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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 3탄 - 그리스 로마 문명 (2부)
게시물ID : history_192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나토스
추천 : 28
조회수 : 9661회
댓글수 : 28개
등록시간 : 2015/01/05 20:07:05
지난번에 이어서 2부입니다! 

식문화 1탄 - 중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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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 2탄 -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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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 3탄 - 그리스 로마 문명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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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로마 제국에서는 무슨 요리를 주로 먹었을까?
  로마가 제국이 되고 매우 부유해지면서, 로마귀족들은 점점 더 미식가가 되었습니다. 온갖 비싸고 희귀한 재료들을 수입하였고, 어떻게 요리해야 맛있을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었죠. 돼지를 더럽다고 싫어했던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는 달리 로마에선 돼지고기도 매우 좋아했는데, 주로 쪄서 먹었다고 합니다. 이렇가 하면 돼지고기에 양념국물이 스며들어서 부드럽고 맛있어지죠. 오늘날로 말하자면 중국의 <동파육>같은 느낌이랄까요? 또한 햄(돼지고기 허벅지살을 훈제한 것)도 먹었는데, 이는 북쪽의 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이 만든 것을 수입하였기 때문에 비쌌다고 합니다.
  우유는 마시기보단 주로 치즈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치즈는 정찬 코스에서 그대로 먹기도 하고, 훈제하거나 요리에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의 치즈 요리로는 치즈에 말린과일과 와인을 곁들여 가열하는 <이포트리마>, 치즈를 갈아서 마늘과 스파이스를 섞은 <모리튐> 등이 있었습니다.
  새고기도 매우 좋아했는데, 가금류(가축으로 키우는 새)는 물론 지금은 잘 먹지 않는  타조, 부엉이, 앵무새 등도 먹었다고 합니다. 또한 로마시대의 유명한 미식가이자 요리사인 아키피우스는 <커스터드 푸딩>을 발명하기도 했지요. 어류로는 다랑어, 숭어 등을 먹었고, 특히 다랑어는 비싸게 취급되었습니다. 로마는 따뜻한 지방인데다 냉장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생선류는 보통 소금절임으로 만들어지는게 기본이었지요. 조개류도 옛날부터 많이 먹었지만 생선보다 더 잘 썩기 때문에 내륙지방에서는 잘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굴을 매우 좋아했기때문에, 로마 군대에 소금에 절인 굴이 납품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당시엔 생굴을 주로 박하와 파슬리가 들어간 벌꿀에 담가서 먹었다고 하네요. 어류 외에 성게, 오징어, 대하 등도 먹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조미료로는 졸인 포도즙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 향신료나 허브로 후추, 커민, 코리앤더, 샐러리, 사프란, 파슬리 등이 사용되었지요. 당시에버터도 있었지만 싼 기름으로 취급되었고, 주로 올리브유를 선호했습니다. 소스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향신료나 허브 등을 섞어 소스를 만들었으며, 벌꿀을 섞은 양념을 생선이나 햄에 발라 요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0. 먹기위해 키워진 로마의 가축들!
  이렇게 요리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먹기위해 다양한 가축들을 키우기도 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산쥐>입니다. 기니피그같은 통통한 체구를 가진 쥐인데, 당시 유럽인들이 매우 좋아하던 식재료였죠. 1부 풀코스편에서도 얘기했지만 산쥐의 벌꿀요리는 전채의 기본 메뉴였습니다. 산쥐는 매우 흔했기 때문에 산에 가도 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굳이 사육하여 키운 이유는 겨울에 동면을 하면서 살이 빠져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면을 방지하고 살찌워서 양질의 고기를 얻을 수 있도록 일부러 양식을 했던 거지요. 산쥐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리라리움>이라고 하여 내부가 나선형으로 되어있는 특수한 항아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산쥐는 중세 유럽에서까지도 즐겨먹었지만,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기피하게 됩니다. 다른종류이긴 하지만 어쨋든 쥐다보니 흑사병을 퍼뜨리는 시궁쥐와 닮았거든요. 그래서 당시에 사육하던 산쥐들이 모조리 버려지게 되었고, 숲으로 도망친 산쥐는 유럽대륙에서 다시 야생화되었습니다.
  가금류 중 거위는 고기 외에도 간(푸아그라)을 얻기 위해 양식되었고, 달팽이요리를 위해 기원전 50년경부터 식용달팽이가 양식되었다고 합니다. 닭도 있긴 했지만 귀한 재료였지요.
  해산물이나 민물고기 중 굴, 장어, 도미, 곰치는 양식을 하였습니다. 로마 교외에 <티베리우스 황제의 동굴>이라 불리는 양식장 유적이 지금도 남아있다고 해요. 또한 상하수도 설비로 유명한 로마이니만큼 도시에서도 쉽게 물을 얻을 수 있었고, 그래서 시장에서는 오늘날 횟집처럼 해수어용과 담수어용 수조 등이 구비되어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의 기술로 생선을 살아있는채로 내륙까지 운반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신선한 생선이 매우 고급 재료였지요.

11. 비싸고 귀한 거라면 몸에도 좋지 않을까?
  위에서 말한 가축들이 <일반적인 식재료>라면, 로마에서는 돈이 넘쳐나는 귀족들이 일반적인 식재료들에 질려 점점 더 희귀한 식재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맛이 없더라도 신기하거나 귀하고 비싼것이기만 하면 좋은 식재료로 취급되었고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믿었죠. 또한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케나>라고 하는 정찬을 열어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진귀한 재료를 구해 손님을 대접하면 주인의 인기가 올라가고 존경받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귀족들은 진미에 열광했습니다.
  당시에 유명했던 진미를 예를들어보자면, 우유에 끓인 돼지의 유방, 무화과로 살을 찌운 돼지의 간, 우유로 살을 찌운 식용달팽이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살아있는 닭에게서 자른 볏, 낙타의 발굽, 백조, 돌고래, 잉꼬, 거북이 등도 귀한 진미로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플라밍고의 혀는 역대 황제들이 매우 좋아했다고 하지요. 공작은 고기가 질기고 별로 맛이 없는 식재료였지만, 외관이 워낙 화려했기때문에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공작은 장식을 중요시여기는 중세시대때까지 만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였지요.
  로마시대의 진미들 중 오늘날에서도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푸아그라(거위 간)입니다. 현재 서양의 3대 진미 중 하나로 취급받는 푸아그라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먹어왔다고 하죠. 로마시대때에도 푸아그라는 매우 고급 식재료였고, 거위에게 무화과를 먹여 간을 살찌웠다고 합니다. 로마가 시칠리아와 전쟁을 했던 핑계도 <무화과가 필요해서>였다고도 하죠.
  또다른 3대 진미 중 하나인 캐비어(철갑상어 알)는 당시에는 쓰레기식재료 취급이었습니다. 대신 철갑상어가 생선 중 가장 귀한 생선으로 취급받았죠. 캐비어는 철갑상어를 해체한 뒤 가난한 어부들이나 먹는 찌꺼기 음식이었다고합니다. 그런 캐비어가 현재는 초고급 재료가 되고, 정작 철갑상어는 이제 버려지고 있으니 참 신기하죠.

12. 앙트르메의 시작은 로마에서부터!
  학의 통구이, 빨갛고 하얀 물감을 칠한 고기, 살아있는 새를 가둔 단단한 파이, 와인이 뿜어나오는 분수 등. 바로 중세시대편에서 설명했던 장식을 위한 요리, 앙트르메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로마시대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중세처럼 아예 먹지못할정도로 꾸며놓은 음식은 아니고, 말하자면 <여러가지 연출을 넣은 요리> 였습니다. 예를들어, 새날개를 붙여놓아 신화속의 유명한 동물인 페가서스처럼 보이게 한 토끼구이, 내장처럼 보이게 뱃속에 소시지를 채워넣은 돼지 통구이, 살아있는 개똥지빠귀가 들어있는 멧돼지 통구이, 후추로 만든 소스 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표현된 생선찜 등이 있었죠. 
이러한 요리들은 연회에서 손님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에서는 모방요리도 유행했다고 합니다. 카에키리우스 라는 로마인의 기록에 의하면, 애호박을 사용해 생선, 버섯, 과자 등을 만들게 하거나, 돼지나 소 모양의 틀을 이용해 동물의 통구이처럼 보이도록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레몬잎과 벌꿀을 섞으면 로제와인 맛이 난다> 라는 식으로 맛의 모방에 대한 연구도 놀이의 하나로 행해졌다고 하네요.

13. 식사 한번에 차 한대 정도는 뽑아줘야 귀족이죠!
  당시 로마제국은 유럽 전부를 지배하는(당시엔 지중해 근처만이 유럽으로 취급되었고, 그 외에는 척박한 야만인의 땅으로 생각했습니다) 대 제국이었고, 그런 제국의 황제는 말 한마디로 새를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황제 밑의 귀족들 또한 높은 권력과 엄청난 부를 쌓고 있었죠. 귀족들의 사치는 말 그대로 극에 달했고, 이러한 사치를 막기 위해 <낭비금지법>이라는 법이 제정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별 효과는 없었지만 말이지요.
  요즘 현대에서는 아무리 돈많은 갑부라도 식비가 그렇게까지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물론 우리 기준으로는 충분히 비싸지만..) 이것저것 엄청나게 비싼 재료를 써댄다고 하더라도, 한끼에 몇백만원을 넘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지요. 하지만 당시엔 요즘처럼 즐길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던시대라, 귀족들의 사치는 특히 <먹는것>에 집중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값비싼 식재료 구입을 법으로 금지시켰지만 귀족들은 밀수로 식재료들을 손에 넣었죠. 교통시설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이다보니 수입밖에 방법이 없는 희귀한 식재료나 먼 바다까지 나가야만 잡을 수 있는 생선들은 엄청난 가격이 붙었습니다. 예를들어 타조, 황새치, 돌고래 등이 있었죠. 로마의 아우구스투스법에서는 <중요한 축제일의 요리에 노예 한 명분 이상의 돈을 들이면 안된다> 라는 규정이 있었는데, 당시 노예의 가격은 현대로 따지면 자동차 한대분의 가격인 2~3천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규정이 있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식사 한번에 2~3천만원의 돈을 써대는 귀족들이 많았다는 걸 의미하죠. 그런 사람이 별로 없었다면 법을 만들 필요도 없었을테니까요.
  예를들어 기행으로 유명한 황제 엘라가발루스(재위 218~222년)는 도를 넘은 요리로 신하와 손님들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10일간 계속해서 하루에 30마리의 돼지고기요리(진미로 여기는 유방과 자궁이 딸린 고기), 금가루와 보석가루가 뿌려진 콩요리, 진주가루를 뿌린 버섯요리 등을 대접했고, 한번의 식사에 600마리 이상의 타조의 뇌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진주알갱이를 넣어 만든 밥을 대접했는데, 밥을 먹다가 진주가 나오면 집에 가져가도 되었다고 하네요. 이러한 지나친 낭비가 원인이 되어 엘라가발루스 황제는 결국 수년만에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14. 빵은 딱딱한게 최고 아닌가요? 말랑말랑한건 씹는 맛이 없잖아요.
  로마에서 빵의 제조가 시작된 건 기원전 2세기 경으로, 당시에는 빵과 케이크의 구분이 따로 없었습니다. 뭐 디저트가 제대로 발달했던 것은 중세 이후인 16세기니까요. 기원전 1세기 정도를 기점으로 로마의 주식은 밀죽에서 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반 가정에서 빵을 굽지는 않았고, 빵굽는 노예가 따로 있는 부잣집을 제외한다면 서민들은 보통 빵집에서 빵을 사서 먹었다고 합니다. 
  로마, 즉 라틴어로는 빵을 <파니스>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가 포르투갈에선 <팡>이 되었고 이게 일본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빵>이라는 현재의 이름이 됩니다. 로마에서는 빵을 만들 때 반죽에 여러가지 다른 재료를 섞는게 유행이었는데 보통 올리브유나 베이컨, 버터 등의 유지를 섞어서 만들었으며, 포도즙이나 와인, 우유, 계란 등을 섞어서 맛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빵 제조 기술은 점점 발전하였고 돌가마나 청동 화덕을 사용하여 숯으로 굽거나 꼬치에 꿰는 등 제조 방법도 다양해졌죠. 무발효빵도 인기가 많았는데, 베이컨 조각과 지방이 들어간 <파니스 아디파토스> 같은 무발효빵은 후에 피자로 발전합니다.(토마토는 신대륙에서 건너온 채소기 때문에 당시에는 아직 없었습니다.) 
  이스트를 사용하여 폭신폭신한 빵을 만들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요즘처럼 말랑말랑한 빵보다는 단단하게 만든 빵이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빵을 와인이나 우유에 적셔먹는 것이 로마의 유행이었죠. 이러한 단단한 빵 사랑은 중세시대까지 지속되었으며, 중세 유럽인들도 단단한 빵을 와인이나 스프에 적셔먹는 것이 기본적인 빵먹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로마의 빵 중에서는 <파니스 비켄티노>라는 게 있는데, 이것은 질냄비에 반죽을 넣어 가마에서 질냄비가 깨질때까지 열을 가해 만든 것으로 포도즙을 넣어 달콤하긴 했지만 이가 안들어갈 정도로 굉장히 단단했다고 합니다. 이 빵은 오랜시간 열을 가해야하다보니 만드는데 꽤 수고스러워서 가격도 상당히 비쌌다고 하네요. 
  <파니스 무스타케우스>라는 빵은  과즙, 치즈, 허브 등을 넣어서 월계관을 씌운뒤 굽는 도넛모양의 빵인데, 이것은 로마시대의 웨딩케이크와 같은 음식으로 결혼식 때 먹는 축하음식이었다고 합니다. <파니스 파르레움>은 스펠트 밀가루(기원전 5천년 경부터 재배되었던 고대밀의 일종. 보통 빵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소맥과는 다른 품종입니다.)로 만든 빵으로 신혼 초야에 부부끼리 나눠먹었지요. 또한 군대용 식품으로 <파니스 밀리타리스>라는 빵이 만들어졌는데, 오늘날의 건빵이나 비스켓과 비슷하게 물기가 거의 없이 딱딱하게 만들어져 물에 담가 먹었다고 합니다.

15. 와인을 그대로 마시다니! 이사람, 예의가 없구만?
  그리스와 로마에서 와인은 매우 인기있는 술이었지만, 당시에는 와인에 물을 타서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브랜디나 위스키 등 도수높은 증류주가 많아서 양주에 물을 타 마시기도 하지만 와인은 비교적 도수가 낮으니 물을 타면 좀 밍밍했겠죠.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와인을 그대로 마시는건 야만적일 뿐더러 몸에 좋지가 않다고 여겼고, 와인을 그대로 마셔도 되는건 술의 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당시의 와인은 당도가 높아 달콤했고 증발로 쉽게 진해졌기 때문에 물을 타서 마셨던 거라는 설도 있습니다. 
  물을 넣는것도 규칙이 있었는데, 당시 로마에서는 와인에 물을 타는 것이 예법이었습니다. 마치 영국에서 밀크티를 만들때 우유를 먼저 넣느냐 홍차를 먼저 넣느냐로 다투는 것 같지만, 반대로 물에 와인을 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보통 그 비율은 와인:물 이 2:1, 5:2, 3:1, 4:1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와인셀러같은게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고 냉장고도 없었기에 와인의 장기보존이 불가능했습니다. 와인은 쉽게 변질되어 시큼해졌죠.(와인이 발효가 너무 진행되면 식초가 됩니다.) 그렇기때문에 와인의 변질을 늦추고, 맛을 속이기 위해 여러가지 첨가물을 넣었습니다. 요즘처럼 첨가물을 몰래 넣고 멀쩡한 와인처럼 꾸며서 팔았던 것은 아니었고, 당시엔 와인의 변질이 흔하다보니 첨가물을 넣는것도 당연하다고 인식되었던 모양입니다. 예를들어 탁한 느낌을 내기 위해 계란 흰자나 석회를 넣었고(우웩;;), 색을 내기 위해 알로에, 사프란 등을 넣었습니다. 달콤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물을 섞은 과즙이나 벌꿀을 넣기도 했죠. 향을 내기 위해서는 향신료나 허브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이 경우에는 <그리스 와인>이라고 불리며 고급 와인으로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색을 내기 위해 역청을 섞기도 했는데, 참고로 역청은 천연 아스팔트(고체 석유)로 갈색의 타르같은 물질입니다. 당연히 몸에 안좋죠. 사실 오늘날에야 이러한 물질들이 몸에 안좋다는걸 잘 알고있지만 당시엔 뭐 먹으면 바로 죽는 독이 아닌 이상은 <색이 좋아보이네? 넣어보자!> 였을테니까요.
  이러한 첨가물이 들어간 와인은 와인의 변질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지만, 사실 로마인들도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와인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와인에 첨가물을 넣는 것은 로마 뿐만 아니라 중세 후기까지도 이어졌다고 하네요. 

16. 로마의 최고의 와인과 최악의 와인은?!
  그리스에서는 일찍 딴 포도로 만든 산미가 강한 와인을 선호했지만, 초기 로마의 로마인들은 잘 익은 포도로 만든 달콤한 와인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 후기가 되면서 강하고 떫은 맛이 있는 와인으로 취향이 바뀌었지요. 당시에는 레드와인보다는 화이트와인이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로마 와인들 중 가장 평가가 높았던 것은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의 <팔레루눔>이었습니다. 현재 나폴리 지방 남쪽의 팔레루누스 산 경사에서 딴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그 중에서도 산 중턱에서만 수확하는 포도로 만든 <파우스티안 팔레루눔>이 가장 최고급이었다고 하죠. 이 와인은 최소 10년이상 숙성시켜서 먹었으며, 황금빛을 띠는 화이트 와인이었다고 합니다.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21년에 만든 <오피니안 팔레루눔>이 매우 걸작이었으며 기원전 100년경에 카이사르가 즐겨마셨다고 합니다.
  그 외에 <팟슴>이라는 건포도로 만드는 와인도 있었는데, 일반적인 포도보다 더 높은 당도로 만들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로마에서 가장 최하급으로 취급받는 와인은 뭐였을까요? 바로 <로라>라는 이름의 와인입니다. 이 술은 와인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노예용의 자가제 와인이었다고 합니다. 바꿔말하자면, 당시에는 노예도 어떻게든 와인을 만들어마실 정도로 와인이 대중적인 술이었다는 이야기지요.

17. 와인 말고는 뭘 마셨을까?
  물론 로마에서 와인만 마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와인 다음가는 술로는 벌꿀주가 있었죠. <아쿠아 무루사>라고 부르는 술로, 벌꿀과 물, 이스트균을 섞어 발효시켜서 만들었습니다. 벌꿀주는 와인보다는 안좋다고 여겼기 때문에 주로 시골사람들이 마시는 술이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시골이란, 북방지역에 살던 유럽인들을 가리킵니다. 포도는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랐기 때문에 북유럽 지방에서는 포도를 재배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나 벌꿀은 북유럽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매우 인기가 많았던 맥주는 로마에서는 <아리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완전 질이 낮은 음료로 취급받았습니다. 가격은 노예용 와인이라는 <로라>보다도 절반의 가격이었죠. 그리스&로마인들은 맥주를 마시는 사람을 야만인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로마가 멸망하고 중세시대가 되면서, 게르만족이 유럽을 차지하게 되자 그들이 즐겨마시던 맥주는 다시 인기있는 술이 된거지요.
  여기까지는 술에대한 설명이었고, 그 외에는 무슨 음료수들이 있었을까요?
  로마어린이들은 <테후루툼>이라는 음료수를 주로 마셨습니다. 과즙을 졸여만든 시럽이었죠. 이걸 물이나 식초에 타서 희석해서 마셨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집에 가보면 흔하게 있는 매실원액 같은 느낌인거죠.
  <포스카>는 물을 탄 식초로 향신료나 벌꿀을 넣기도 했다고 합니다. 식초를 넣으면 물이 잘 상하지 않기 때문에 여행시에 주 음료로 사용되었지요. 와인이 전부 다 발효되어버리면 식초가 되었기 때문에, 와인이 있는 지역이면 식초도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오늘날에는 오히려 고급으로 취급받고 있는 발사믹식초가 바로 와인 식초이죠)
  <메르카>는 양이나 염소젖으로 만든 요구르트였습니다. 즉 젖을 발효시킨거죠. 소화를 돕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건강식품으로 주로 이용되었습니다. 후추나 가름(요구르트에 젓갈을[...])을 뿌리거나, 코리앤더나 소금을 넣어 먹었다고 합니다.
  <우유>는 먹긴 했지만 어린이들이 주로 먹었으며 어른들은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약으로 처방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아침에 한잔정도만 마시는게 일반적이었으며 허브 같은 걸 섞기도 했다고 합니다.

18. 어이 노예, 머리카락좀 내놔 봐 
  당시 로마의 식사방식은 커다란 접시에 담긴 걸 각자 덜어서 먹는 방식이었습니다. 현대 레스토랑처럼 코스요리를 먹었다는 걸 제외하면 중세랑 비슷하지요. 개인마다 음식이 지급되는 러시아식 서빙은 19세기부터 생겨난 방식이니까요. 접시는 은이나 금, 청동 등으로 만들어져 값이 비쌌으며, 유리도 있긴 했지만 매우 귀했습니다. 커다란 접시는 연회를 주최한 자의 지위나 권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때에 따라서는 다른곳에서 빌려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물이 있는 음식은 조리한 냄비 채로 가져왔으며, 이 냄비들은 청동이나 도자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덜어먹는 접시는 저렴한 질그릇을 사용했으며 1~2번 사용한 후에 버렸습니다. 뭐 세제 같은게 없을 시절이다보니, 부자들로서는 기름기 있는 음식찌꺼기를 힘들게 제거하기보다는 그냥 싼 질그릇을 교체하는게 더 효율적으로 생각되었겠지요. 중세 유럽처럼 납작한 무발효빵을 개인 접시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포크같은게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로마인들도 맨손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그 외에는 국물용 숟가락을 사용하는 정도였지요. 그러나 미식을 추구하게 되면서 요리의 종류가 많아지자 특정 요리에 사용하기 위한 도구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식용달팽이를 껍질에서 빼내는 스푼, 국물요리를 섞기 위한 막대기 등이 있었죠. 고기요리의 접시에는 나이프와 꼬치가 딸려 나왔습니다.
  맨손으로 식사를 하는 문화다보니 방에는 향수가 들어간 대야가 놓여있었습니다. 만약 일일히 일어나서 손을 씻는게 불편한 경우에는 테이블보나 냅킨으로 손을 닦았죠. 냅킨은 따로 집주인이 준비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각자 개인이 가지고 다니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손수건처럼요. 식민지가 늘어나면서 노예가 많아지자 노예의 머리카락으로 손을 닦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위해 일부러 머리를 길게 기른 나이 어린 노예가 만찬테이블 옆에 배치되었다고 하네요. 현대시대였다면 닦으라 해도 남 머리카락은 찝찝해서 안닦을텐데 말이지요. 샴푸도 없던 시절이니 머리에서 냄새나잖아요?
  그리고 당시 식사할 때의 필수품으로는 파리채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따뜻한 지역이고 하다보니 파리가 엄청 꼬였겠지요. 위생상태가 더 안좋았을 때니까요. 귀족들이 사용하기 위해서 공작의 깃털로 호화롭게 만들어진 파리채도 있었다고 합니다.

19. 귀족의 식사와 서민의 식사
  당시 로마에서는 아침과 점심을 대충 먹는 대신 저녁은 든든하게 먹었습니다. 서민들은 케나(저녁식사)를 오후 4~5시부터 시작하여 해가 지기전까지 먹고 해가 지면 잠에 들었죠. 등불에 사용되는 기름이 비쌌거든요. 물론 돈많은 귀족들은 그런거 없었습니다. 밤이 되어도 케나를 계속했고, 케나가 끝나면 코밋사티오라 하여 파티를 또 열었죠. 당시 귀족들은 연회에 트리클리니움이라는 긴 의자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서민들은 그냥 마루나 의자에 앉아서 평범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빵을 사기도 힘들었던 빈민들은 스펠트 밀가루로 만든 죽인 <폴렌타>나 병아리콩, 완두콩 등을 끓인 수프를 먹었고, 아주 가끔 말린고기를 먹는 정도였습니다.
  1부 4챕터에서 나왔던 평민을 보호하는 귀족인 <파트로누스>는 서민들을 케나에 초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케나에 초대된 서민들은 모처럼의 기회이고 하다보니 엄청나게 먹어치우고 돌아갔고,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싸가기도 했다고 하네요.

20. 로마 저택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음식쓰레기 모자이크의 정체는?
  고대 로마의 저택에서 식사나 연회에 사용되는 방 바닥을 보면 모자이크가 만들어져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것도 예쁜 그림이 아니라 뼈나 조개껍질, 과일의 씨 등 음식쓰레기가 그려진 모자이크죠. 예쁜 장식으로 방바닥을 꾸며도 모자랄 판국에(더군다나 사람들을 초대해서 먹고마시는 장소인데!) 왜 그런 음식쓰레기들로 바닥을 꾸며놨을까요?
  그건 바로 로마인들의 금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자이크 장식을 <아스타로스> 라고 하는데, 옛날 로마에서는 죽은 가족들을 집의 마루 밑 지하에 묻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집의 바닥은 사령으로 변한 자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지요. 후에 매장관습이 변하면서 죽은자의 무덤을 마을 바깥에 만들게되었지만, 그러한 미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매장관습이 변한 후에도 아이들이나 노예가 죽을 경우엔 여전히 집 지하에 묻었거든요. 그렇다보니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면 매우 부정하게 되며, 그걸 손으로 만지면 악한 유령에게 저주를 받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음식은 애완동물이나 노예도 집어먹지 못하게 했죠. 식사를 할 때 손을 밀가루반죽으로 닦은 뒤 그걸 땅에 버려 애완동물이 먹게 했던 그리스와는 상반되는 부분인 셈이지요. 땅에 떨어진 음식찌꺼기는 빗자루로 쓸어서 난로에 태웠으며, 이러한 바닥청소도 유령의 원한을 살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죽은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음식찌꺼기 모자이크인 <아스타로스>인 셈입니다.
  참고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 다른 고대문명에서는 이른바 <먹으면 안되는 것>이 정해져 있었지만(돼지나 뱀 등), 로마에서는 그런게 없었고 <모든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신, 또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던 합리주의에 의한 영향일 지도 모르겠네요. 

21. 외식산업이 발달했던 로마
  당시에 귀족집안에서 요리는 노예가 맡아서 했습니다. 로마 귀부인들은 아예 요리를 하지 못했죠. 오히려 귀족 남성들은 가끔 취미로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서양에서도 남자 요리사가 더 많지요. 그에비해 가난한 서민들의 집은 수도시설도 가마도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요리를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외식을 했죠. 굳이 가난한 서민이 아니더라도 로마 사람들은 집에서 먹기보단 밖에서 사먹는 것을 선호하였고, 따라서 로마시대의 외식산업은 매우 큰 산업이었습니다.
  로마에서는 기본적으로 <바르>라고 불리는 경식당과 <포피나>라고 불리는 여관이 있었습니다. 포피나에서는 식사나 술 외에도 매춘이나 도박도 이루어졌죠. 말하자면 판타지세계의 주점이라는 느낌이랄까요? 귀족들을 위한 고급 음식점으로는 <케나티오>가 있는데, 정원과 연못이 있었으며 트리클리니움(누워서 먹을 수 있는 긴 의자)이 갖추어져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급 음식점에서는 음식의 양이 많을수록 품위가 떨어진다고 여겼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로마의 경식당 <바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서민들의 대표 식당이라 할 수 있는 <바르>에는 먼저 돌이나 시멘트로 만든 L자 모양의 카운터가 있었습니다. 이 카운터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파여있고 거기에 도자기로 만든 항아리가 묻혀있었는데, 돌이나 시멘트가 단열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안에 넣어둔 음식들이 보온/보냉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의 장소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놓았고, 그게 없었다면 서서 먹었죠. <바르>에서 팔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콩이 들어간 밀가루죽인 <프르스>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판매가 금지되었던 시기도 있었지요.
  프르스 외에 인기가 있었던 것은 삶은 돼지고기 였습니다. 그 외에 돼지고기 꼬치구이, 장어, 올리브, 무화과, 소시지, 생선이나 고기경단, 야채마리네, 오믈렛 등을 팔았습니다. 와인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22. 힘세고 강한 아침, 나는 로마 병사!
  로마, 라고 한다면 로마 제국의 번영을 가져온 강력한 로마 군대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로마 하면 로마인들의 모습보다 그 특유의 로마 군인 복장이 떠오를 정도로, 로마 보병은 로마를 대표하는 요소지요. 특히 당시 서양에서는 기병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기병이 제대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부터) 강력한 보병의 존재감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군대에 있어서 식사는 사기를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무리 용맹한 군대라고 해도 밥을 안준다면 싸우긴 커녕 반란이나 일으키지않으면 다행이겠지요. 그렇다면 세계를 제패했던 강력한 로마군대는 어떤식으로 식사를 했을까요?
  일단 로마 군인에게는 하루에 800g에서 1kg 정도의 빵이 배급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빵은 보존성,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물에 적셔서 먹어야하는 단단한 건빵이나 납작한 무발효빵이었습니다. 밀죽을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로마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낭비를 줄이기위해 힘썼다고 합니다. 한 예로 율리아누스 황제는 전장에서 병사들과 같은 식사를 했다고 하지요. 
  병사들에게는 구이용 꼬치와 냄비가 지급되었으며, 아침에는 조리가 안된 식재료를 서서 먹고 점심때는 고기를 꼬치에 꿰어 굽거나 냄비에 끓여서 먹도록 했다고 합니다. 정해진 조리법 외에 다른 방법으로 먹는건 금지되었다고 하네요. 아마 이것저것 요리한다고 잔뜩 챙기려들거나 지나친 시간을 소비하는것을 막으려고 했던 듯 하지만, 맨날 단순한 방법으로 요리한 고기만 먹어야했던 병사들은 튀기거나 소스를 뿌려 구운 고기가 먹고싶었을 테지요. 그리고 전장에서는 빵집에서 구운 빵, 불을 사용한 음식의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체벌을 받는 병사의 식사는 대맥(보리)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엔(아마 로마 초기겠지요) 그리스인들이 보리빵이나 보리죽을 주식으로 먹었었는데, 로마인들은 버석버석한 보리빵을 먹는 그리스인들을 업신여겼다고 합니다.
  로마인들 덕분에 유럽 곳곳에 다양한 식재료가 퍼지기도 했습니다. 예를들어 카이사르 황제는 영국에 주둔하는 로마 병사들을 위해 포도나 호두, 무화과, 올리브 등을 옮겨심게 했으며, 당근, 렌즈콩, 샐러리, 배, 복숭아, 코리앤더 등도 영국으로 가져가 심게 했지요. 이러한 작물들 중 기후에 맞는 많은 농작물들이 현지에 정착하여 자라게 됩니다. 만약 로마가 영국을 점령하지 않았다면 영국의 식재료는 지금보다도 더 별게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상으로 2부에 달하는 기나긴 내용의 그리스&로마 편은 끝입니다.. 다음 차례는 아마 고대 일본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스&로마 쓰는데 에너지를 너무 써서 며칠간은 좀 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럼 다음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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