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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대에 간혹 푸아그라가 잔인한 동물학대의 산물이라는 말이 나와서리 예전에 발표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올려봅니당.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푸아그라는 거위나 오리의 지방간입니다.
둘 다 기러기과에 속하는 동물들인데, 야생 기러기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서식지를 이동하는 습성이 있지요.
장거리 비행으로 손실되는 에너지를 보충하고, 추운 겨울 날씨를 버티기 위해 가을만 되면 처묵처묵해서 살을 찌웁니다.
그리고 그 중 운 좋은 몇몇 녀석들은 먹이를 배터지게 먹을 수 있고,
그 운 좋은 녀석들 중 운 나쁜 녀석들은 사람들이 사냥해서 잡아먹게 되지요.
그래서 옛날에는 푸아그라가 기러기 잡다보면 운 좋게 몇 마리 끼어있는 그런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제가 옛날이라고 하면 고대 이집트를 말하는 겁니다 ㅎㅎ
당시 노예 계급이었던 유태인들이 푸아그라를 먹곤 했는데, 이걸 맛본 파라오가 "이런 괘씸한 놈들! 이렇게 맛있는 걸 지들끼리만 먹어? 앞으로는 일년 내내 푸아그라를 공급하도록 해라!"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철새 이동철에나 가끔 보이던 푸아그라를 일년 내내 공급하라니 패닉에 빠진 유태인들. 하지만 그들은 곧 방법을 찾아냅니다.
기러기를 잡아서 먹이를 강제로 입에 쑤셔넣는 거지요.
이렇게 이집트 벽화에도 나와있듯이 그 악명높은 강제급식, Gavage는 실제로는 프랑스나 유럽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엄청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
이걸 본 고대 로마인들이 자기들도 따라서 기러기 입에 무화과를 쑤셔넣기 시작했고, 프랑스에서는 루이 15세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살찐 거위간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왼쪽은 전통적인 방식의 푸아그라 제조법. 깔때기를 쑤셔박고 먹이를 밀어넣습니다.
당연히 거위들은 반항하고, 목에 상처가 나고, 토하기도 하고, 난리가 나지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건 굉장히 구식 방법으로 한물 갔고 요즘 푸아그라 농장에서는 대부분 오른쪽처럼 현대화된 장비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얇은 호스를 주입해서 기계로 밀어넣기 때문에 3~4초면 먹이 주입이 끝나고 동물들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간혹 입원한 환자들이 삽관해서 유동식 먹으며 괴로워하니 거위들도 괴로워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수업시간에 셰프가 했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얘네들이 야생 환경에서 뭘 먹는지 생각해 봐! 개구리! 생선! 저 호스보다 얇은 건 별로 없다구!"
우리가 잡아먹는 동물 중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맛이 좋아지는 동물은 거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푸아그라는 간의 크기와 핏줄이 얼마나 퍼졌는지 등이 등급을 매기는 주요 포인트입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은 거위는 간도 조그맣고 핏줄도 다 터지는 바람에 갈아서 파테(고기 스프레드)나 만들어야 하는 반면
고오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푸아그라는 간도 크고 핏줄도 거의 없는 하얀색 A등급입니다.
당연히 푸아그라 농가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고, 심지어는 직원들 성과급도 기러기 스트레스 안 받게 잘 기르는 걸 기준으로 주는 경우도 많지요.
심슨가족 오프닝에서 바트가 "DIY 푸아그라"를 주문해서 거위에게 곡식을 쑤셔넣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게 실제 업계의 대세는 아니라는 거지요.
아예 '에두아르도 소사'처럼 기러기 천국을 만들어 놓고 거위들이 알아서 먹이 먹으며 살찌게 하는 농장도 나오는 판입니다 (가격은 두 배 이상 비싸지만요)
물론 신규 설비에 투자할 돈이 없어서 아직까지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푸아그라 농가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런 농가의 제품들은 좋은 등급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고급 식재료인 푸아그라의 특성상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지요.
자, 그럼 제목에 써놨던 '불편한 진실'은 뭐냐.
그건 우리가 그렇게 욕했던 푸아그라의 비참함이, 실제로는 푸아그라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먹는 닭고기와 달걀의 생산 과정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살을 찌우기 위해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철창에 가둬서 죽어라 먹이만 먹게 만들고, 알을 더 많이 낳게 하기 위해 24시간 불을 켜두고 잠도 제대로 안 재우는 게 현실이지요.
심지어 방목형, 동물복지형 축사도 실제로 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것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습니다. (이건 다음에 기회되면 더 자세히)
그렇다고 우리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건 아닙니다.
인류가 살아온 과정이라는 게 결국 다른 동물들(과 자연환경)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온 거고,
살림살이 조금 나아지면서 슬슬 동물복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점차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거지요.
무식하게 먹이 쑤셔넣던 과거에서 스트레스 주지 않고 수월하게 먹이를 주는 요즘의 강제급식 형태로 바뀌었듯이 말이죠.
다만 한 손에 치킨 들고 "푸아그라나 먹는 잔인한 놈들"이라고 욕하는 건 굉장히 몰지각한 발언이고
뭔가를 욕하기 전에 좀 더 알아보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커피, 초콜릿, 바나나, 고래고기가 그렇듯 말이죠.
출처 | http://huv.kr/pds11532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