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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에 밥 말아먹기에 대한 고찰
게시물ID : humordata_8593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로니에
추천 : 1
조회수 : 611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8/25 10:47:01



 당신은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 사람과 만나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누군가는 이 질문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는 이 질문을 두고 '우유에 밥을 말아 먹는게 어쨌다는거지?'하고 의문을 표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질문에 '정말 우유에 밥을 말아 먹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야?'하고 놀라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확실한 것은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당신이 상관하던 상관하지 않던. 여기서 우유란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우유이고, 여기서 밥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밥이다. 때문에 이는 우리에게 몇 가지 의미있는 철학적이고 사유적인 질문을 던져준다. ① 물에 밥을 말아먹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 것은 왜 문제가 되는가? ②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다는 표현이 맞는가? 아니면 밥에 우유를 말아 먹는다는 표현이 맞는가? ③ 누군지 몰라도 처음으로 우유에 밥을 말아먹은 사람은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④ 마지막으로 이상의 질문들이 대단한 의미라도 지닌 것인가?

  현금(現今)의 학계에는 두 개의 파벌이 있다. 하나는 우유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 영양학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영양만점학파), 다른 하나는 우유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 구역질 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오토쏠리노학파). 이 바닥에서 먹고 사는 양반들은 모두 두 거대 학파 가운데 하나를 택함으로써 그 입장을 분명하게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바닥에서 살아 남을 수가 없었는데 학계를 좌지우지하는 이 두 세력이 무소속 비당파(非黨派)를 잔인할 정도로 축출해 내었기 때문이다. 

  영양만점학파의 수장은 올해 예순 여섯을 맞은 광선유(廣宣流) 박사다. 우유에 밥을 말아먹은게 벌써 육십년째로 덕분에 자신이 육십대에 접어 들어서도 카바레에 출입할 수 있는 정정함의 원동력이라 믿는다. 동갑인 오토쏠리노학파의 수장 지대공(地對空) 박사와는 앙숙이다. 지대공 박사는 광선유 박사의 주장을 일축한다. "그건, 그 친구의 개인적 경험이 아닌가? 예순 여섯을 먹어서도 나이값 못하고 다닐 수 있는 원천이 우유에 있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는가? 한 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한술 더 떠 지대공 박사는 광선유 박사의 의심스러운 관계 연관성을 지적한다. "광박사는 몇 개 우유회사의 고문을 맡고 있는 등 우유산업과 긴밀한 사이가 아닌가. 음험한 의도로 우유업계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가 있는가?"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광선유 박사는 코웃음을 친다. "과연 학문은 학문 그 자체로 존속할 수 있습니까? 자본이 뒤를 받쳐줘야 학문이고 나발이고 제 구실을 할 수 있는게 아닙니까? 이 바닥에서 우유업계의 지원사격 없이 뭘 할 수 있습니까? 정녕 그게 문제라면 털어 먼지 안 나는 놈팽이가 없을 겁니다." 둘을 붙여놓으면 정말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울 것이라는게 학계의 정설이다. 

*

  영양만점학파의 광선유 박사 밑으로는 그를 따르는 젊은 학자들이 줄줄이 포진해있다. 공문도(孔紋導),일기백(日己百), 우유부(優柔不), 어도단(語道斷), 풍노도(風怒濤)……. 그들을 양팔간격으로 세워 놓으면 그 행렬이 대화에서 수서까지 이어질 정도다. 오토쏠리노학파의 지대공 박사의 아래로도 유망한 인재들이 줄줄이다. 해일속(海一粟), 치하문(恥下問), 가담항(街談巷), 견강부(牽强附), 강투석(江投石)……. 그들 역시 양팔간격으로 세워 놓으면 온수에서 장암까지 이어진다. 두 학파 간의 사이가 좋지 못해 그들은 되도록 서로를 피해다니고 있으며 집도 각각 3호선을 중심으로 7호선을 중심으로 이사했다. 즉 영양만점학파는 3호선만 타고 다니고 오토쏠리노학파는 7호선만 타고  다니는 식이다. 그걸 두고도 말이 많았다. "니넨 우유에 밥을 말아먹어서 건강한게 아니라 3호선 부자동네에 살아서 건강한거야." "7호선에선 퀘퀘한 냄새가 나더라. 니네 오늘도 도봉산 등산하고 왔냐?" 그들간의 거리감은 종로 3가의 1호선 승강장과 5호선 승강장 사이만큼 멀고도 길다. 이들은 일년에 딱 한번 만나서 우유학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회포를 푸는데 이 때의 장소가 3호선 - 7호선간 유일한 환승역인 고속터미널역이다. 

  물론 그렇다고 뭔가 심각하고 심오한 학문적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아니다. 내년 학회를 어디에서 열지를 의논한다던가, 어느 회사의 지원금을 뜯어낼 것인지 즐거운 고민을 한다던가, 내년에 생길 교수자리의 포스트 할당을 나눠 먹는다던가, 우유학 외의 다른 학계와의 경쟁에 힘을 모아 대응하기 위한 방책을 논의한다거나, 겉에서 보기엔 하루가 멀더하고 서로를 공격하고 서로의 이론에 흠집을 내는, 결코 양립(兩立)하지 못할 것만 같은 이 꼿꼿한 양반들이 이렇게 장막(帳幕)을 드리우고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결속한다는 사실은 바깥 세상의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단계가 끝내면 술자리가 이어진다. 고속터미널역에서 십분 거리에 있는 주점 '정복자 징기스칸'이 바로 그 자리다. 여기서는 또 미묘한 경쟁심리가 발동하여 학파간의 술 대결이 없지 않다. 영양만점학파는 광선유 박사를 필두로 테이블의 오른편에 일렬로 않고 오토쏠리노학파는 지대공 박사를 수장으로 테이블의 왼편에 앉는다. 이 오래된 오른자리 왼자리 전통에 대해 영양만점학파의 행동대장 일기백 박사는 "지롱드와 자코뱅의 관계 쯤으로 보면 된다." 라는 헛소리를 지껄였다가 그게 무슨 멍멍이 소리냐는 오토쏠리노학파의 집중 포화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특히 이 때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는 오토쏠리노학파의 해일속 박사는 "오른자리, 왼자리의 구분은 실상 진자리, 마른자리로 보아야 한다" 며 강하게 그의 개념없음을 성토했다. 


  영양만점학파와 오토쏠리노학파의 치열한 술다툼은 소주에서 시작해서 소주로 끝나는데 이들은 이를 가리켜 '터미널대전'이라고 부른다. 고속터미널역에서 벌어지는 큰 전쟁이라는 뜻이다. '정복자 징기스칸'에 이르기까지 각 학파의 용사들은 약국과 편의점에 들린다. 그들 중 더러는 컨디션, 아스파, 여명팔공팔, 모닝케어, 산심아침, 댕큐골드, 비즈니스, 천하무적 신대리 등을 마구잡이로 구입 복용함으로써 숙취해소음료 시장이 칠백억원대인 이유에 단단히 한 몫을 한다. 글루타치온과 글루메이트, 키토산과 알로에 등이 다량 함유된 그것들을 일단 많이 먹어두면 무조건 효과가 있으리라는 - 전혀 저명한 학자들 답지 않은 단순 무식한 생각이었다. 음료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더러는 용감무쌍하게도 숙취해소제를 직접 주문하여 복용한다. 구소련의 케이쥐비(K.G.B.)에도 인정했다는 알유이십일 같은 것을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공동구매하여 나눠 마시는 것도 이들의 오랜 풍속이다. 수수하게 민간요법을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바나나, 밀크셰이크, 양배추, 달걀, 심지어 배낭에 콩나물과 북어, 그리고 코펠을 챙겨오는 사람들마저도 있다. 다음 날 아침 속풀이를 위한 준비다. 속은 일단 든든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서 라면에 만두를 잔뜩 먹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만반의 준비 끝에 그들은 그 이름도 유명한 <정복자 징기스칸>에서 명예를 걸고 맞붙는 것이다. 


*

(전략) 우유는 그 색부터가 먹음직스러움과 거리가 멀다. 순백(純白)색의 깨끗함과 그 안에 태동하고 있을 생명력의 기운을 못 믿어서는 아니다. 다만 그 냄새, 하얀색은 금방 변해버릴 수 있는 것이고 생명력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임을 암시하는 그 퀘퀘한 냄새가 싫을 뿐이다. 우유 비린내도 비린내는 비린내였다. 젖소는 우유를 만들고 송아지는 그 우유를 먹는다. 언젠가의 그것은 소의 뼈와 살과 피였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은 또다시 어린 송아지의 뼈와 살과 피가 되도록 예정될터였다. 돌고 도는 그 억센 생명력의 기운이 우유의 역한 비린내에는 끈적하게 녹아있고 사람은 젖소와 송아지의 사이에 무단으로 끼어들어 그 생명력을 훔쳐 마신다. 국가는 우유회사와 손을 잡고 그걸 권장한다. 우유는 유당과 유지방과 유단백질로 구성된다. 그리고 칼슘과 인과 나트륨과 철분과 구리, 그리고 비타민과 효소가 들어있다. 우유를 마시면 뼈와 치아가 튼튼해지고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우유는 좋은 음식이다. 송아지는 그것만 먹고도 훌쩍 자라 소가 된다. 우유는 인간의 몸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밥과 빵이 있다. 경양식집 웨이트리스가 "밥으로 하시겠어요? 빵으로 하시겠어요?" 라고만 묻는 것은 인간과 소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밥을 먹어도 되고 빵을 먹어도 되는 인간이 우유까지 탐낼 필요는 없다. 정 마시고 싶다면 가끔 우유를 훔쳐 먹어도 상관 않겠다. 하지만 우유에 밥까지 말아먹지는 말아라. 그건 영양학적으로 별로 타당하지도 않은 일로 내 것도 먹고 송아지 것도 훔쳐 먹겠다는 도둑놈 심보의 발로다. (후략) 광선유*, 공문도, 일기백, "우유에 밥 말아 먹는 야만인들을 통해 본 양심과 사상의 문제", 우유과학연구, 제 25권 6호, 77페이지. 


*

(전략) 우유가 몸에 좋음을 이 자리에서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각급 학교들마저 그렇게 몸에 좋은 우유를 강제로 먹이는 것이다. 우유급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 반 육십명에게 모두 우유를 먹여 그들의 뼈와 치아를 단단하게 만들어 이루려던 것은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 건강한 사회다. 우유가 좋으니까 우유급식을 거부하는 애들이 벌까지 서는 것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유는 2교시가 끝나는 10시 30분쯤 배달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때 담임 선생의 책무는 아이들이 정말로 우유를 마시는지, 혹여 먹기 싫다고 가방에 쓱하고 집어넣거나 책상 속에 숨겨두었다가 양변기에 쏟아버리는 녀석이 없는지 빈틈없이 검사하는 것이다. 요즘이야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이 줄어 그래도 관리할만 하지만 그 옛날에는 열명도 아니고 스무명도 아니고 육십명, 육십개의 우유가 육십개의 주둥이로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하기가 어디 그리 쉬울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단숨에 원 샷 이후 빈 우유팩을 하늘 높이 들어 머리 위에다가 탈탈 터는 의식이다. 우유가 남아있으면 머리에서 우유 비린내가 날 터, 우유를 남긴 자에겐 정말이지 가혹스런 형벌이다. 일분단 첫째줄 왼쪽에서부터 사분단 일곱째줄 오른쪽까지 한명씩 차례대로 마시라고 주문을 하는거다. 소위 '파도타기'다. (후략) 지대공*, 해일속, 치하문, 가담항, "우유 급식의 역사 : 건강한 사회와 우유의 양의 상관관계에 관한 고찰", 우유과학연구, 제 26권 9호, 182페이지. 


*

  <정복자 징기스칸>에서 만난 영양만점학파와 오토쏠리노학파는 피차 목숨을 내어놓고 맞붙는다. 첫 순배는 소주잔으로, 두 번째는 양주잔으로, 세 번째는 맥주잔으로, 네 번째는 대접으로, 다섯 번째는 냉면사발로 술을 들이킨다. 그러고도 결판이 안 나면 맥주 삼천씨씨 피쳐 주전자를 가져다 놓고 소주를 들이 붓는다. 몇 병이나 들어가는지는 해본 사람만이 아는데 이 엄청난 걸 돌아가면서 원샷한다. 마치 여기서 이기는 쪽이 학문적 주장에 있어서도 정설을 말하고 있다는 듯 결연한 자세다. 나이도 잡술 만큼 잡순 분들이 어린 애들처럼 절제없이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통은 꽤 잘 버티는데 그건 순전히 그들이 이린 식의 폭음에 습관화되어 무척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판은 내어야겠지. 취기가 목젖까지 올라와 여차하면 구토라도 일으킬 판에 영양만점학파는 비장의 무기를 선보인다. 바로 그들의 주장대로 우유에 밥을 말아 먹는거다. 그걸 도저히 못 견뎌하는 우유학파 학자들이 모여 이룬 것이 바로 오토쏠리노학파이므로 그걸 보고 멀쩡할리가 없다. 바로 우웩, 오바이트를 일으킨다. 문제는 우유에 밥을 말아 먹을만큼 비위가 좋은 영양만점학파도 노오란 위액과 섞여 흉측한 냄새를 내는 덜 소화된 음식물 범벅의 목도를 견뎌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우웩, 같이 토한다. 여기엔 음식물에다가 방금 마시 우유까지 섞여있어 훨씬 더 역한 냄새가 난다. 그럼 오토쏠리노학파에서 다시 울렁거리는 속을 주체하지 못한다. 우웩. 영양만점학파도 점잔빼기는 진작에 글렀다. 또 우웩. 마치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과도 같다. <정복자 징기스칸>의 주인 김진기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예 다음 날은 저희 장사 못혀유. 냄시가 안 빠져서 하루 죙일 문을 활짝 열어 제끼고 있는다니께유. 아따, 그 냥반들 정말 징하게들 드시유. 그렇게 자시고 탈이나 안 날려나 몰러. (그럼에도 왜 매년 회식 자리를 제공하느냐는 물음에) 그건 그렇쥬. 근데 그 분들 모시믄 평소 저희 매상보다 훨씬 더 벌어유. 야. 지가 진짜 솔직허게 말씀드리자믄 그래유. 쇠주를 궤짝으로 갖다 놓고 마시는 냥반들이니……." 


*

  과연 영양만점학파가 맞는가 오토쏠리노학파가 (이상 가나다순) 맞는가. 우리는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 모습이란게 그리 유쾌하게 보이지 않음에 동의하면서도 그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 과연 여기에 영양학적 의미가 숨어있는가? 일설에 따르면 우유는 단백질이고 쌀밥은 탄수화물이니 그게 또 균형이라는 말이 있던데 잘은 모르겠다. 어떤 이는 우유에 밥을 말아 먹는게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언젠가 그 고소함이 궁금하여 따라 먹어 보았던 적도 있지만 속의 울렁거림을 참지 못하여 그만 뱉어 버리고 말았다. 우유는 그냥 우유다. 밥을 말아도 우유는 그냥 우유다. 우유의 빛깔, 우유의 생명력, 소와 송아지, 그 모든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유에 밥을 말아 먹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라고 냅두자. 그게 역겹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쪽을 보지 말라고 진지하게 충고하고 말자. 너도 맞고 나도 맞다. 여기에 과연 정답이 있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왜 지난 삼십년간 끝없이 학문적 논쟁을 해왔던 것인가? 왜 나와 다른 남에게 너그러워질 수가 없는 것인가? 

("바보야, 문제는 우유가 아니야", 동동일보, 2007년 12월 1일자 사설 중)

출처: http://blog.naver.com/stylepua/5011924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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