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야. 이것좀 받아봐라."
현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무장갑을 벗고 달려나갔다.
시어머니가 쪽파와 열무한단을 들고 들어오셨다.
"아니 어머니 뭘 또 이렇게 사오셨어요. 힘들게."
"어, 내 진서엄마네 머리하러 갔다가 장이 섰길래 보니깐 쪽파가 아주 좋아. 그래서 한단 사왔어."
"아휴, 다음주에 김장인데, 총각김치는 또 뭐하러 담그실려고."
보아하니 총각김치 거리다. 일거리가 늘었다는 느낌에 한숨섞인 푸념이 절로 나왔다.
다음주에 김장하기로 했는데, 이번주에 뭣하러 총각김치를 또 담그나... 집에 식구라곤 나랑 아범이랑 어머니 셋인데...
한숨섞인 푸념이 입밖으로는 나오지 않고 목에서 맴돌았다.
"저번 추석에 선이네 며늘애기가 열무김치가 맛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생각나서 샀어."
추석이 지난지 얼마나 지났는데 손주며느리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을까.
눈치빠르긴 일등인 시어머니가 내 말투에 섞인 감정을 모를리 없다.
나이들어서 며느리 눈치보고 사는 시어머니 모습은 또 보기 싫어서 불쑥 나서서 쪽파와 열무를 들고 부엌으로 간다.
고무다라와 양재기를 꺼내고 시어머니와 마주 앉아서 쪽파를 다듬기 시작했다.
"담주에 김장인데, 열무를 보고는 또 못참고 사오길, 니 시애미가 눈치가 없긴 없다 그쟈?"
"어련하시게요. 손주 며느리냐고 일년에 몇번 오지도 않는 걸 뭐하러 그리 이뻐하세요."
"근데 걔가 이뻐. 우리 선이랑 살아주는게 이뻐."
아범이랑 살아주는나는 안이쁜가? 또 삐딱한 말이 나오기전에 목에서 삼키고 그냥 웃었다.
십수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시어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해서는 매번 이런 식이다.
이제는 누가 친엄마인지 모르겠다, 왜 딸들은 엄마한테 꼭 퉁명스러울까?
"에미야."
"왜요?"
"어저께 아파트 경로당에 갔더니 진주할머니 요양원 갔다더라. 난 요양원 가는게 너무 싫어. 난 병나지 말고 갑자기 죽었으면 좋겠어."
"아유, 좀 그런 말 좀 하지 말아요. 엄니 요양원 가면 집안일 할 사람 없어서 안보내요. 걱정 마셔."
"그래. 내가 집안일 많이 할께 요양원 보내지마."
시어머니는 집안일 많이 시킨다는데 뭐가 좋은지 히죽 웃고 쪽파를 다듬는다.
그러다가 자기말이 우스운지 또한번 히죽히죽 웃으신다. 나도 덩달아 어이없어 웃는다.
쪽파를 다듬고, 열무를 다듬고, 총각김치를 담궈 김치통을 베란다에 내다 놓았다.
"여보, 오늘 일 안나갈거야? 왜케 늦잠을 자 오늘따라?"
다음날 아침나절부터 남편을 붙잡고 두들겨 깨웠다.
택시로 벌이가 신통찮은지 아니면 아들 장가가고 나서 돈버는데 흥미를 잃은건지 요즘 통 게으른 짓을 많이 한다.
한참을 두들겨 깨우는데, 건너방에서 어머니가 나오셨다.
"에미야. 나 이상하게 신물이 나온다. 왜이러지?"
"왜그래요? 어머니? 저녁먹은게 소화가 안되나?"
"병원에 좀 가봐야겠어."
"그래요 그럼. 지금 8시니까, 병원문 열때 맞춰서 제가 모시고 갈께요."
"아범 아직도 안나갔어?"
"오늘따라 안일어나네요."
어머니가 속을 부여잡고 건너방으로 들어갈때, 남편이 안방에서 나왔다.
"아유.. 나 오늘따라 이상하게 나가기가 싫으네."
"쓸데 없는 소리하지말고 얼른 나가."
남편은 꾸무정거리면서 화장실로 들어가서 세수를 했다. 나는 아침을 차릴까 생각하면서 부엌으로 가다가 갑자기 발길을 돌렸다.
왜 건너방에서 소리가 안들리지?
갑작스레 목뒤로 소름이 끼치면서 나는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 여보!!"
침대위에 시어머니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져있었다.
남편이 세수를 하다말고 뛰쳐나왔다.
요양보호사 자격증때문에 CPR을 배워둬서 곧장 침대위로 뛰어올라가 시어머니를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여보!! 빨리 119 전화해!!"
호흡이 전혀없었다. 심장이 마구 뛰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고 시어머니의 가슴을 내리 누르고 있었다.
지독하리만히 잔인한 현실감이 온몸을 휩싸안았다. 팔이 부들부들 떨려서 제대로 CPR을 못하게 될때쯤 119 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기절할것 같았지만 기절할수가 없었다. 연약한 신경이 정신줄을 놔야 한다고 부르짖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구급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한테 건 전화에서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응급실에서 달려온 아들한테 기대자 그제서야 울음이 폭팔했다.
응급실 안에 들어가지 못해서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보이는 심폐소생실 글자에 심장이 철렁했다.
내리 20분이 넘게 울다가 지쳐서 목소리가 안나올때쯤 시누이와 둘째 도련님이 도착했다.
그리고 의사가 나왔다.
"보호자분? 지금 응급처치를 25분 넘게 했는데요. 심박이 안돌아오세요. 일단 30분까지 해보고 안되면 사망진단 하겠습니다."
옆에서 시누이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엄마미안해 하는 곡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체념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신건가. 이렇게 갑자기 가신건가?
어제 요양원 얘기를 왜 꺼내나 했는데... 갑자기 가시고 싶다더니 소원대로 되신건가.
그리고 그때부터 현실감이 없었다. 남편손을 붙잡고 응급실에 들어가서 어머니 시체를 봤다.
시체옆에서 오열하는 시누이옆에서 하얀 천 밑으로 삐져나온 발바닥을 잡아봤다.
사후경직도 없고, 약간 차고 말랑말랑한 발바닥이 그냥 겨울에 베란다에 나갔다 온 어머니 발바닥과 똑같았다.
눈을 감고 입술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앞니가 평소 주무실때와 다를게 없었다.
왼쪽 손가락에 끼인 반지를 빼내서 시누이한테 주었다. 시누는 그걸 자기 손가락에 꼭 끼고 다시 울었다.
장례식장에서 남편이 상담할 동안 집에가서 어머니 사진을 찾았다. 환갑때 사진이 있었다.
이십오년전 사진이지만, 분홍색 한복을 입고 잔치상 앞에서 웃는 표정이 좋았다.
빈소를 차리고 음식을 챙기고 정신없이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살아생전 어찌나 사방팔방 돌아다니셨는지 동네사람들이 많이도 왔다.
아기낳은지 오십일밖에 안된 딸이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소리에 사위랑 같이 아기를 안고 달려왔다.
빈소의 안쪽 방에 아기를 내려놓으니 생글생글 웃는게 너무 이뻤다. 한 세대가 가고 다음세대가 온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틀째날 저녁에 진서엄마가 왔다. 머리하러 왔다간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실줄 몰랐겠지.
빈소에서 펑펑 울던 진서엄마는 밥도 안먹고 도로 나가더니 빼빼로를 잔뜩 사왔다.
할머니가 과자를 좋아했다고 그걸 빈소에 잔뜩 늘어놓고 한참을 울었다.
남편이 무릎이 아파서 아들이 대신 꼬박 맞절을 해줬다. 군소리 없이 계속 일을 도와준 며느리가 너무 고마웠다.
이틀째날 밤 12시에 순대국집 윤씨아버지가 왔다. 촛불집회에 갔다 왔단다.
뭐하러 피곤한데 여기까지 왔냐고 타박했더니, 그래도 얼굴을 비춰야 마음이 편할것 같단다.
고마운 사람이 여럿이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내 삶에 감사해야 했다.
발인날 아침에 정산을 하고, 벽제 화장터로 갔다. 십년전 친엄마가 죽을때 왔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 기억 그대로 시어머니를 보내드렸다. 관이 들어가고, 철문이 닫히고, 한참을 기다려 유골함을 받았다.
사위가 사진을 들고 남편이 유골함을 들고, 그리고 온가족이 산소에 갔다.
시아버지는 30년전 돌아가셔서 산소에 홀로 묻혀 계시다가 몇년전 가족묘를 새로 만들어 이장해드렸다.
부부끼리 유골함을 보관할수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에 시아버지 옆자리에 시어머니 유골함을 놓아드렸다.
'30년만에 남편옆에 누우니 좋으세요?'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장례절차가 모두 끝나자 그제서야 정체모를 그 허무함이 스물스물 팔목을 휘감는다.
나를 혼자두기 싫다고 남편이랑 이틀동안 딸네 집에 가있기로 했다.
옷가지를 챙기러 들른 집에서 문득 총각김치 생각이 났다.
베란다문을 열고 김치통을 열자, 매콤한 김치양념 냄새가 코를 찔렀다.
씻지도 않은 손가락으로 홀린듯이 김치를 집어 한입 깨물었다.
영락없이 어머니가 담근 김치 맛이었다.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나와서 그자리에 앉아 울었다.
그제서야 그리움이 나와서 슬픔과 자리를 바꾸었다.
그리움은 사소한 것에서 온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담근 총각김치같은 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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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 얘기를 듣고 이 얘기를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결혼게에 올릴까, 요리게에 올릴까 고민하다가, 총각김치 얘기라 요리게에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