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파시즘과 관련해서 기사들을 읽던 중에 발견했습니다.
역사게시판 이용자 분들이라면 다 아실 X빠 관련 기사라 양심 상 여기에 올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크랩한 기사들을 몽땅 정리해 시사게시판에 올렸는데 가독성이 떨어져서 묻혔네요.
하지만 이대로 묻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스크랩한 기사 중에 하나만 역사게시판에 올립니다.
광복절 축사에 위서(僞書) 인용한 대통령
미디어오늘 | 입력 2013.08.21 12:01
2차 출처 : 다음
[미디어 초대석]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교수[미디어오늘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교수]"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 이 날은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문장만 읽어도 자연스레 곡조를 떠올리게 되는 광복절 노래 가사의 1절이다. 그러나 정작 지은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작사자는 위당 정인보 선생이다. 이를 알고 가사를 다시 읽으면, 광복을 염원하며 민족정신을 강조했던 위당의 심정이 절절히 스며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광복은 40년간의 뜨거운 피가 엉긴 자취이며,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기억하는 날이 8월 15일이다.고려말의 대학자 이암?그런데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 가운데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내 눈길을 끌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신체의 일부를 떼어 가려고 한다면, 어떤 나라, 어떤 국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이런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안고 살아가고 계신 분에 대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책임 있고 성의있는 조치를 기대합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 앞에서 "신체의 일부는 독도, 영혼의 상처는 왜곡된 역사를 비유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고 한다. 직설적 표현보다는 완곡한 비유법을 사용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얼핏 수긍이 가지만, 역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기교를 섞은 수사의 바탕에는 상식을 벗어난 인용이 있었다.대통령이 '고려 말의 대학자'라고 한 이암은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홍건적 토벌의 책임자가 되었으나 겁이 많다고 해 교체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개경까지 들이닥친 홍건적을 피해 경상도로 피난한 공민왕을 수행해 1등 공신이 되기도 했다. 이암은 글씨에 뛰어났고 서화에 능했다. 그래서 이제현이 지은 '문수원장경비(文殊院藏經碑)'의 글씨를 썼다.문수원은 춘천 청평사의 고려시대 이름이다. 그러나 이 비는 일찍이 소실돼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 내용이 '익제난고'에 실려 있고, 이암의 필적을 알 수 있는 탁본 일부가 '대동금석서'에 전해질 뿐이다. 이런 정도의 자료만으로는 이암이 대학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광복절 축사에는 박은식을 인용했어야이암이 유명해진 것은 '환단고기' 덕분이다. 환단고기의 일부인 '단군세기'가 이암이 지은 것으로 주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근대적 용어가 많이 나오는 점 등으로 학계의 사료비판을 거쳐 20세기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로 일찍이 판명된 상태이다.광복절 축사에 인용된 것은 단군세기 서문은 "나라는 형(形)과 같고 역사는 혼(魂)과 같으니 형을 잃고 혼이 보전될 수 있겠는가" 하는 구절이다. 학계에서는 이 문장을 '한국통사(韓國痛史, 박은식, 1915)'의 "대개 나라는 형(形)이고 역사는 신(神)이다. 지금 한국의 형은 허물어졌으나 신만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를 본딴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환단고기가 만들어진 시점도 1915년 이후로 보는 것이다.
이번 광복절 축사는 참모들에게 자료를 받아 대통령이 수정하고 보완하여 작성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더욱 놀랐다. '고려 말의 대학자'라는 근거 없는 수식어가 그랬고, 원조인 박은식이 안중에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박은식은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고,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이 탄핵된 뒤에 대통령을 지낸 분이다. 그렇기에 국토와 역사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려면 그를 인용함이 마땅했다.
그러지 않음으로써 대통령과 참모들의 품격과 판단력이 드러난 셈이다. 역사교육을 강조하는 집권세력의 움직임에 의구심을 갖고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이유이다. 더구나 이번 광복절 축사에는 '광복'보다 '건국'의 의미를 더 강조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명박 정권 때도 뉴라이트 쪽에서 건국절을 제정하려다 무산된 적이 있었다.
과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기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저급한 댓글로 여론 조작에 몰두하며 대선에 개입한 국기문란 범죄를 놓고 대통령은 침묵하며 국정조사장의 여당 의원들은 진실을 호도하는 분탕질로 일관하고 있다. 다시 광복절 노래 가사로 돌아가 보자. 조국 광복을 '기어이 보시려'다 숨진 선열들이 지금의 이 모습을 보고자 목숨을 바쳤을까? 참담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2013년 8월에 있었던 광복절 축사와 관련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