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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외부의 압력으로 과거사 청산에 나섰나
게시물ID : history_192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lvarez
추천 : 3
조회수 : 141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1/01 21:04:29
http://pero.kr/45
독일은 2차대전후에 외부압력에 의해 사법적으로 나치청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소련점령지역을 제외하고도, 미/영/프 군정지역에서 6천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7백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죠. 45년말까지 공직과 기업에서 축출된 나치관련 인사가 14만명이었습니다. 모두 군정당국의 책임하에 진행된 일이죠. 만일 외부압력(이른바 유대인 압력설)에 의해 청산이 진행된거라면, 이때 청산이 보다 더 가혹했어야 하고, 이 청산작업 이후에 독일에서 나치라면 이를 가는 상황이 되어야 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승자의 재판으로 독일인 사이에 인식되면서, 심지어 축출된 사람들이 희생양으로 불릴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거죠.
물론 공적으로 나치 청산기조는 여전했지만, 나치문제는 덮고가자는 것이 68혁명이전의 사회분위기 였습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645983.html
결정적으로 나치청산 기조가 강화된건 68혁명 덕분입니다. 좌파적기조가 독일을 휩쓸었고, 기성세대가 쉬쉬하며 덮고 넘어간 나치청산문제에 68세대들은 이를 공론화하고, 독일인이 "희생양"이자 "피해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 후로 독일의 역대 수상/대통령들/주요 지도자들이 나치와 관련되서 공식적인 사과를 하게됩니다. 

http://www.ahnsamo.kr/lifestory/1653877
‘테러의 지정학’ 전시관 총책임자 토머스 루츠 박사는 전후 경제성장 과정의 차이점을 지적했다. 그는 “독일은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 과정에서 유럽 지역 내에서의 교역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끊임없는 사죄와 보상 노력이 필요했지만, 일본은 피해를 끼친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보다는 서방 강대국인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훨씬 중요시함으로써 주변국에 대한 배려가 소홀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하고, 이러한 시각이 독일이 현실적 필요에 의해 나치청산에 나섰다는 주장의 밑바탕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현실적 필요만으로 매해마다 수상/대통령들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나치의 과오에 대해 사과할 필요까지는 없죠. 지금까지 지불한 배상액만 해도 80조원이 넘는데, 그럴 필요도 없구요. 

http://knusun.kangnung.ac.kr/~inmun/fall-yuk.htm
68혁명으로 과거에 대해 비판적인 반성과 역사학의 새로운 모색을 통해 70년대에는 나치의 과거에 대한 성찰이 역사학과 역사교육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제 3제국 시대의 유태인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교과이수지침과 교과서 서술은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었으며, 매우 상세하고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서술되었고, 관련자료 역시 매우 생생하게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는 교원노조와 독일유태인 중앙위원회의 공동권고 그리고 독일-이스라엘 교과서 협의회의 권고안에 따라 홀로코스트의 서술은 더욱 개선되었다. 90년대 이후에는 통일 독일의 과거극복의 과제에 따라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개편되었다. 

독일 전역에서 사용되는 여러 역사 교과서들이 이제 나치의 지배와 인종학살을 거의 50면 이상 할애하며 그 전말과 결과를 서술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옹호나 책임회피적 서술을 보이지 않고 있다

외부압력과 현실적필요만으로 나치청산과 사과 및 배상에 나섰다면, 지금도 여전한 역사교과서 나치청산관련 이수지침 같은 건 내리지 않습니다. 그냥 일본처럼 어물쩡 넘어갈수도 있는 문제에요.
  
독일이 선량하고 양심적인 국가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국가는 원래 양심과 정의만 축으로 돌아갈수 있는 조직이나 단체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사람이 그것만 가지고 살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쳤던, 45년까지 이루어졌던 사법적 나치청산 이후에 거의 20년 가까이 덮고 넘어가고자 했던 나치문제가 68혁명이후 수면으로 부상해서, 더욱더 가혹하고 확실하게, 그리고 영구적인 나치청산/사과/배상의 기조가 굳어졌습니다.

그건 그 누군가의 압력이나 현실적 필요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양심과 정의에 따라 판단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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