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유럽은 대충 다 써본 것 같고, 이번엔 일본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일본은 여러가지 애니와 만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나라이지만, 정작 일본 역사 쪽은 오히려 중국역사보다도 잘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일겁0니다. 일본 사극 같은 경우도 우리나라는 거의 보지 않구요. 옛날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밥을 먹었을까요? 그런고로 이번에는 일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 전에.. 이 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하여, 먼저 일본 역사의 순서를 써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무슨무슨 시대 라는 식으로 표현이 되거든요. 시간적으로 배치하자면,
조몬 시대(신석기 시대) → 야요이 시대(기원전334~기원후300년) → 아스카 시대(593~645년) → 나라 시대(710~794년) → 헤이안 시대(794~1194년) → 가마쿠라 시대(1192~1333년) → 무로마치 시대(1338~1573년) → 전국 시대(1573~1600년) → 에도 시대(1603~1868년) → 메이지 시대(1868~1912년) → 다이쇼 시대(1912~1926년) → 현재
가 되겠습니다.
식문화 1탄 - 중세시대
식문화 2탄 -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식문화 3탄 - 그리스 로마 문명 (1부)
식문화 3탄 - 그리스 로마 문명 (2부)
1. 앗! 저 바다건너 땅에서는 이상한 알갱이를 먹네?
일본쪽은 섬나라였던데다가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문화의 전파가 늦었기 때문에 곡류의 섭취도 비교적 늦은 편이었습니다. 한국은 거의 기원전 1000년 정도부터 곡물을 섭취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은 기원전 350년 정도인 야요이 시대때부터 쌀을 먹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그 이전에는 보통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에서 동물을 잡아먹는 등의 잡식을 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이후로 쌀이 주식이 되면서 생선과 같은 동물성 식품은 반찬이 되었고, 염분의 섭취도 동물의 내장을 통한 유기염 대신 해조를 구워만든 식염으로 바뀌었지요. 한국은 뻘이 많은 서해안의 특성 상 해염을 만들기가 쉬워서 소금의 시작이 바다를 증발시켜서 만든 해염이었지만, 일본은 해조류가 풍부하다보니 해조를 구워서 만든 해조소금이 그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금은 현재에도 <모지오>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고급 소금으로 생산되고 있지요. 해조류의 향과 미네랄이 풍부한 소금이라고 합니다.
또한 벼 외에도 보리, 조, 콩 등도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고분에서 부뚜막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가열조리를 통한 찌기, 끓이기, 굽기 등의 조리방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소금을 통한 발효염장식품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쌀로 술도 만들어먹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2. 본격적인 일본식 식문화는 나라시대부터!
나라 시대(710~794년) 때의 중국에서는 가장 화려했던 중국이라 불리는 당나라가 융성하던 시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가 서양인들에게 유명해서 영어이름도 고려->코리아 가 되었듯이, 당시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워낙 화려한 문화를 자랑해서 중국 하면 당나라 였죠. 당나라군대 라는 말의 유래도,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워낙 당이 유명하다보니 일본에서 중국=당 으로 호칭하다가 청나라가 영국에 쉽게 패퇴하면서 당나라군대는 오합지졸이다 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그런 당나라다보니 나라 시대의 일본은 당나라 따라하기가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식문화도 당나라 음식 모방시대 라고 불렸죠. 하지만 작법(식사하는 예절)은 그닥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통 일본 하면 떠오르는 식사예절 중 하나가 그릇을 손으로 들고 밥을 먹는 거지만, 헤이안시대(794~1194년)까지만 해도 그릇을 밥상에 놓고 먹었다고 하죠. 또한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1인용의 밥상을 놓고 각자 밥과 반찬을 차려주는 방식이지만, 이러한 방식도 무로마치 시대(1338~1573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우리나라처럼 식탁에 여러명이 둘러앉아서 먹는 방식이었다는 거죠.
나라 시대에 일본 식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불교였습니다. 불교는 6세기 초에 들어왔는데, 이후로 지배계급과 결합되어 퍼지게 되면서 불교의 교리가 생활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등장하기까지 했죠. 대표적인 것이 살생금지로, 676년에는 육식을 금지하는 법령까지 만들어졌었다고 합니다. 그런식이다보니 당시의 귀족들은 부자연스럽고 틀에 박힌 식생활을 하였고, 비타민이나 칼로리가 부족해 영양실조를 겪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3. 글쓰는 샌님은 가라! 무인 시대의 시작
군인이 헤이케 정권을 뒤엎고 막부를 열게 되면서 무인 중심의 가마쿠라 시대(1192~1333년)가 시작되었고 일식의 발달이 가속화되었습니다. 가마쿠라 막부 이후로도 무로마치 시대(1338~1573),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명한 전국시대(1573~1600)가 이어지면서 계속 무인 중심의 사회가 계속되는데요, 원래 하류 계층이었던 무인들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귀족생활에 대한 무사들의 동경이 새로운 요리문화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무인의 소양은 절제의 미덕이다보니, 일본식 요리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완성되어져 간 것이지요.
무로마치 시대 때에는 차(茶)가 유행하게 되고 일본 특유의 다도 문화가 정립되었는데, 사실 차는 나라시대 때부터 귀족이나 승려들의 일부가 마시고 있었다고 합니다. 헤이안 시대 때에는 궁전 뒤뜰에 차밭을 만들어 차를 약으로 사용했다고 하죠. 그러던 게 무인 중심의 시대가 되면서, 귀족들만의 기호품이었던 차에 대한 동경이 곧 유행처럼 번지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기품있는 여성 하면 다다미에 무릎꿇고 앉아 양손으로 찻잔을 들고 마시는 게 떠오르듯이, 일부의 기호품이던 차가 모든 귀족의 기본 소양이 된 셈이지요.
또한 이러한 다도 문화와 일본 불교인 선종 문화가 더해져 현재 일본 고급요리의 대표주자라 불리는 <가이세키(회석풍) 요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한 상에 여러명이 둘러먹는 게 아니라 한 사람 당 한 테이블을 정갈하게 차려주는 방식인 <혼젠 요리>도 무로마치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사발에 들어간 밥과 국, 생선과 야채가 한 접시씩 있는 구성이 기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쌀을 먹는 방식이 물을 부어 끓이는 죽을 거쳐서 현재의 일본식 밥짓는 방법으로 발전하게 됩니다.(무거운 가마솥을 사용하는 우리나라 방식과는 달리 일본은 나무뚜껑을 덮은 작은 솥에 쌀과 물을 넣어 끓이듯이 조리하는 방법으로 밥을 지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쌀을 쪄서 먹었다고 합니다.
상위 계층의 요리사는 에보시(두건)을 쓰고 일본도와 같은 강철로 된 식칼을 사용했으며, 열을 가하는 조리는 가급적 피했고 조미료나 향신료도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로마시대나 중세시대의 귀족들이 가름이건 향신료건 간에 뭔가 귀족만의 조미료를 잔뜩 뿌려먹는 방식을 좋아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국제적으로 따져도 비교적 드문 경우이지요. 아마 원래 무인이라 소박하게 먹는것에 익숙했다보니 잔뜩 뿌려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당시엔 아직 간장이 없었고, 소금, 된장, 식초가 기본 조미료였습니다. 대신 된장을 만들 때 생기는 웃물을 떠내서 간장 비슷하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하네요.
전국시대 때에는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등의 나라와 대외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서양의 식품, 설탕 등을 넣어 만든 과자가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호박, 감자, 고추, 옥수수, 토마토 등의 외래 식재료도 이때 전해졌지요. 처음엔 식용이 아닌 관상용이었다고 합니다. 이 중 고추는 임진왜란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와 우리나라 식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빵도 이때 처음 먹어보게 되었으며, 오다 노부나가는 바나나를 매우 좋아했다고도 합니다.
참고로 낫토와 닭튀김(가라아게)은 헤이안 시대부터 있었고, 튀김은 아스카 시대 때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서민에서 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본인에게 사랑받은 덴뿌라
튀김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해보자면, 튀김의 시작은 아스카시대였지만 당시에는 귀한 참기름으로 튀겼기 때문에 매우 고급요리였습니다. 극히 소수의 상류층만 먹을 수 있었지요. 그러다가 전국시대 쯤(16세기 말)에 포르투갈 선교사가 일본에 선교하러 오면서 사순절 기간동안 튀김을 만들어 먹었는데이게 일본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덴뿌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덴뿌라라는 이름의 어원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순절>을 뜻하는 라틴어인 <쿼투오르 템포라>가 전해져 <덴뿌라>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사순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시작될 때 각각 3일 씩 고기 대신 생선을 먹는 날인데, 포르투갈 선교인들은 일본에서 흔히 잡혔던 새우를 기름에 튀겨먹었다고 해요. 이 새우튀김은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튀김의 시작은 이전부터였지만 참기름으로 튀기는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튀김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절이나 고급귀족 정도에 불과했고 그 사용되는 재료도 곡물이나 두부류였거든요. 이때에는 값이 싼 동물성 기름도 있었지만 아직 튀김용으로는 사용되지 않았었지요.
이후 에도시대가 되어 튀김용 기름이 보편화되면서, 튀김은 고급 요정에서부터 서민의 포장마차에서까지 다양하게 팔리는 일본의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습니다. 현재 일본 음식을 보아도 돈까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덴뿌라, 튀김덮밥, 가라아게 등 우리나라보다 튀김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쓰도 생선튀김을 매우매우 좋아했다고도 하네요.
추가로 일본과 포르투갈과의 연결고리는, 튀김 말고도 또 있습니다. 바로 대구지요. 일본에서 대구는 전골요리에 단골로 사용되는 생선인데(우리나라에서도 고급 일식집에 가서 지리 요리를 시키면 대구 지리가 나오기도 하지요), 포르투갈도 대구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거의 우리나라의 굴비처럼 딱 먹으면 고국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생선이라고 하네요.
5. 일식의 진정한 완성은 에도시대 때!
도쿠가와 이에야쓰 이후 나라가 통일되고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에도시대(1603~1868년)가 되자, 지배계급이던 무인들은 스스로 칼을 놓고 귀족화되면서 문인들이 다시 상위계층으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계급체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원래 일본은 사농공상 이라 하여 무사, 농부, 장인, 상인 의 순으로 계급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상인을 최하위로 낮추고 농민의 위치를 높여 안정적인 곡물을 생산하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러던게 전쟁이 끝나 경제가 안정되면서 화폐가 유통되어 상인들이 점차 큰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서양에서 르네상스 이후 돈많은 상인이나 지식인들이 귀족들을 위협하는 <부르주아> 계층이 되었듯이, 일본에서도 천대받던 상인들이 부를 쌓아 상위계층을 위협하기 시작 한 것이지요. 돈이 본격적으로 유통되면서 금융업과 사채업이 발달하였고, 오히려 가난해진 정부나 귀족들이 오사카의 거상(巨商)들에게 돈을 빌리게 되면서 그 위세가 점점 높아지게 됩니다. 가마쿠라 시대 때 무인들이 새로운 권력층이 되면서 귀족문화를 받아들여 일본 식문화를 발달시켰듯이, 이번에는 상인들이 무인계급을 밀어내면서 식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게 된 것이지요. 돈많은 상인들이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게 되면서 기존 식문화를 집대성하는 동시에 중국과 서양의 다양한 식문화를 받아들여 일본의 식문화와 융합시키게 되고, 따라서 진정한 일식의 완성은 <에도시대>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순수 일본인을 생각하면 보통 체격이 작은 일본인을 생각하지만, 전국시대까지는 육류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특히 전쟁이 잦았다보니 힘을 돋구기 위해서 더 육류를 자주 먹었겠지요) 체격이 큰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게 에도 시대부터는 나라가 안정되자 불교의 영향이 커져 채식+생선 위주의 식사를 하게 되었지요. 그 때부터 다시 일본인의 체격이 작아졌다고 합니다.
6. 발전되기 시작한 대중음식들 전쟁이 끝나고 병사들이 농사일로 복귀하여 일손이 늘어나게 되면서, 새로운 땅도 개간되고 농업 기술도 향상되어 쌀 수확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됩니다. 게다가 일본의 따뜻한 기후는 쌀을 수확하기에 최적이었죠. 그래서 이전에는 아침 저녁 두번만 먹었지만, 이젠 일반 가정에서도 점심을 먹는 습관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서민들이 여유로워지자 서민들도 풍부한 대중요리를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조미료도 다양해졌는데, 기존의 조미료였던 소금, 된장, 식초 외에 간장, 설탕, 다시마, 가다랑어포 등이 이때 만들어지게 됩니다. 말하자면 에도시대 이전까지는 간장이 없었던 셈이지요. 이런 새로운 조미료들은 일본의 대중요리를 다양화시키는 데에도 기여하였습니다.
17세기 중반에는 메밀국수집이 탄생하였는데, 이후로 외식산업이 활성화되게 됩니다. 튀김이나 장어를 파는 노점, 걸어다니면서 음식을 파는 행상인이 출연하게 되었지요. 찻집은 처음에는 절 근처에만 있었지만 점차 도로변에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극장 근처의 찻집에서는 술도 같이 팔았고 유곽 근처의 찻집에서는 회가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선술집이 따로 있긴 했지만 찻집에서 술도 팔았기 때문에 찻집과 선술집의 경계가 애매모호했습니다. 선술집에서는 음식도 팔았으며, 음식을 파는 선술집의 대표적인 모습은 일본 드라마 <야간식당>에서도 볼 수 있지요. 1862년에 쓰여졌던 책에 의하면 야채와 고기조림, 구운 경단, 튀김, 군고구마, 찹쌀떡, 초밥, 장어, 오차즈케(찻물에 만 밥), 매실장아찌, 우동, 메밀국수, 나라즈케(무절임) 등 많은 음식을 팔았다고 합니다.
7. 옛날에는 초밥이 사각형이었다!
지금은 초밥이 신선한 생선을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초밥의 시작은 생선을 오래오래 두고 먹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즉 발효음식이었던 셈이지요.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동남아시아 지방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지금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생선과 밥을 함께 지어 발효시켜 먹는 음식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우리나라에서도 가자미 식해가 만들어지고 있지요.) 이러한 방식은 일본에서 나레즈시 라는 방법이 되어 초밥의 시초가 됩니다. 나레즈시는 소금에 절인 생선의 내장을 빼내고 밥을 넣어 나무 상자에 넣은뒤 무거운 돌로 뚜껑을 눌러서 발효시킨 음식으로, 발효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드는데에 3개월 가량의 시간이 걸려서 바로바로 먹는 음식은 아니었지요. 우리나라의 김장김치와 같은 숙성 보관용 음식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던게 무로마치 시대가 되면서 절인 생선을 초를 친 밥에 얹어 틀에 눌러서 잘라먹는 <누름초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나레즈시는 시간이 워낙 오래걸리다보니 숙성기간을 줄이고 간소화시킨 초밥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물론 이 방식도 생선을 절여야 하기에 일주일 정도의 숙성 기간은 필요했을 겁니다.(참고로 생선이 소금에 절여져서 발효되면 짠맛이 나는게 아니라 식초와 같은 시큼한 맛이 납니다.) 오늘날에는 고등어나 정어리 같은 기름기있는 생선을 초절임하는 것 외에는 신선한 생선을 스시에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당시에는 초밥의 기본 방식이 절임초밥 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처럼 손으로 뭉쳐 만든게 아니라 사각형 틀 속에 밥을 깐 뒤 생선을 깔고 꾹 눌러서 모양을 잡아 잘라 만든, 틀초밥이었지요. <미스터 초밥왕>을 보셨다면, 외전 만화에서 옛날 일본의 초밥가게들은 누름초밥만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바닷물고기보다는 민물고기가 인기있었고, 가자미 같은 흰살생선이 고급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은어가 상류층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하죠. 지금은 최고급 생선으로 취급받는 참다랑어는 당시에는 싸구려 생선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생선 보관기술이 없었다보니 참다랑어 같은 깊은 바다에서만 잡히는 생선은 도시까지 신선한 상태로 유통하기가 거의 불가능했고, 그래서 참다랑어를 단순히 살만 많은 생선 정도로 취급한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누름초밥은 에도시대가 되면서 다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에도시대가 되면서 정부(막부)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설치되어 에도를 중심으로 문화가 발전하게 되는데, 그로인해 식문화를 전통적인 음식 위주의 관서지방과 세련된 도시풍의 관동지방 으로 나누기도 하지요.(지금도 관서지방과 관동지방의 음식의 대립은 여전합니다. 관서지방 쪽은 아무래도 천여년동안 일본 문화의 중심이면서 귀족 중심으로 발전시켜온 음식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지요.) 5장에서도 말했다시피 평화로운 에도시대가 되면서 서민들이 여유로워지자 외식문화가 발달하게 되었고, 초밥은 노점에서 쉽게 만들어 팔기 위해 누름초밥에서 현재의 쥠초밥으로 바뀌게 됩니다. 누름초밥도 나레즈시를 간소화시킨거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며칠간의 절임 기간이 필요한데다가 틀을 사용해야 해서 번거로웠기 때문에, 간편하게 아무 처리도 하지 않은 신선한 생선을 손으로 바로바로 쥐어서 재빨리 만드는 방식이 더 노점에 적합했던 거지요. 하지만 맛을 이전과 비슷하게 유지는 해야하니까, 소금에 절인 발효생선의 시큼한 맛을 내기 위해 밥에만 식초를 넣어 시큼하게 만들게 됩니다. 현재 스시의 기본형이 확립된거지요. 또한 생선알과 조개류도 초밥 재료로 사용하게 되면서, 스시는 점차 다양해지게 됩니다.
8. 일본 면요리의 시작은 소면!
초밥과 함께 일본 식문화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면 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면요리를 좋아하는 편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칼국수, 막국수, 냉면 같은 맛있는 면요리가 많이 있긴 하지만 가끔 먹는 식사 라는 느낌이 강한데 비해, 일본 쪽은 아예 밥대신 우동을 먹거나 매일매일 라멘이나 메밀국수를 한끼 씩 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면을 좋아하지요. 그러한 일본의 면 역사의 기원은 바로 <소면>이었다고 합니다. 밀가루로 만든 가느다란 면이지요.
일본의 면 문화는 나라 시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전해졌는데, 그 시작은 <사쿠베이>라는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무기나와>라고 불렀는데, 밀가루와 쌀가루를 더해서 만든 반죽을 손으로 밀어서 밧줄처럼 꼬아놓은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우동보다 두꺼웠으며 익히거나 날것을 뜯어서 양념을 곁들여 먹었다고 하죠. 황족이나 귀족들이 먹는 음식이었으며, 가끔 스님들에게 제공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뭐랄까 단순한 음식이라기 보단 신에게 바치는 공물 같은 음식이었던 셈이지요. 그 이전에도 밀은 재배하고 있었지만 쌀이 주식이었기 때문에, 밀과 보리를 벼의 수확이 끝난 땅에 심어서 밥에 섞어 먹거나 죽으로 만들어 먹는 정도였지요. 이 <무기나와>가 시대를 거쳐가며 한자가 변하였고, 에도시대에는 <소면(素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밀가루 떡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모습은 점차 가늘어져 후루룩거리며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요.(일본은 후루룩 거리는 소리를 내며 면을 먹는 게 음식 예절입니다)
그리고 무로마치 시대에 중국에서 새로운 제분기술과 납작하게 늘인 반죽을 잘라서 면으로 만드는 방법이 전해지게 되면서, 우동, 냉국수 등도 이때 등장하게 됩니다. 일본의 우동과 메밀국수는 우리나라의 칼국수처럼 반죽을 썰어서 만들거든요.
9. 메밀국수는 서민으로부터, 우동은 귀족으로부터
지금은 왠지 메밀국수 하면 뭔가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르고 우동 하면 서민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옛날 일본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밀과 메밀은 조몬 시대(야요이 시대 이전) 때부터 오랫동안 재배해왔으며 밀은 무로마치시대때부터 전국적으로 퍼졌는데, 메밀은 밀보다 재배하기가 훨씬 편했기 때문에 농민들조차 기근 때의 비상식량 정도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농민도 그정도 생각이었으니 상류계급에서는 그냥 천한 식재료 취급이었겠지요. 이러한 메밀이 훌륭한 식재료로 재평가받게 된 것은 에도시대부터라고 합니다.
메밀은 조몬 시대 때부터 쭉 먹어오긴 했지만 꺼칠꺼칠해서 가루로 만들지 않으면 먹기가 어렵고, 밀가루를 섞지 않으면 길고 가늘게 늘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근세까지도 면으로 해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물로 반죽한 덩어리를 찢어 만드는 메밀 수제비를 해먹었지요. 귀족들이 메밀을 무시했던 것도 먹기가 힘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게 에도시대에 간장에 찍어먹는 메밀 국수가 만들어지면서 제대로 된 식재료로 평가받아 에도에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 값도 쌌기 때문에 서민에게 사랑받았지요. 원래 메밀 먹는 방식이 수제비 방식이었다보니 잘라서 면을 만드는 방식은 <소바기리(자른메밀)> 라고 하여 메밀수제비와 구별하여 불렀다고 합니다.
한편 우동은 무로마치 시대에 중국에서 반죽을 잘라 만드는 제면 방식이 도입되면서 만들어졌는데, <사쿠베이>의 변형 중 하나인 <아쯔무기>가 우동의 시초였다고 합니다. 처음 나왔을 때에는 황족이나 귀족, 고승들만 먹는 고급품이었다고 하죠. 그러던게 에도시대가 되면서 오늘날에도 흔히 보이는 납작한 형태의 우동으로 만들어졌는데 그때에도 우동은 밥보다 비싼 고급 음식이었다고 하네요. 우동의 시작이 관서 지방의 귀족들이었다보니 에도시대 때에도 우동은 교토나 오사카 지방에서 주로 먹었고, 지금도 우동은 관서지방이 더 유명합니다. 특히 사누키 우동이 유명하지요.
당시 역사를 살펴보면, 에도시대가 되면서 정부(막부)가 갑자기 에도에 세워진 거다보니 전통있는 귀족계급은 여전히 관서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동지방은 수도인 에도를 중심으로 귀족들의 왕래가 활발해지면서(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정책은 귀족들이 1년은 자기 본가에서, 1년은 수도인 에도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업과 대중문화가 발달하였지요. 그러다보니 관서=귀족문화=우동, 관동=대중문화=메밀국수 가 된 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0. 판타지에 나올 듯한 일본의 휴대식량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군사정권 시대가 이어졌기 때문에(가마쿠라시대~전국시대), 병사들을 위한 여러가지 휴대식량도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전국시대에는 사시사철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전투식량 개발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죠. 대표적으로 사용된 것이 주먹밥(오무스비)인데, 주먹밥의 유래는 휴대용 식량이 아닌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무스비> 라는 단어는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신성한 힘>을 뜻하는데, 고대인에게 산은 신이 사는 성역이었기 때문에 산 모양으로 쌀을 뭉쳐서 만들어 먹은 게 주먹밥의 시작이었던 거죠. 즉 일본의 주먹밥 모양이 삼각형인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조미료나 국물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도 사실 전국시대의 병사용 휴대식량이었습니다. 조린 가다랑어를 불에 살짝 구운 게 그 시초인데, 지금의 가다랑어포처럼 딱딱하지는 않았죠. 그게 에도시대가 되어서 현재의 형태에 가까운 가다랑어포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생선살은 보통 자가소화로 인해 액체화되기 쉬운데, 조려서 익히면 장기보존이 가능한 식재료가 되거든요.
일본 병사들이 애용했던 휴대식량으로는 <이모가라와라(芋幹縄)>라는 게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모>는 <고구마>를 뜻하는데, 말그대로 고구마 줄거리를 잘라 말린 후 노끈 형태로 엮어서 된장으로 조리는 요리였습니다. 이 줄거리를 허리에 감고 다니다가 노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된장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잘 씻어서 끓이면 바로 된장국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된장국을 만들어 먹기 위해 <미소간(味噌丸)>이라는 것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대두를 삶아 으깨서 누룩을 더해 둥근 구슬을 만든 것으로 가지고 다니는 동안 발효되어 된장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좀 더 본격적인 전투식량으로는 <효로간(兵糧丸)>이나 <키카츠간(飢渴丸)>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흔히 만화 같은데서 일본 닌자들이 식량대용으로 가지고 다닌다고 하는 병량환(나루토에서도 뚱뚱보 쵸지가 능력 증폭에 사용하는 걸로 나오죠)인데, 곡물과 지방성 재료를 물이나 술로 반죽한 다음 4~5cm 크기로 둥글게 빚어 찌거나 건조시킨 음식이라고 합니다. 기록상에 의하면 3개를 먹으면 하루 정도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한숨 돌리게 하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스이카츠간(水渴丸)>은 매실장아찌, 보리, 고려인삼, 얼음사탕 등을 섞어 둥글게 빚어 건조시킨 것으로,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휴대식량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효능은 별로 없었고, 차라리 둥근 돌을 입안에 넣는 것이 침을 나게 하여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11. 전국시대의 병사들은 밥을 어떻게 해먹었을까?
당시 전국시대의 일본 병사는 농번기 때에는 농사일을 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병사로 일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시대더라도 농번기 때에는 전쟁을 쉬는 경우가 많았죠.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최초로 직업군인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들 농사지을 때 전투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훨씬 우수한 병사들을 얻을 수 있었던 거죠.
아무튼 이런 식으로 보통은 농민=병사 였다보니, 지급되는 쌀과 부식 외에는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쌀은 1일에 6홉, 소금은 10인에 1홉, 된장은 10인에 2홉>이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1홉은 약 0.18리터 인데, 6홉은 1리터(약 800g)에 달하는 양이죠. 보통 밥 한공기에 120~130g 정도의 쌀이 사용되고 3공기를 먹는다고 해도 400g 정도에 불과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2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농민들에게는 이렇다 할 반찬도 없었던데다가, 탄수화물은 열량소모가 빠르기때문에 많은 양의 밥을 먹어야 했던 거죠.(우리나라도 조선시대 농민들이 먹던 밥의 양과 현대인이 먹는 밥의 양을 비교해보면 조선시대 때의 밥의 양이 2배 가까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투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밥은 하루에 한번만 하여 2홉을 바로 먹고, 나머지 4홉은 허리에 동여메고 나중에 먹었습니다. 보통 현미가 지급되었으며, 정미된 흰쌀도 있긴 했으나 하급 병사들에게는 잘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부식은 거의 없었고 위에서 언급된 소금과 된장만으로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매실장아찌나 절인야채 등의 보존식품은 각자 집에서 만들어 챙겨와야 했습니다.
반찬도 부실한데다가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동물성 단백질도 필요하다보니 병사들이나 무사들은 종종 야산에서 들짐승과 생선을 잡았습니다. 숲이 많고 동물들도 많던 옛날이다보니 산에서 동물 잡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생선과 고기를 자주 먹게 되어 전국시대의 무사들은 훗날의 무사보다 체격이 훨씬 좋았다고 합니다. 에도시대 때부터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류를 기피하게 되었지요.
전쟁이 일어나면 적지의 밭과 마을은 약탈대상이 되기 때문에 침략받은 쪽은 싸움에 이겨도 경제적, 정치적 데미지를 입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적국의 식량을 빼앗아먹는 것은 훌륭한 군사행동으로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12. 젓가락은 일본의 식문화를 대표한다!
현재 젓가락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 한국, 베트남, 일본 등이 있습니다. 발상지는 기원전의 중국으로, 은나라의 유적에서 청동 젓가락이 출토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젓가락은 의례용 도구였으며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춘추전국시대 때 부터였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아스카 시대(593~645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나라시대에는 귀족들이 젓가락과 숟가락을 함께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젓가락'만을' 사용하여 밥을 먹는 나라는 일본뿐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함께 사용합니다.(중국도 젓가락 위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어쨋든 볶음밥용 사기 숟가락이 따로 있기는 하지요) 일본은 국도 그릇째 들어서 마시지요. 또한 중국과 한국은 젓가락이 길고 끝이 뭉툭한데, 일본은 끝이 뾰족합니다. 생선이 주식이었다보니 생선뼈를 쉽게 발라내기 위해 끝이 뾰족해진 것이지요. 그리고 재질도 중국은 대나무나 상아, 한국은 금속류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데, 일본은 주로 옻칠을 한 나무나 껍질을 벗긴 맨나무 등을 주 재료로 사용합니다. 또한 다른 나라와는 달리 테이블에 젓가락을 놓을 때 가로로 놓는 것도 일본만의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젓가락만으로 밥을 먹는 문화다보니 일본에서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젓가락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젓가락은 <옻 젓가락>인데, 나무로 만들어 옻칠을 한 젓가락입니다. 옻칠을 한 거다 보니 보통 색이 까맣거나 어두운 계열이죠. 정월 식사 때에는 신성한 나무라는 버드나무로 만들어진 <버드나무 젓가락>이 사용되었는데, 이 젓가락은 특이하게도 양쪽이 가느다란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반적인 일본 젓가락이 위쪽은 각이 져있고 아래쪽은 뾰족한 긴 삼각형 모양이라면, <버드나무 젓가락>은 가운데만 두껍고 양 끝이 뾰족한 () 모양의 젓가락이었습니다. 두 끄트머리 중 한쪽만을 사용하였는데, 사용하지 않는 다른 한 쪽은 <신이 사용하는 부분>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젓가락질을 할 때 신이 함께 사용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경사를 축복하고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1회용 젓가락으로 사용되는 나무젓가락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하나로 붙어있다가 먹기 직전에 쪼개서 사용하는 나무젓가락을 <텐소게(天削) 젓가락>이라고 하였습니다. 일본 만화나 드라마의 전통 식당 같은데서 나오기도 하는 나무젓가락으로 긴 삼각형 모양의 나무가 끝부분만 쪼개져 있는 형태인데, 싸구려틱한 현재의 1회용 젓가락과는 다르게 1회용이면서도 꽤 고급스럽게 생겼지요.(아래 사진 참조)
그리고 아래 사진과 같이 젓가락 끝까지 쪼개기 위한 홈이 파여져 있는 나무 젓가락은 <겐로쿠(元禄) 젓가락> 이라 불렸습니다.
사실 요즘엔 워낙 중국제 싸구려 1회용 젓가락이 범람하다보니 위 사진의 젓가락도 왠지 싸구려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러한 1회용 나무젓가락의 시초는 일본이었으며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식기였습니다. 처음에 설명했던 <껍질을 벗긴 맨나무>가 바로 이 젓가락에 사용된 재질이지요. 게다가 공장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다보니 이러한 나무젓가락은 수공업자가 직접 깎아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레토르트 식품이나 컵라면도 없던 옛날 일본에서 1회용 젓가락이 사용되게 된 계기는, 바로 일본이 1인 식사 위주의 <혼젠 요리>가 발달했기 때문이었죠. 일본에서는 <식기류는 그 개인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그러한 성향은 현재 일본 만화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컵이나 그릇에 이름을 쓰는 장면이 흔히 등장하지요) 손님을 대접할 경우에는 그릇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직접 입을 대야 하는 젓가락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여행갈 때 자신만의 젓가락을 챙겨가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한 손님에게는 이러한 1회용 젓가락을 사용하여 식사를 대접했던 거지요.
13. 일본의 여러가지 발효식품들
일본에서 발효식품이라고 한다면 가장 유명한 것이 된장과 낫토입니다. 일본식 된장은 한국식 된장과는 좀 다른데, 한국식 된장은 100% 콩만으로 메주를 만든 다음 자연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에 여러가지 발효균과 곰팡이균 등이 복합 작용하여 복잡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만들어냅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쌀과 콩을 섞어 만드는데, 한국보다 덥고 습한 지역이다보니 부패되기가 쉬워서 미리 누룩을 첨가하여 발효시킵니다. 말하자면 미리 발효시킬 균을 정해주는거죠. 이렇게 만들어진 일본 된장은 한국 된장보다 구수한 맛이나 효능은 떨어지지만 맛이 균일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집니다.
된장을 만들때 나오는 액체를 달여서 만든 것이 바로 간장인데, 간장은 에도 시대(1603~1868년)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일본과 활발한 교역을 하던 네덜란드인을 통해 해외로 수출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유럽에서는 고기요리의 귀한 조미료로 사용되었으며, 루이 14세도 간장을 매우 좋아했으나 워낙 비쌌기 때문에 쉽게 먹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발효음식인 낫토는 찐 대두를 볏짚으로 싸거나 덮어서 만듭니다. 볏짚에 살고있는 고유의 발효균이 대두를 발효시켜 끈적끈적한 낫토를 만들어내는데, 우리나라의 청국장도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죠. 헤이안 시대(794~1194년) 때부터 만들어져왔지만, 당시 헤이안 귀족들에게는 엽기적인 음식 취급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콩을 발효시켜 먹는 음식은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많이 존재하는데, 인도네시아의 <템페>, 네팔의 <키네마>, 부탄의 <스리토데> 등도 끓이거나 찐 대두를 잎으로 감싸 발효시킨 음식이죠. 다만 보통 양념이나 국물 재료로만 사용하는 한국과 일본과는 다르게 동남아 지역의 발효콩 음식들은 직접 튀기거나 삶아서 먹는다고 합니다.
14. 세계적으로 냄새로 유명한 발효식품은?
청국장이나 낫토가 정말 냄새난다고들 하지만, 사실 세계적으로 발효식품들을 따져보면 청국장 뺨때릴 정도로 심한 냄새가 나는 발효식품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홍어회도 그 중 하나죠. 이러한 발효식품들은 냄새가 강렬해 초심자가 접하기는 힘들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끊기 힘들정도로 중독적인 맛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일본 얘기는 아니지만, 발효식품 얘기를 한 김에 세계 유수의 냄새나는 발효식품 Top 5 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스펀지에서도 방송된 내용이기도 하지요.
5위 - 쿠사야 : 이즈 제도(도쿄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화산섬들이 모여있는 군도)의 특산물인 생선절임입니다. <쿠사야액>에 8~20시간 정도 절여 말린 생선으로, 이 <쿠사야액>은 소금이 고가이던 시절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계속 생선을 절이는 데 재활용되어 생선의 성분이나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었다고 합니다. 즉 발효되는 건 생선이 아니라 절임액인거죠. 굉장히 악취가 심하긴 하지만 어쨌든 생선이 발효되는 건 아니기때문에 비슷한 생선 발효식품인 홍어회보다는 냄새가 덜하다는 듯 합니다.
4위 - 키비약 : 그린랜드와 알래스카, 캐나다 등 극한의 북쪽 지역에서 살고있는 이누이트족(에스키모족으로 더 잘 알려져있지만, 사실 에스키모 라는 이름은 캐나다 인디언이 이누이트족을 비하하여 붙인 이름입니다.)의 발효식품으로, 깃털이 달려있는 바닷새 수십 마리를 바다표범의 생가죽에 채워넣어 2달에서 수년 동안 묻어둡니다. 보통 더운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발효식품과는 달리 극한에서만 만들어지는 발효식품으로, 강렬한 냄새가 나며 시베리아의 추크치족이 해마의 고기를 발효시켜 만드는 <코파리긴>도 이와 비슷합니다. 새고기를 꺼내 항문 부분에 입을 대고 발효되어 액체가 된 내장을 빨아먹거나, 가죽을 잘라서 고기를 먹습니다. 액체가 된 내장은 조미료로 사용하여 구운 고기에 찍어먹기도 합니다.
3위 - 에피큐어 치즈 : 뉴질랜드의 발효 치즈 중 하나로 무려 3년 정도나 발효시킨다고 합니다. 치즈 특유의 구린내가 발효되면서 더 심해지고, 에피큐어 치즈만의 식감이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좋은 식감은 아닌지라 매니아들만 찾는다고 하네요. 특히 치즈향에 익숙하지 않은 동양인들로서는 더욱 먹기힘든 음식이겠지요. 잘못 먹으면 몇일을 역겨움으로 고생한다고 합니다.
2위 - 홍어회 : 홍어의 살을 항아리에 넣고 퇴비에 묻어 열을 가해 10일 정도 발효시킨 우리나라 전라도 지방의 발효음식으로, 키비약의 5배에 달하는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고급 음식으로 사용되며 잔치나 큰 행사에 반드시 들어가는 진미라고 하지요. 그 찡한 냄새와 맛은 외국인들이 못먹는 한국음식 1위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보통 홍어와 삼겹살, 김치를 함께 먹는 홍어삼합이 유명하지요. 홍어가 가진 요산이 분해되어 암모니아가 발생하기 때문에, 입에 오래 넣고 있으면 구내점막이 헐 수도 있다고 합니다.
1위 - 수르스트뢰밍 : 뭔가 발음하기도 힘들어보이는 이 음식은 바로 스웨덴의 소금 절임 청어통조림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냄새나는 음식이라 불리며,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야외에서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집에서 먹었다가는 악취가 배일 테니까요. 통조림이다보니 깡통이 발효 작용으로 빵빵하게 부풀어올라있어서, 물속에서 열지 않으면 내용물이 날아가 위험하다고 합니다.(이미 폭탄취급) 소금 맛이 강하지만 생선의 식감도 남아있으며, 발효가 더욱 진행되어 아예 액체가 되어버린 생선살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세계에서 가장 냄새가 나는 음식 Top 5> 입니다. 이것 외에도 북구 유럽에서 <하칼>이라고 하여 상어를 수개월동안 발효시킨 요리도 있는데, 냄새는 수르스트뢰밍 이상이라고 하네요.
이상으로 일본 시리즈는 끝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서양 역사보다도 덜 알려진 게 일본역사다보니 새로운 사실이 많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에도시대 때의 음식문화를 제대로 표현한 게임으로는 Wii & PSP 비타 게임인 <오보로 무라마사>가 탑이라고 생각합니다. 액션게임인데... 게임하다보면 배고파져요[...]
다음엔.. 음...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아지역을 써볼까 하긴 하는데 아직 확실히는 정하지 못했어요.
그럼 담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