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넌 다리를 약간 절고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지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픈 다리인데도 온종일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 털털한 성격에 피부색은 어두웠지만 누구보다 밝아보였어.
종종 우린 만났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 대학원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냥 그렇구나 생각했었어. 그러던 어느날 넌 대화방에 물리학 문제를 올렸고 나의 이과적 감성을 자극시켜주었어..
그때부터 좀 더 친해지고 싶은 여동생으로 생각하게 된 거 같아. 박사를 준비하면서 넌 운명의 상대를 만나 시집을 갔지만 잦은 밤샘연구에 힘들어하는 널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오빠로써 널 응원해주고 싶어졌어.
오랜만에 널 만났을 때 우린 방탈출 카페를 갔었지. 다른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지만 너와 난 논리적 추론으로 퍼즐을 풀고 나왔어. 너가 그렇게 무섭게 집중하는 모습은 15년을 알고 지내는동안 처음본거 같아.
그 후에 우린 한 남자 뮤지컬배우를 같이 좋아하게 됐어. 우리끼리 팬모임방을 만들어 이야기도 나누고 부부동반으로 예술의전당으로 공연도 보러갔어. 뭔가 통하는게 많은 동생이라서 너랑 의남매하기로 맹세했지.
그 뒤로 너와 난 카톡으로 자주 대화를 나눴지만 너가 너무 바쁜 대학원생인 탓에 1년에 두번씩 모임에서 만나는게 다였어. 그래도 난 네 생일은 꼭 챙겼고 홍삼엑기스도 보내고 이것저것 필요한 걸 보냈어. 넌 받기만 한다고 부담스러워했지만 오빠란 그런거라고 생각해.
곧 박사졸업을 한다는 소식에 이제 너랑 방탈출도 하고 부부동반 모임도 종종하겠구나 생각했는데 2세계획을 갖고 있다는 말에 이젠 더 못 보겠구나 생각이 들어 아쉽더라.
하지만 어쩌면 내가 더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애를 키우면 선배 애엄빠로써 오히려 찾아가 주는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잖아? 내가 애를 봐주면 너랑 신랑은 좀 쉴 수 있겠지. 지긋지긋한 코로나때문에 너의 졸업이 조금 밀렸다는 소식에 안타까웠지만 부디 별일없이 졸업을 하길바래. 그리고 앞으로 승승장구 할거야. 항상 조금 멀리서 응원할게.
만나도 말도 많이 안하고 대충 안부만 묻고 오다줏은 것처럼 선물을 주겠지만 오빠는 그런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