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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즐거움은 줄어들고 우울해져간다.
게시물ID : humordata_19206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식당노동자
추천 : 17
조회수 : 1765회
댓글수 : 48개
등록시간 : 2021/09/10 10:35:41

 

 

 

남들이 착실하게 공부하고 돈을 모아서

뭐 결혼 육아 좋은 직장 취직. 이런것들 할 때.

군대에 말뚝을 박았으면 중사 끝물 빠르면 상사.

뭐 아니면 대위끝물 소령쯤 되었을 나이.

평범한 회사에 들어갔으면 못해도 차장쯤?

늦으면 과장쯤 되려나. 하여튼 그 나이.

 

몇 번인가 기회는 있었는데 결혼은 못했다.

몇 번인가 기회는 있었는데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까지도 너무 오래 걸렸다.

제대로 됐다기도... 제대로 된건가?

 


열두세시간을 식당에서 보내다보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고기를 썰고..

식당 손님들에게 웃으며 서빙을 하거나 인사를 하고..

가뭄에 콩나듯 있는 진상에게서 멘탈이 터지고

지나가다 괜히 한마디 던지는 점장 사장의 말에

담배는 늘어가고 "아니 그럴거면 왜 나를 써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만,

 

빚이 너무 많다. 버는돈도 쪼끔 되는데 그 쪼끔 되는 돈

빚에 다 때려박고 대충 한달에 이십얼마정도로 근근히

생활한다.

 

그래도 너무 걱정마라. 할거 다 하고 다닌다!

쌀떨어지면 사장이 알아서 쌀도 챙겨준다!

온라인게임도 잘 한다! 별 일 없다! 별 일은 없는데.

 

 

부모님하고 인연을 끊은지 좀 됐다.

술을 끊은지도 좀 됐다. 내 지난 글을 돌이켜보면 매번

술마시는 에피소드밖에 없었다. 그래서 끊었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중 윤달껴서 삼백육십육일을 술을 마셨다.

그래서 끊었다. 술 매일 마셔도 한 칠십줄까지는 살겠지만.

 

 

어느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취해있지 않은 나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좀 더 온전한 정신으로 파란 하늘을 보고, 그러고 싶었다.

아예 안마시지는 않는다만.(어제도 마셨다)

최대한 깨어있는 날을 많이 만들려고 한다.

 

찬란한 이십대 그 빛나는 나이대에는 관심도 없던 옷과

신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로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이

"너 이렇게 잘 입고 다닐 수 있으면서 왜 그동안은 안했느냐"

며 타박을 줬다. 기분이 살짝 좋았다. 그날은 많이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치마는 꼭 했다. 양념국물 막걸리 방울같은게

옷에 튀어 있는게 얼마나 추한 것인지 깨달은지 얼마 안됐다.

 

그런데 후회가 든단 말이야.

내 생에 가장 빚나는 나이에 할 수 있던 일을 이제 꺼져가는

이 불꽃에 태워야 한다는게,

활활 타오를 수 있었던 그 때는 거들떠도 안보던 그 불빛을

왜 이제서야 마주했는지. 후회가 막심하다.

 

옷이나 머리뿐만이 아니다.

공부나 내 미래에 대한 고민 돈에 대한 성찰 그런 것들 좀만 더

빨랐으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텐데.

 

그랬으면 부모님하고도 인연을 끊지 않을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아쉬운 인연들이, 지금 내 곁에 계속 있었을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지만 정말로 나는 이악물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개만 저어댔다. 그 과거에게 현재의 내가

 

 

"너무 미안해."

 

 

엎어진 물 주워담을 수 있느냐는 상투적인 타박을 보내온다.

과거의 내가. 그리 말한다. 밤이 되면 꽤 넓은 내 방 여기저기

수도꼭지 물방울 떨어지는, 이시국에도 괴성지르며 술취해

돌아다니는 사람들 소리. 나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로

틀어놓은 유튜브 책읽어주는 소리. 그런것들이 내가 세상에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지만, 동시에 점점 더 고독해짐

역시 알려주고 있다.

 

 

어느 쉬는날, 나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방에 앉아 쓸데없는

플래시게임을 하고 집 여기저기 정리를 하고, 괜히 모든 불을 끄고

한두시간 누워있기도 하고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먹으며

또, 과거에 대충 사로잡혀 끙끙댔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왔다.

걸어서 이분거리에 있는 내가 일하는 식당에 갔다.

쉬는날도 출근했냐는 농담을 들으며 나는 앉아서

평소 썰기만 했지 먹고싶었던 고기와 술을 먹었다.

턱을 괸 채 삐딱하게 앉아서 뉴스도 보고 그러다 돌아왔다.

 

'한잔 더 할까?'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었더니 맥주가 반기길래

냉큼 집어 쓰레기통에 갖다버렸다.

 

"먹고싶어. 그런데 오늘은 아니야."

 

아쉬운 마음 뒤로하고 잠들었다.

 

 

 

뭔가 바뀌고는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너무 느리다.

 

"대출이자는 조상님이 내주시냐. 야 그거 앞에 접시좀 줘봐.

어제 애 병원 데리고 갔다오는데 마트가서 휴지 한롤 사오라고

해서 사왔더만 할인하는거 안사왔다고 되게 뭐라고 하더라.

그래서 또 싸웠다. 애앞에서. 미안하지. 미안한데 느그 형수도

그러면 안되는거야. 나도 할 일 많은데 마트 갔다와달라고 해서

갔다와줬으면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와야지. 에이 짜증난다.

야 잔 비었어. 한잔 따라봐."

 

"넌 거기서 끝나지. 야 나는 부모님 모시고 산다. 이나이에.

애들이 안괴롭히면 부모님이 뭐라하신다. 부모님이 조용하면

애엄마가 뭐라하고 아주 죽겠다."

 

 

그런 생활의 온도가 절실히 느껴지는 대화를 번갈아가며 듣고있는데

내가 슬펐던 건, 그 대화에 낄 기회를 잃어버린 과거 때문이였다.

나는 착실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저 대화에 낄 가치조차 잃어버린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부럽다. 저새낀 결혼 안했으니까. 야야. 혹시 기회 생기더라도

하지마라. 너 일 힘들잖아. 직업을 왜 두개를 가지려고 해. 투잡뛰지마.

그냥 혼자살고 하고싶은거 다 하고 살아. 우리 노동자 하고싶은거 다 해!"

 

 

"으하하! 그럴까! 내가 승리자다! 내가 승리자라고!"

 

 

슬픈데 뭐, 그 앞에서 오만상 찌푸리고 있어봐야 뭐해. 그냥 그렇게

농담처럼 흘리고는 술취해 오른 버스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뭐.

누굴 탓하겠어. 결국 내가 만든거고 내가 죄인인거다.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그냥 사실이 그렇다.

그럼 그렇게 알고 살면 되는데, 왜 굳이 이렇게 심경토로를 하느냐면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는 나같은 인간도 위로받을 한구석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속 아껴둔

양지바른 곳에 심은 내 꽃밭에 싹이라도 필까 싶어서.

 

어느날 드리운 그 먹구름을 이렇게 한번 걷어보려고 한다.

 

 

 

 

 

 

 

 

근데 내가 뭔 말을 쓴거야.

출근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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