원 + 회복에 도움되는 어쩌구 10만원 = 190만원
친구소개라고 했더니 깎아줬다. -20만원 = 170만원.

9월 8일 14시 수술 준비 및 검사를 했다.

15시 수술대에 누웠다.
빨간점만 쳐다보고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자동차 왁스 칠하듯 빙글빙글 도는 원을 내 눈에 대고 검은 눈동자 위를 갈았다.
보이던 빨간점은 이미 뿌옇게 보였다.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날거라고 하더니 과연 냄새가 나고 빨간점이 점점 크게 보였다.
70% 50% 30% 남았다고 옆에서 보조의사가 말해줬다.
보조의사가 말할때마다 빨간점은 점점 크게 보이더니 맨마지막엔 밤하늘의 별들처럼 점점이 박혀 있는듯 했다.
(순간순간은 무슨 다큐에서 보는 개미눈처럼, 깨진 유리처럼, 한사람이 몇개로 보였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몇가지 약물 치료를 하더니 렌즈로 덮어줬다.
그렇게 오른쪽눈을 수술하고 다시 왼쪽눈을 수술했다.
두번째는 과정을 알고 있기에 더 긴장이 됐다. 움직이지 않으려고 주먹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대략.. 10분 정도가 걸려서 수술이 끝났다.

16시 귀가
뭐 그닥 큰 문제도 없었고 수술 전 안경을 벗었을때 안보이던것과 비교해도 훨씬 잘보이기에 만족하며 귀가
준비해간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병원에서는
항생제? 소염제? 같은 두통의 안약과
인공눈물 한통
그리고 내 혈액에서 무언가를 뽑았다며 같이 넣으라고 했다.
2시간 마다 투여, 냉장 보관, 눈물은 수시로 넣으라고 했다.

17시 무료하다.
뭐 별로 아픈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기엔 눈이 시렸다. 할것도 없고 누워서 가만히 있으니 잠이 왔다.

18시 기상
2시간마다 넣으라는 안약을 넣고 무료함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갑자기 통증이 시작되었다. 안약이 항생제, 소염제 뭐 이런것이라 그런지 통증을 유발한듯 했다.
고통을 설명하면 밖에서는 눈을 찌르는듯 하고, 눈 안에서는 튀어나오려고 하는 느낌이 동시에 왔다.
검은 눈동자 안쪽에서부터 밀려오는듯한 통증에 이유없이 짜증이 났다.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할수 있는 것은 방바닥에서 뒹구는것뿐. 온 신경은 눈에 쏠리고 그만큼 더 아프게 느껴졌다.

20시 다시 안약 투여
18시의 고통이 다시 한번 밀려 온다. 오늘 잠을 잘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오유에 라섹 수술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글을 쓰며 눈이 도저히 시려서 못참겠어서 다시 누웠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제일 편한 자세를 찾고 취침 시도

22시 안약투여
끝내 못잤지만 그래도 고통에 조금 익숙해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심했지만 눈에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졌기에 누워서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고 그 자세를 유지하다 잠이 들었다.

9월 9일 8시 기상
남들은 눈도 뜨기 힘들었다는데 나는 눈은 쉽게 떴다.
뭐 가뿐하네~ 하며 가족들에게 참을만하다는 제스쳐를 취함.
안약 투여
지옥의 서막이 열리려하는 징조가 느껴졌다.

10시 안약 투여
통증으로 인해 미칠것 같았다.
11시에 병원이 예약되있었기에 나갈 준비를 했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땜에 바보가 된것 같았다.
그래도 가족들이 걱정하기에 웃으며 나감.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려했지만 버스에서 간질병 환자처럼 몸을 튀들어대고 막히는 차가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눈을 도저히 못뜨겠고 눈이 뜨겁고, 맵고, 눈물도 뜨겁고 코끼리가 발정났을때 눈물 흘리고, 그 눈물때문에 난폭해진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내려서 택시를 탔다.
도중에 택시 두대가 접촉사고로 싸우고 있었는데 창문을 내리고 욕을 했다.
빨리 병원에 가서 눈좀 씻어달라고, 매워죽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싸우고 있는 기사 둘이 정말 악마 같았다.

병원에서는 별 소득이 없었다. 
아 소득이 있었다. 의사가 타이레놀 먹고 있지요? 라고 했다.
망할놈의 자식이. 빨리 말을 해줘야 할것 아니냐. 약국에서 사자마자 두알을 털어놓고 택시를 탔다.
마데카솔 같은 연고 두개를 처방받아 약국에서 샀다.
계속 울었다. 약사도 나를 보고 급하게 약을 처방해줬다.
연고는 눈 아래를 잡아 늘이면 빨갓게 보이는 속살에 바르는 연고이다.
하나는 항생제, 하나는 인공 눈물
눈물은 젤 같았는데 체온에 닿으니 녹아서 물이 되었다.

집에 와서 고통을 못이겨서 계속 걸었다.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며 가족들도 불안해했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3시간이 지났을 무렵 타이레놀의 약효가 올랐는지 고통이 둔화됏다.
2시간 마다 안약을 넣으니 다시 고통이 올라와 4시간여마다 타이레놀 2알씩을 털어넣었다.

22시 취침 시도
타이레놀의 약효가 절정에 올랐을때 빨리 자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 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잽싸게 안약을 넣고 누웠다. 제일 편한 자세를 생각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
22시 30분.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오유를 하며 항상 여자친구에게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짜증이 났다. 그냥 자겠다고 하고 끊었다.
고통으로 인해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새벽 1시 30분.
너무 아파서 깼다. 아팠지만 자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시하며 억지로 꿈을 꾸려고 했지만
깼다. 눈을 만져보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잠들려 했지만 너무 아파서 타이레놀 두알을 털어넣었다.
약효가 올라오는 1-2시간 동안 고통에 몸부림 치다 잠이 들었다.


9월 10일 8시 기상
일어나자마자 타이레놀 두알을 털어넣었다.
자고 일어나서 아픔을 못느낄때 밥을 털어넣었다. 너무 아프면 밥도 안들어간다.
낫겠다는 일념으로 두시간마다 안약은 계속 해서 투여하였지만 그때마다 너무 아팠다.
옥상으로 올라가 계속 걸었다. 되도 않는 푸쉬업을 하며 운동으로 고통을 잊고자 했다.

13시 타이레놀 2알을 다시 또 속으로 털어넣었다.
타이레놀도 끝났다.
병원에서 약속한 고통의 시간은 내일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빠른 회복속도라고 했으니 긍정적인 생각으로 참아보려 했다.

15시 도저히 아파서 게보린 2알을 찾아내서 먹었다.
역시 한국인에겐 게보린.
약효가 빠르고 효과가 좋았다. 
게보린에 무슨 부작용이 있다던 어떤 뉴스가 떠올랐지만 그딴건 신경쓸게 아니었다.

17시 어머니가 수건을 물에 적셔 봉지에 넣어 냉동실에서 얼려줬다.
그것을 이마에 대었다.
조금 괜찮은듯 했다.

19시 계속해서 얼음찜질을 하며 때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3일만에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살것같았다.

그렇게 23시까지 버티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9월 11일 
아침에 일어나서 안약을 투여했지만 고통이 별로 없었다.
모니터를 쳐다보니 볼만했다. 물론 글씨크기는 댑다 크게. 명암은 겁나 낮추고


오후 12시
지금 이 글을 쓴다.
살만하네 ㅋㅋㅋㅋ



요약하면
고통은 포경수술과 맞먹지만 더 어려운 난제는 다른것에 신경쓸것이 없다는 점.
고통을 참기 위해선 진통제 과다 투여와 얼음찜질(적신수건을 얼려 봉지에 넣고 사용 - 눈에 물이 들어가면 안된단다)
수술 당일 포함 3일 + @ 동안 고통이 이어진다.

9월 15일에 보호용으로 넣어둔 렌즈를 제거하러 병원에 감.
그러면 새 세상을 볼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고통이 없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천국이라고 생각이 든다..



왠만하면 라식 수술을 합시다.
그건 별로 안아프답니다.


이거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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