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장점이라면 정보의 접근성이 매우 용이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검색 몇번 하면 파도타듯이 넘어가면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십 몇년전만하더라도 정보의 총체였던 백과사전이 현재에 와서는 싸그리 사장되어버린게 인터넷의 등장 때문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하지만 정보의 접근성이 용이한만큼, 무분별하게 올라오거나 신빙성이 의심되는 자료가 올라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역시 책으로 얻은 지식을 인터넷에 밝히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그 기억이 용이하지 못하여 정확하지 않아서 불확실하게 올리기도 하고, 또한 인터넷으로 얻은 지식이어도 그게 신빙성이 없거나 다른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있으니 난감할 때도 있죠.
여튼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흉악무도잔인 여튼 인간 언어로 표현할수 있는 최악의 단어로 묘사해도 모자랄만큼 악질인 일본 군인들중에서도 개념을 갖춘 인간이 있긴 했느냐?!
네..... 있긴 합니다. 놀랍게도요.....
이렇게 일본군 내부에서 인덕과 지략을 모두 겸비한 인물들을 소개해보자면
1. 쿠도 슌사쿠
- 구축함 이가즈치의 함장. 수리비아 해전 후 격침된 영국 중순양함 익세터 호의 승무원들이 물에 빠져있자 이를 확인사살!!! 혹은 방기!!! 가 아닌, 전원 구출 후!!! 그 신병을 인도하였다고 합니다. 네. 전 매우 놀랐습니다. 보통의 일본군이라면 충분히 확인 사살해서 고기밥으로 던져줘도 이상하지 않을건데 말이죠..... 통상적이라면 전투 이후에 포로 확보 후 이들을 국제법 준수 하에 수용소에 감시 감금하며 인도적 대우를 하거나, 이렇게 신병을 인도하는게 상식이라면 상식인데 말이죠. 네, 이러한 상식을 일본군은 자주 무시했습니다. 이 상식을 무시하지 않고 지킨 쿠도 슌사쿠 함장은 일본군 내부에서라면 별종이고, 외부에서 보자면 지극히 군인다운 인물이네요.
2. 사토 고토쿠
- 뭐 이 양반도 지극히 일본군 내부에서는 일본군 장교다운 인물이었으나, 우리 마음속 명예 독립 유공자이자 임시정부 특파 요원! 무다구치 렌야....가 기획한 임팔 작전에 투입되자 일본군 내부의 시각으로는 그때부터였을겁니다. 사토 고토쿠 장군이 정신이 나가버린것이요. 하지만 외부적인 시각으로 보면 수많은 일본 병사들을 사지에서 구해낸 개념찬 군인이었습니다.
임팔 작전은 정말 가루가 되도록 까고 동해 바다가 마르고 닳도록 까대어도 앞으로 계속 깔수 있는 그런 정신 나간 작전이었습니다. 어떤거냐고요? 고대 전국시대도 아니고 적군 치러 가는데 보급 이동 수단을 소로 해결합니다(.....) 아 물론 이게 성공했으면 고정관념을 타파한, 획기적인 작전 그러니까 세계 전쟁사에 그 업적이 찬란하게 기록이 되었겠습니다만 그게 안되고 망했습니다. 일단 이 작전은 버마 정글 루트를 돌파하여 영국군의 후미를 친다는 작전인데, 그 울창한 정글을 뜷고 가기엔 소들이 너무나도 힘겨운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아무리 길들인 소와 말들이라 할지라도 포탄이 작렬하는 상황에서는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갖추며 있지는 않습니다. 마구 날뛰며 도망치지....그건 둘째치더라도 보급 어려우면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하면 된다라고 즉흥적으로 생각하는 군 간부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나요? 그리고 그 보급도 포탄 등의 탄약 보급이고 식량등의 상황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식량을 해결하냐고요? "적의 것을 약탈해서 충당한다!" (........)
이쯤되면 작전의 성공 유무를 둘째치고 얼마나 맛탱이가 가있는지를 짐작을 하시겠는지요?
이런 작전안을 보자마자 사토 고토쿠 당시 중장은 이 정신나간 작전의 중지를 요구하나 작전은 기어코 실행되고 맙니다. 그리고 작전은 망합니다. 수많은 일본군 병사들이 사지에 내몰려 목숨을 잃었고 그나마 남은 병사들은 굶어죽고 적에게 맞아죽고 병들어죽고 여튼 지옥도를 연출하기 시작합니다. 이걸 보다 못한 사토 고토쿠 중장은 상부의 명령을 씹어버리고 독단적으로 퇴각을 감행, 많은 인명을 살려냅니다. 퇴각 감행 이전, 어거지로 작전을 수행하던 사토 중장은 모자라는 보급을 채워달라고 상부에 몇번이고 요청하지만 상부는 사토의 요청을 씹어버리고 공격 명령만 내리죠. 여기에 맛탱이가 가버린 사토 중장은 "우리들 위의 세 머저리들! 제 15군과 미얀마 방면군과 남방총군들! 이 머저리들을 믿고 기다리다간 우리 사단이 전멸하고 말것이다. 이에 본 사단의 퇴각은 본관 책임 하에 독단 결행하기로 결정한다!" 라는 희대의 명언을 휘하 참모들에게 일갈하며 퇴각합니다. 이때 퇴각을 엄호한 지휘관이 있었으니, 이 지휘관 역시 개념이 존재한 지휘관이었습니다.
(사토 고토쿠 중장은 이때의 후퇴로 불명예스러운 군인으로 두고두고 씹힙니다. 게다가 군 재판에 기소, 정신병 판정까지 받으며 비난당하죠. 과연 불명예스러우며 정신병을 받을만한 인물이었을까요?)
3. 미야자키 시게사부로
사토 고토쿠 중장 휘하에서 임팔 작전 당시, 철수하는 아군의 후미를 엄호하는 작전을 일임하게 되는 군인입니다. 사실 전쟁에 있어서 퇴각은 가장 위험하면서도 어려운 작전입니다. 온갖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기 마련이고, 게다가 승리자는 퇴각하는 잔존 군 세력을 일소하여 후일의 위협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어떻게든 추적해서 섬멸하려하거든요. 군의 철수 혹은 퇴각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패배하였다고 하더라도 잔존 병력을 온전히 추스려 보전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 역시 군인의 덕목이지요. 그런데 일본군은 이러한 개념이 없었어요.....여튼 이러한 막중하고 위험한 작전을 미야자키 휘하의 부대가 일임하게 됩니다. 보통의 일본군 상식이라면 "이 자리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워, 적군 하나라도 죽이고 옥쇄하자!"라는 마인드로 작전을 하는, 흔히 말하는 물귀신 작전을 하겠는데, 미야자키는 이러한 옥쇄를 철저히 금지! 시킵니다. (....) 놀랍네요.... 옥쇄 금지라니..... 대신 그는 철저하게 추격군을 교란해내며 이들이 추격을 제대로 못하게끔 하는, 매우 상식적인 수준의 작전을 펼칩니다. 작전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그는 어떻게든 부하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며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려고 노력했다는군요.
4.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
어찌보면 가장 일본군인답지 않은 일본군인일것입니다. 오죽하면 일본군 사령부는 이 제독을 평가하기를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과 자질이 부족하며, 제국 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부심과 용맹마저 결핍된 인물"이라 평했다는군요. 일본군 내부 입장으로선 기무라 제독은 골치아픈 이단아에 씹어먹어도 모자랄 무능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무라 제독이야말로 용감함과 만용, 신중함과 비겁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꿰뜷어보고 있던 군인이었습니다. 일본군인답지 않은 일본군인이라기보단, 일본군에 어울리지 않는, 일본군이 결코 품을 수 없던 매우 재능을 갖춘 군인이었다고 해야겠지요.
먼저 일본 해군병학교에서 성적 꼴지였습니다......그리고 엄격한 상관인 대신 부하들과 희희낙락거리며 낚시나 즐기는 한심한 상관이었습니다....그리고 미드웨이 해전 당시, 소속 상관의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귀함의 엔진이 고장나서 못나감!"이라고 상콤하게 씹어버리고 대신 물에 빠진 아군의 구조에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소속 상관 명령이 병신같은 것은 둘째치고 명령 자체를 기만해버린 것만 놓고 보면 진짜 엄벌받아도 할말이 없는 겁니다. 근데 이걸 대놓고 해버린 기무라 제독은 뭐 용자중의 용자죠.
여튼 해군 내부의 평가는 최악을 달리던 기무라 제독의 입지가 단숨에 상승하게 된 것이 바로 키스가 섬 철수 작전 성공 때문이었습니다. 대전 막바지에 이르러 일본군이 점령한 해역은 미군의 반격에 의해 날이 갈수록 쪼그라 들었고, 미군의 공격에 일본군 수비대가 주둔해 있는 섬들은 콩가루가 되다시피하며 점령되어갔습니다. 키스가 섬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수비대 5200여명 역시 그 운명이 다를바 없었습니다. 이들을 철수시키기 위한 작전 총책임자로 내정된 이가 바로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이었지요. 기무라 제독은 작전 기획 시 배정받은 함만 하더라도 몇척 안되었거니와 그 함들마저 구형이어서 이건 진짜 죽으러 가라는 소리와 다를바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이 철수작전을 해내고 맙니다.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고 해서 그걸 곧이곧대로 시행한 것이 아니라, 최적의 철수 조건을 재확인해가며 섬 내부의 주둔 병사들을 모조리 빼내오기로 결행, 그리고 수비대원 5200여명을 전원 구출해냅니다. 키스가 섬을 포위하고 있던 미 해군은 기무라 제독의 기만에 속아 삽질을 푸고 있었고, 기무라 제독은 그 틈을 타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지요. 이 작전의 성공으로 그는 일왕을 독대하는 영광(?)까지 맞이하게 됩니다.
물론 기무라 제독은 이러한 개념찬 행동에 비해 야심만만하고 전투능력있는! 지휘관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공무원 마인드가 뼈에 박힌 사람이었지요....그냥저냥 먹고 살면 돼! 라는 소시민적인 사람이었기에 그의 능력은 현장 지휘관으로서는 출중했지만 좀더 대형함 혹은 전략 함대 지휘관으로서는 어땠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그래도 일본군에서는 보기 드문 무능력한(?) 인재였네요.
그냥저냥 찾다보니 더 많은 수의 일본군인들도 있었습니다만, 일단 제가 그나마 눈여겨보고 감탄하게 된 군인들은 이들이었고 그래서 집중적으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쟁이란거 자체가 매우 잔혹하고 뼈아프며, 특히 우리를 폭압적으로 지배했던 일본의 군인들을 결코 호의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군인들, 그리고 우리가 일본군 내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 찬 군인들은 대다수 공통된 의견이 일본군 내부에서 겁쟁이, 무능력자, 한심한 인간들이라고 평가 받는 이들이네요. 또한 이들은 이러한 행동의 댓가로 한직에 머물게 되고요. 뭐 축복이라면 축복인게, 일본군 내부 인물들이 이런 개념찬 인물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지 않아서 우리나라가 독립을 할수 있었던게 아닐까 합니다. 그 시대 일본군의 이단아들에게 나름의 찬사를 보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