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삼청교육대’는 박정희의 ‘국토건설단’ 그리고 전두환의 ‘녹화사업’과 더불어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 중 하나입니다
삼청교육대는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에 있던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설치한 군대식 기관을 말합니다
삼청교육대는 불량배나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본래 4주간의 순화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소위 교화 목적의 사업이었죠
박정희가 국토건설단을 통해 깡패들을 소탕하고 그에 명성을 얻은 것을 전두환이 본떠 만든 것이 바로 삼청교육대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설치 목적과는 달리 정부에 의한 조직적인 폭력 및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죠
뭐 일부 사람들은 "저 놈 삼청교육대 다녀와야 해"라고 하지만 실제로 다녀온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끔찍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훈련과정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대상자는
A급: 폭력배/깡패의 수괴 및 간부, 폭력배/깡패의 조무래기, 상습폭력, 실형 2범이상, 흉기소지, 강도, 절도, 밀수, 마약현행범. 군사재판
B급: 기타 정치/경제 폭력배, 상습도박, 사기꾼, 계획폭력, 불량서클, 강도, 절도, 밀수, 마약, 재범 위험이 있는 전과자. 4주 순화교육 후 근로봉사
C급: 폭력 사실이 경미하고 우발적, B급중 정상이 참작된 자. 4주 순화교육
D급: 초범, 사안이 경미한 정상적인 학생 및 소년, 직업과 주소지가 일정해 개선 가능성이 뚜렷한 자. 훈방
으로 나뉘어집니다
이중 C급 이상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갑니다
이 작전은 원래 대외비로 진행됐으며 전과자 및 폭력배를 대상으로 원래 20,022명으로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일선에서 경쟁이 붙으면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대상자가 되면서 6만 명을 넘어서게 됩니다
원래는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한 교화프로그램이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불심검문을 통해 조그만 꼬투리만 잡혀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죠
국방부가 1982년 발간한 ‘계엄사’에 따르면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5차례 이상 전과는 8.2%, 초범은 22.3%, 전과가 없는 사람은 35.9%에 해당했습니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당초 깡패 등을 대상으로 한 교화사업이라는 것은 '구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경찰에서 인계된 39,786명이 군에 인계될 무렵 39,742명으로 44명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어떠한 상황이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당초 4주 순화교육 프로그램이었지만 순화교육은 ‘개뿔’, 목봉체조 등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만약 거부하면 무조건 두들겨 팼죠
국방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가 57명인데 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36명, 구타가 10명, 총기사고가 3명, 안전사고가 2명, 자살이 2명, 미상 1명입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인 1982년 당시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피해는 더욱 컸다고 할 수 있죠
그 참혹상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묘사되고는 하는데 한 번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그 참혹상을 글로는 묘사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이완구 총리 내정자를 통해 삼청교육대가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이완구 총리 내정자는 삼청교육대 당시 국보위 산하 내무분과위원회에서 일을 했습니다
삼청교육대 당시 내무분과위원회는 불량배 첩보 수집과 검거, 신고·자수권유 조치, 사후 관리 등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이완구 총리 내정자는 치안본부 기획감사과 경정으로 근무하다 국보위 내무분과위 행정요원으로 파견된 것이지요
때문에 야당에서는 이완구 총리 내정자가 삼청교육대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청교육대는 박정희 ‘국토건설단’ 전두환 ‘녹화사업’과 더불어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역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