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와 양파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 꽤 가까운 식물들입니다. 각각 학명은 Allium fistulosum과 Allium cepa로, 수선화과의 부추아과에 속하는 식물이라고 하네요. 아무튼 이 두 식물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파는 동양에서만 나고, 양파는 서양에서만 났다는 점입니다.
파의 원산지는 대개 중국 서부로 알려져 있고, 양파의 원산지는 지중해 쪽으로 추정하고 있다네요. 즉, 교류가 활발해지기 이전에는 동양에서는 파만 먹었고, 서양에서는 양파만 먹었던 셈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지만요.
재미있는 것은, 이런 파와 양파의 기묘한 관계가 언어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전술했듯, 동양권에서는 파를 먹고 살다 양파를 접하게 되었고, 서양권에서는 양파를 먹고 살다 파를 접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이게 각 나라의 언어에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게 되었을까요?
우선 동양부터 살펴보죠. 한국과 중국에서는 파는 그냥 파입니다. 한자로는 葱를 쓴다고 하네요. 그럼 양파는 어떻게 이름이 붙었을까요? 서양에서 들어온 파니까 洋자를 붙여줍시다!
일본은 어땠을까요? 파는 네기(ネギ) 라고 부릅니다. 한자로는 똑같이 葱을 쓰고요. 그럼 양파는? 둥근 파니까 타마네기(タマネギ, 玉葱)라고 부르죠! 더불어 이런 작명 방법은 북한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파는 그냥 파, 양파는 둥근 파.
그러면 서양권에서는 어땠을까요? 영미권에서 양파는 Onion입니다. 오잉? 그런데 파가 전래되었네요. 일단 쓱 보니 초록색입니다. 그럼 Green Onion...
그리고 훑어보니, 저-기 웨일스에서 자라는 부추 비스무리한 리크(leek)랑 닮았네요. 그럼 웨일즈 출신인가? Walsh Onion! 그리고 여름에 수확하는 양파와는 달리, 파는 봄에 수확합니다. 그렇다면 넌 Spring Onion이로구나! 이런 식으로 파에는 이런저런 이름이 붙게 된거죠.
저 멀리 러시아에서도 이 작명법은 유효합니다. 양파는 лук라고 하는데, 파는 лук-батун라고 한답니다. 중국 양파라는 뜻이라고 하니, 이것 역시 동양에서 서양으로 파가 전래되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옛날에 태어났다면 아마 우리는 양파는 보지도 못하고 열심히 파만 썰어먹고 있었겠죠? 파와 양파를 맘대로 다 먹을 수 있는 현대에 태어나서 참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