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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폼페이에 관한 두서없는 이야기
게시물ID : history_191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9
조회수 : 115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2/27 14:25:41

시간 나는 김에 오해를 살만한 답글도 정리하고 아랫 분의 글에  숟가락을 얹어 첨언을 해볼까 두서없이 글을 씁니다, 물론 저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 계시니 이런 저런 세세한 부분에서 좀 더 좋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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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적으로 폼페이는 로마보다 그 역사가 오래됩니다, 물론 로마의 전승 설화를 사실이라 가정했을때는 비슷한 시기에 건국되기는 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전승 설화를 100% 신뢰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무튼 추정해보자면 폼페이의 역사는 사르누스 강 하구에 오스크 족이 세운 작은 촌락 혹은 공동체로 부터 시작됩니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와 나폴리 만를 끼고있어 풍요로웠던 이 지역은 그 풍요로움과 교통의 요지라는 가치 때문에 여러 이민족들의 아귀다툼에 끼이게 되는데 우선적으로 처음 패권을 쥔 것은 쿠마족이었습니다만 얼마 못가 기원전 8세기 무렵 에트루리아 인이 이탈리아 남부로 진출를 하게 되면서 그 들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 본격적인 농업과 중개 무역이 성행하는 도시 국가로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번성하던 에트루리아 인들의 폼페이도 기원전 5세기 경 삼니움 족들이 차지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아는 폼페이라는 이름은 이 들로 부터 시작됩니다, 그러한 삼니움 족은 다시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중부 이탈리아의 패권을 노리며 남하하고 있던 로마에게 정복당하게 되었지요, 

다만 아직까지 폼페이는 그리스의 도시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러던 폼페이는 동맹시 전쟁 혹은 이탈리아 전쟁이라 불리는 내전을 기점으로 로마의 질서에 편입되게 되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짧은 번영을 누리고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사라지게 됩니다.

간략하게 나마 정리해보자면 폼페이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그러하기에 건축 양식이 혼재된 양상을 보이고 있고 시가지가 양분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삼니움 족이 패권을 잡았던 시기에 대다수의 저택이 세워져 있어 로마는 주택 공급에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공공 시설을 제외한다면 다른 문화를 압도할 만큼 영향을 끼치지 못한것도 이유일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러한 공공 시설에 마저 여타 다른 문화가 혼재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말이지요.

아무튼 한가지 재밌는 사실을 적어보자면 현재 발굴된 유적들을 놓고 볼때 폼페이라는 도시 자체는 상당히 기형적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휴양 도시로서 뛰어난 입지 조건탓에 정확한 인구 추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추산해볼때 최대 2만여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을거라 판단되는 이 작은 도시에서 수백여채의 주택과 상점은 비슷한 숫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점들 중에는 한 사람이 공장화 된 체계를 갖춘 대규모 회사와 같은 형태로 운용하는 상점도 상당수가 존재하고 있다거나 염전 관리? 투자? 사무소가 따로 도시내에 존재하는 등 산업 구조를 갖춘 것은 확실합니다만 도시가 자체적으로 소비할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다고 봐야 할터 이는 서비스 업에 좀 더 치중된 구조라 볼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유곽 대놓고 말씀드리자면 집창촌이 약 20여채가 넘게 존재하는데 관련 종사자만 추정해볼때 3백여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이러한 추정에 힘을 얻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로마에서 매춘업은 개인이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집창촌에서 일하는 여성 그 이상으로 음 생각해볼수 있겠으며 집창촌만 놓고 보더라도 인구의 2~3%가 종사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아무튼 무역과 휴양 도시로서 호황을 누리고 있었으니 당연하겠습니다만 규모를 생각해본다면 외지인을 상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집약력을 보이고 있다 생각해볼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이 이야기는 넘어가고 도시 그 것도 주택이라는 측면에 집중을 해보자면 로마 제국에서 대중적인 거주 양식이라 한다면 인술라(insula섬)라고 하는 아파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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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골목과 길로 둘러 쌓여 있어 그렇게 불리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 아파트는 사람이 살기에 그다지 거주 환경이 양호한 편은 아닙니다, 1층은 상가로 이루어져 있고 2층부터 방이 있는데 건축 기술의 한계로 올라갈수록 천장이 낮아지고 좁아지며 햇볕이 잘 들지 않는데다 공동 화장실은 1층에 있습니다, 괜찮은 시설이라면 공동 조리 시설이 2층에 있었습니다만 대개는 알아서 처리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저층의 인술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수십 명이 몰려 사는 통에 거주 환경은 매우 열악할수 밖에 없고 건축 기술의 한계 상층부는 목재 구조로 진행되는 탓에 건물의 붕괴 및 화재 위험도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7층짜리 인술라도 로마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비교적 흔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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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난한 사람들이 살수 있는 집은 여기만은 아닙니다, 도무스 라고 하는 부유층의 주택에 운이 좋다면 세들어 살수도 있었지요, 어떻게 가능하냐면 저 타베르나 라고 하는 방이 그 해답입니다, 보통 실내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 방은 대개 복층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러한 방을 가게로 세를 내줄때 이 다락방에 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행운은 집주인인 파트로누스들의 클리엔스들이 차지하기에 더 쉽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튼 위의 인술라에서 고시원과 같은 비좁은 방에서 부딪기며 살동안 있는집 사람들은 이러한 도무스에서 여유로운 삶을 구가할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공공시설과 별개로 지하에 물탱크까지 갖추고 있고 온갖 호화로운 벽화와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그 격차를 더욱 입증하고 있습니다,

상기의 구조도는 평균적인 구조도일뿐 실제 집 면적이나 구조는 초기형 중정 주택부터 크게는 도시의 1개 구역을 통채로 차지할 정도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특히나 있는 집도 배경이 누구냐 얼마만큼 잘나가느냐에 따라 더욱 편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나름 부동산 경쟁이 존재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가능하게 만들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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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독 주택이 로마 시대에 건축된 도무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이러한 중정방식의 주택이 꼭 로마 시대에만 등장하거나 국한된 것은 아닌데 앞서 시가지의 분리에 해당될 정도의 다양함을 말씀드린바와 같이 여러 양식이 혼재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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