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9월.
한국 해군의 대잠능력이 거의 없어 해안 경계가 제대로 되지 않던 때
북한은 26명의 전투원을 잠수함에 태워 남침, 하지만 작전 중 좌초되어 잠수함이 발견되고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무장공비가 탈출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는데
이 사건이 그 유명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다.
경계 작전의 실패부터 훈련과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나
지리적, 수적 우위로 승리했던 이 과정에서 대가리 박은 사건이 존재했으니...
작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10월 말
2사단 공병부대에 복무중이던 한 일병이
제설작전을 위한 싸리나무를 모으는 도중 실종된다.
당시 대간첩작전 중이라 상부 부대에서는 상황종료까지 싸리비 제작을 자제하라고 권고했으나
당장이 급한 말단부대들에선 이를 무시했고 일병 혼자에게 싸리나무를 모으라고 보낸 것이다.
당시 헌병대는 일병의 실종이 탈영이라고 발표하며
아예 해당 일병의 집까지 쳐들어가
"아들 숨겨놓은거 알고 있으니 내놓아라" 며 행패를 부리며 2주가 넘는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던 중 작전현장에서는 한명의 무장공비가 사살되었는데
그 공비는 실종된 일병의 군복과 군번줄을 착용하고 있었고
같이 발견된 메모에서는 전투기록과 실종된 일병의 정보가 적혀있었다.
당시 실종된 표종욱 일병(전사 후 상병 진급)은
싸리나무 작업장 50m 반경에서 속옷만 입은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이러한 내용은 TV뉴스로까지 방영되었다.
하지만 헌병대는 뉴스가 나오고 나서도 유가족들에게
"표종욱 일병한테 무슨 연락온게 없냐" 며 캐물었고
이에 유가족들이 뉴스도 안보냐, 간첩에게 살해당했다고 하자
"뉴스랑 TV가 장땡이냐" 며 오히려 유가족을 비난했고
이러한 국군의 만행에 당시 국민들은 분노해
이후 군은 유가족에게 빌었고
국회에서도 철저히 추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