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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스케치 그림 한 장 속 여인
1920년 8월, 광복군총영의 국내 의열투쟁 당시 유일한 여성대원으로 참여했던
안경신 (1888~?)
다른 대원들과 함께 평양 일대 일제 관공서 폭탄 투척 거사 계획에 가담
무사히 중국으로 귀환한 동지들과 달리 임산부였던 그녀는 국내에 남아 숨어있다 이듬해 일제에 체포.
그녀의 품에는 태어난 지 열흘이 막 지난 아이가 안겨 있었다.
거사 당시 그녀는 임산부의 몸이었던 것이다.
1심에서 사형 선고
"조선 사람이 조선독립운동을 하여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이 무슨 죄냐"
재판장을 꾸짖으며 당차게 항소
2심에서 징역 10년형으로 감형.
1927년 12월 가출옥.
그러나 어머니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는 두 눈이 멀었고
함께 거사에 참여했던 동지의 사망 소식에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이후 역사에서 그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녀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심지어 그녀의 사진 한 장조차 남아있지 않은 채
그렇게 역사의 그림자로 사라졌다.
그리고...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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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
그녀의 유일한 사진이 94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출옥 직후 <조선일보>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
(94년 만에 발견된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사진)
하마터면 영원히 찾지 못한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말았을 얼굴.
독립운동가 안경신, 이제 온전한 얼굴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혹시나 오해하실 까봐... 1927년 당시의 조선일보는 방응모씨에게 넘어가기 전의,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남아있던 조선일보였습니다.
(1931년 안재홍 사장 구속, 경영난에 시달리다 1933년에 방씨소유로 넘어감)
출처 | http://huv.kr/pds1094899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47&aid=0002326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