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356675&s_no=356675&page=10. 위 링크는 먼저 작성해서 과분한 관심을 받은 글입니다.
1. 자극적인 제목 2탄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실 것 같기도 하고, 클릭을 해보실 것 같기도 해서 제목을 저렇게 잡았습니다.
특히 의사분들이 적극 공감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
2. 이전 글에도 소개를 했지만, 저는 공공병원에서 척추를 수술하고 있는 '정형외과'의사입니다. 신경외과에서 척추를 보시는 분들과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있는 병원이 좀 특이합니다.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최소 저소득층이고, 절반 이상이 급여 1~2종의 의료보호 대상자 분들이십니다. 세바시15에서 (한번 검색해 보세요) 이국종 선생님도 이야기하셨지만, 다치고 아픈 사람들 중에는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분들이 중병이 있음에도 잘 모르다가 황당한 지경에 이르러 오시거나, 이걸 어떻게 수술하지 수준으로 다쳐서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런걸 수술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2-1. 한번은 HIV(사람 면역 결핍 바이러스. 흔히 말하는 에이즈) 감염인인 분에게 큰 수술을 할 일이 있어서, 8시간동안 낑낑거리면서 수술을 하고 녹초가 되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잘 안해주려 하기도 하고, 환자분이 급여 1종이시기도 해서 저한테 수술을 받으셨지요. 집에 와보니 가족들이 마침 '낭만닥터 김사부' 마지막회를 보고 있더군요. HIV 환자를 수술 할지 말지에 대해서 병원이 시끄러워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미있더라고요. 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저렇게 보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있는 병원에서는 HIV 환자를 수술할 일이 너무 많아서 다들 별로 크게 신경 안씁니다. 저도 그렇고요. 바늘 찔리지 않으려고 조금 조심하는 정도입니다. 하여간 그런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2.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우리 나라에서는 생계가 곤란한 분들을 의료 급여 1-2종으로 분류하여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해서 이 분들은 급여 항목에 대한 치료를 받으실 경우, 치료비를 거의 내지 않으십니다. 외래 한번에 몇백원, 입원 하루에 또 몇백~0원 정도입니다. 급여가 가능한 질환으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는 경우에 경제적인 부담이 거의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시는 경우는 매우 흔합니다. 그 부분은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를 하지요.
3. 제목대로, 저는 한국 의사들이 정말 병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포함입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문제는 '전문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라는' 부분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들 말고는 별로 관심도 없기도 하고요.
3-1. 앞선 글에 문제는 수가다! 는 식으로 이야기 했었습니다. 단순화한겁니다. 어디 문제가 수가 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 건강 보험의 문제는 매우 뿌리가 깊습니다. 일단, 문제의 시작은 박정희 가카부터입니다. 63년에 건강보험이 처음 시작되었는데요, 가카께서 당시 말도 안되었던 의료비(이때는 당연지정제-나라가 정해주는대로 병원에서 비용을 책정하는-가 없던 때입니다. 병원에서 마음대로 받았지요.)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하니, 정권에 대한 불만을 무마해보자는 차원에서 도입하기 시작한 정책입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전국민 건강보험으로 확대되었고, 김대중 정부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지요. 이후에는 조금씩의 손질만이 가해졌습니다.
https://namu.wiki/w/%EA%B5%AD%EB%AF%BC%EA%B1%B4%EA%B0%95%EB%B3%B4%ED%97%98?from=%EA%B1%B4%EA%B0%95%EB%B3%B4%ED%97%98대강의 내용은 위 나무위키 링크를 보시면 정리되어 있습니다.
3-2. 이렇게 건강보험이 만들어져 가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이라는 의사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목소리를 내었다는게, 의약분업사태때이고요, 이익 집단의 집단 이기주의로 교과서에 실리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지요. 의약분업사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면 할 말은 참 많습니다만, 일단 각설하겠습니다. 중요한 점은,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의사들이 정책결정에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3-3. 이렇게 흘러간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근본적인 이유로는 의사집단의 이해관계가 굉장히 복잡하다는 점을 우선 들겠습니다. 대형병원의 경영진인 의사들, 그 병원에 고용된 의사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되고요,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들과 그 병원에 고용된 의사들이 또 다릅니다. 임상의와 비임상의의 이해관계도 영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의료계에서 소위 힘있는 인사들인 대형병원의 어르신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의사들 중에서는 저같은 사람들도 많은데 말입니다.
3-4. 그러다보니 한 목소리가 나오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의료계에서 있기 힘듭니다. 특히나, 기관에서 한 자리 하고 싶어하시는 어르신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매우 복잡해집니다. 대형 대학병원 원장님이시던 분이,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자마자 입장이 180도 돌변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참 한숨만 나요지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참 병신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3-5. 의협은 대체 뭐 하는 조직인지 의사들도 잘 모르고요, 지역 의사회 아자씨들은 일 못하는 것 같은 의협에 가서 물병이나 던지고 욕이나 퍼붓습니다. 개판입니다.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3-6. 결국 수가가 이모양 이꼴이고, 심평원이 권력을 휘두르며, 소위 의권을 침해당하는 작금의 개탄할만한 현실은, 의사들이 자초했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제 생각에는, 의사들이 국민을 욕하기에 앞서서 먼저, '전문가라는 이름을 달고, 제도를 이따위로 만들도록 냅둬서 죄송합니다.'라고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맞다고 봅니다. 저도 사과드립니다.
4. 그렇지만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독재-권위주의 정부와 그 정책에 저항한다는게 얼마나 계란으로 바위 두드리기였는지를요. 그런 상황에서 환자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논문에 치이고, 윗분들 모시는데 치였을 의사들이 무기력하게 있었던 부분을 불쌍하게 봐 줄 수는 있다고 봅니다. 문민-민주정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습니다. 의약분업사태때 의사들이 어떤 소리들을 들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때 거리로 나왔던 의사들이 다 '의새'들이었을까요. 목소리를 한번 (멍청하게) 내 보니, 아 이거 이러면 작살나는구나. 우린 안되나보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이렇게 된 면이 분명 있습니다.
5. 문재인 케어도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무슨 공청회다 뭐다 하는것을 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설령 있었는데 제가 몰랐던 것이라고 해도, 출범한지 고작 5개월도 되지 않은 정부이니, 반년 이하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는것은 부정할 수 없을것이고요. 그런데 발표해 버린겁니다. 정책을요. 이제부터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의료를 개혁해보려고 하는데, 의견수렴 과정 콜? 이게 아니라, 그냥 자 이제 이렇게 바꿀겁니다. 다들 알아서 준비하시고요. 이랬다는겁니다. 제가 말하는 이번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이거라는거죠.
6. 대체 왜요. 우리 이니 하고싶은대로 다 하라고 말하고 싶은데요, 왜 이러시냐고요. 의료는 정말 복잡하고, 정말 큰 덩어리인데다가, 국민들의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한 6개월정도 의견수렴하고 방향 좀 잡아서 개혁 시작한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겁니다. 왜 이걸 이렇게 졸속으로 결정해서 발표해 버리냐는 말이죠.
7. 물론, 수정은 있을 수 있겠죠. 근본적인 방향이 좀 변할수도 있을겁니다. 정책이라는게 그렇지 않습니까? 아직 조율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정부에서도 이야기했었으니까, 달라질거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왜 질러버린겁니까. 이 부분은 더불어민주당원으로서의 답답함입니다. 대체 왜? 모든 비급여를 급여화한다고 해놓고, 막상 실제로 못하면 발생할 환자들의 불만은 어떻게 감당하려고요? 100 준다고 해놓고 실제로 90만 주면 누구라도 10 빼앗긴 기분을 받지 않습니까. 이건 정치 공학적인 이야기기는 합니다만, 왜 이렇게 질러버렸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8. 그렇지만 지금 보여주고 있는 병협과 의협의 행태는 참 웃음만 나옵니다. 역시 자리를 통해서 뭘 해보려는게 아니라 자리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은 신뢰할 수 없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네요. 환자와 질병에 몰두하는 '진짜'의사들은 대체로 그런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다 보니, 감투를 쓴 사람들이 대부분 이상한 분들이라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9. 그래도 의사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시간을 들여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제 나름의 반성이기도 하고요. 전문가로서, 우리가 그동안 뭘 해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 국민들이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지,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강조했다가 욕을 엄청 들어먹은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의사분들은 제가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아시리라 봅니다.^^)
-공공병원에서 퇴근은 언제하지 고민하고 있는 의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