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국사가 싫어서 이과에 간( ..) 학생입니다. 재작년에 병역 관련으로 3급 딴다고 다시 며칠 공부해 보니까 그 시절에 왜 그렇게 국사가 싫었는지 알겠더라고요. 아, 한국사검정시험을 위한 국사 공부는 지금도 다시 공부하라면 오른손 가운데손가락을 굳게 세우고 투쟁할 겁니다.
제가 느꼈던 걸 몇 문단 정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밑에 세줄요약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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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 없고 확장 없는, 닫힌 암기형 서술.
한국의 고교 및 일반인용 국사 교육 과정은 과장 좀 보태서 논리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게, 정치사/경제사/문화사 등등이 전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교과서를 저술한 배경이 되는 연구 자료라던가에 대한 접근을 막고 그냥 외우라고만 하네요. 궁금한 사람은 이것저것 찾아보라고 인용 표시 및 리디렉션(redirection) 이라도 제대로 해 줘야 할 텐데 말입니다. 지금 안 밝혀진 건 안 밝혀졌다고 솔직히 말하기라도 하던가요.
오히려 최근에는 엔하위키에 적힌 게 더 재미있을 정도인데, 출처는 적히지 않았을지언정 교과서에 없는 디테일 및 상황 연역이 살아 있습니다. 지식의 확장조차 제시되지 않는 교과서 따위를 들여다 봤자 졸음밖에 더 오겠습니까.
P. S. 국사 공부가 지겨우신 고교생 여러분들은 심심하시면 엔하위키 검색해 보세요. 서술이 잡다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이 재정렬되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서드파티 교재가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이런 다각적 서술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습니다. 그거 보다가 다른 데 말리는 건 함정 시작은 소드마스터 척준경부터
예제 1: "위대한 한민족, 그리고 위대해야 할 우리"라는 강박
이게 앞에서 언급한 연역 없는 암기형 서술의 원인 중 하나겠죠.
승리와 번영기는 기록할지언정 패배는 기록하지 않는 서술이 그 당시에 많이 거슬렸습니다. 한 예로, 여요전쟁 2차에서 왜 임금이 몽진을 다녀야 했는지에 대한 서술이 대단히 애매모호한 것을 알 수 있죠. 사실 그 이유는 통주에서 한타싸움 제대로 털려서 대장이 생포되고 병력이 공중분해된 탓이 컸는데, 이 서술을 뭉개버림으로서 단지 '임금이 어쩌다 보니 몽진을 갔다'라고 외워야만 하죠. 조선 인조 대의 삼전도의 굴욕, 현종 대의 경신대기근 등의 디테일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도 또 다른 예제겠죠.
위의 사례들을 보면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위대했으니 우리도 위대하게 살아야 한다" 라는 걸 말하고 싶은 듯 한데, 마치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오래 된 문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뭐 가치 판단은 맡기겠습니다.
예제 2: 역사 일반론과의 단절: 귀납도 없는 서술
여러 나라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인간의 역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공통점 및 차이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각 나라별로 정부를 구성한다고 하면 어떤 부서들이 必要韓紙에 대한 '정부 일반론'에 대한 서술을 할 수 있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3성 6부제든 고려 시대의 2성 6부제든, 아니면 조선 시대의 육조이든간에 국가 행정조직이 돌아가려면 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에 대해 일반론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 행정조직의 명칭 자체가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서술 또한 가능하겠죠.
물론 교과서에는 그런 서술 없고 이것저것 디벼 보면서 귀납해야 하는데, 일반론 안 가르치고 다짜고짜 부서 명칭을 외우라 하면서 그게 중요하다고 강조해 대면 그게 참 잘도 살아 있는 지식이겠습니다 -ㅂ-......
아마 역사 일반론이라고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챕터가 맨 앞에 랑케와 카를 언급하는 거 하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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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현대사와의 단절 같은 큰 문제가 있지만, 이건 사실상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촉발된 문제이니 여기서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맨날 X누리당과 그 조상들 까대기도 피곤합니다.
세줄요약
1. 국사가 재미없는 이유 하나는 연역을 고려하지 않은 암기 위주의 서술 때문이다.
2. 국사가 재미없는 이유 또 하나는 지식의 확장을 고려하지 않는 서술 체계 때문이다.
3. 국사가 재미없는 이유 다른 하나는 귀납으로 얻어 낼 수 있는 역사 일반론조차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