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학의 발전이 이미 완성을 향해 달아 올라가던 20세기초반, 인류는 무려 항공기의 시대까지 여는데 성공하지만 전자기술의 발전은 미흡하여 유도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각 무기체계는 이미 극도로 세련된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새로운 시대의 압도적인 공격수단이 되리라 주목받았던 항공폭격은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효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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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류는 항상 목표하는바에 필요한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편법으로 타협하거나 지혜로운 요령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도 이들은 아주 원시적이고 무식하지만서도 아주 확실한 해결법 두가지를 내놓는다. 하나는 융단폭격, 나머지 하나는 급강하 폭격이다.
전자는 이중에 하나는 맞으리라 생각하고 수백발의 폭탄을 대량으로 투하, 목표물을 포함한 주변 지역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수단이다.
◀융단폭격
후자는 재빠르고 정확하게 내리꽂힐 수 있는 소형 폭격기에 소수의 폭탄을 적재, 목표물을 향해 급강하하여 지면에 충돌하기 전에 폭탄을 목표물을 향해 근거리에서 떨어뜨리고 이탈, 명중을 기대하는 방식이었다.
◀급강하폭격
독일은 미국을 방문하며 본 감명깊은 급강하 폭격기에 매료되고 이 물건의 효과에 주목한다. 독일은 역갈매기형 날개와 자동 상승장치, 그리고 적에게 극도의 위압감을 주는 사이렌을 갖춘 명품 급강하 폭격기를 개발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Ju-87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 (STUKA-슈투카 라는 이름은 단지 급강하 폭격기라는 뜻의 말이지만, 워낙 Ju-87이 유명하여 이 기종의 별칭이 되어버린다.)
Ju-87은 이 무식한 방법만으로 현대의 유도식 스마트폭탄에 조금 못미치는 명중률을 달성해버린다. 전략공군을 구상하지 않고 전술공군에 머무른 독일 루프트바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속에 엄청난 위압감을 남기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게 바로 이 Ju-87이다.
▲Stuka라는 이름이 별칭으로 굳어져버린 Ju-87급강하폭격기. 높이서 떨어뜨린 폭탄이 맞지 않는다면, 폭탄을 가지고 내려가서 머리위에 박아주겠다는 무식한 전략의 급강하 폭격기였다.
연합군이 전쟁말에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까지 Stuka는 연합군 육군에게 있어 극도의 공포였다. 이들은 전선 안으로 날카롭게 파고 들어와 진지와 벙커와 기지를 정확하게 공격하고 유유히 이탈하였다. 연합군 병사가 아군의 공습경보가 아닌 Stuka가 땅으로 내리꽂히며 불어댄 '제리코의 나팔'소리를 들으며 벙커로 달려가고 있었다면 그는 거의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했다. 그야말로 하늘의 악마, 공포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슈투카의 실적은 육해공을 통틀어 독일군의 그 어떤 무기보다도 뛰어난 실적을 내었고, 독일에서 Stuka의 에이스 파일럿들은 전투기 에이스들 이상의 칭송과 찬사를 받는 전쟁영웅들이었다. 그들의 전과가 신문 첫면을 장식할 동안, 그들의 제복을 장식한건 수많은 훈장들이었다.
그런데 슈투카 못지 않게 독일군의 상징이었던 이들이 있었다. 제3제국의 공군에 대한 뭔가 아쉬운 평가 속에서 그 이름에 남은 일말의 명예를 살려두는데 성공했던 이 하늘의 악마들의 활약상과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활약하던 또 다른 암살자들 또한 제국의 빈약한 해군을 연합군으로 하여금 절대 얕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수면 아래의 암살자인 유보트(U-boat)는 보이지 않는 물 속에서 접근하여 비대한 함체에 작렬하는 작살을 꽂아넣어 심연의 해저로 끌고 내려간다.
유보트는 칠흑속의 바다에서 물그림자속에 숨어 배에 구멍을 뚫는 그야말로 어둠의 사냥꾼이었다.
이들은 특히 말라죽어가고 있던 영국의 유일한 젖줄이었던 미국발 대규모 수송선단을 주로 노리기 시작한다.
이 무자비하고 잔인한 망령들에게 물위에 간신히 떠서 밀려가는 비대한 양들과 그들을 지켜야 했던 무력한 양몰이견들이 의지할 수 있던 것은 그들의 배때기에 작살을 겨누고 있는 암살자의 그림자위로 던지는 눈먼 폭뢰 뿐이었다.
▲수면위로 던져져 가라앉는 눈먼 폭탄이 맞을리는 만무했고, 폭뢰는 단지 이들을 안심시켜 바다로 내몰 수 있는 군함의 은장도정도로써,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 보험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독일의 유보트에 극도로 시달리던 연합군은 독일의 Stuka가 가진 정확도에 주목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Stuka를 이용해 유보트를 잡자는 발상이었다. 이들은 위력은 강력하지만 긴 착탄 시간과 낮은 명중률, 그리고 짧은 투사반경을 가진 폭뢰의 단점을 항공폭격으로 보완하고자 하였고, 최강의 항공폭격 명중률을 자랑하며 악명을 떨치던 슈투카에 주목한것이었다.
연합군 수뇌부는 바로 급강하 뇌격기의 개발에 착수한다. 적이 부상해서 공격을 시도하기를 기다릴것 없이, 급강하 폭격기를 물속까지 몰고 들어가 높은 정확도로 폭뢰나 어뢰를 투하하여 유보트를 수중에서 격멸해버리자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항공기가 잠깐의 시간이지만 물속에 파고 들어가 전투행위를 하고도 무사하기에는 굉장한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유도기능이 있는 대잠무기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은 없었고, 그 사실은 연합군으로 하여금 이 매력적인 발상을 떨쳐버리지 못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옭아매었다.
1년 5개월여의 유보트의 공격에 시달리는 시간을 이겨내고 그렇게 급강하뇌격대잠공격기는 완성되었다.
희망의 구원자들은 바로 날아올랐고, 이미 수상함을 상대로 뇌격기와 급강하 폭격기를 이용해 양동작전을 펴는 것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던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에게 항공기로 대잠 해상작전을 펴는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들은 공포스런 어둠속의 암살자에게 대항할 수단을 얻게 되었고, 영국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모델이 되었던 급강하폭격기만큼의 압도적인 위력은 아니었지만, 손닿지 않는 멀리서 작살을 던지던 적이 유유히 물속으로 사라져가기 전에 접근하여 폭뢰를 던질 수 있게 된것 만으로도 엄청난 혁명이었다.
그렇게 유보트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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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군 대잠편대의 급강하 뇌격기들이 그 아래 수면 위를 초저공비행하며 지나가는 3기의 뇌격기와 양동작전중이다.
급강하뇌격대잠공격기는 당대 최신기술을 모두 쏟아부은 그야말로 기술의 집합체였다.
이 기적의 기체들은 급강하폭격기를 기반으로 수면 돌파용 캡을 장착한 다음, 급강하 폭격기에 장착되던 자동상승장치를 제거하고 수면 돌파시 저항을 줄여주는 가변익 기능을 추가하는등 대대적인 개조를 거친 특수목적기종이었다.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면 돌파 직전에 랜딩기어을 회수, 가변익은 뒤로 접는다.
물론 콕핏과 엔진룸의 방수처리와 함께 공격 후 수면 위로 부상하기 위한 공기튜브를 내장, 부상 후 재이륙을 위한 수상기 기능도 갖춘다.
▲수면 위로 부상 후 수상기 기능을 이용해 재이륙중인 급강하 대잠기
이들은 급강하 폭격기들과 달리, 항공폭탄 대신 어뢰나 폭뢰를 안고 급강하 하여 수면 아래로 돌파, 잠수함에 접근하여 하강 침로를 예측하여 폭뢰를 동체에서 분리하고 자동 부상장치를 작동하여 수면으로 떠오른다.
따라서 더 강한 기체 내구도와 잦은 정비가 요구되었고, 기체 수명도 짧았다.
이래저래 운용효율이 낮고, 공중전에도 무용지물인 기종이었지만, 유보트에 시달리던 연합군 수송함대에게는 실날과 같은 희망을 가져다준 그들은 분명 영웅들이었으며,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함수에 박혔을 암살자의 작살을 상상해볼때 그 누구도 결코 그 값이 비싸다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수송함대 위에 선 목숨들만이 아닌 그들이 싣고 가던 물자를 기다리며 쓰러져가던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까지 살린 구원자들이었다.
▲급속 회피기동중인 뫼르더 급(Mörder 級) 유보트. 함수 양측에 두개의 백색 대구경 어뢰 발사포드가 보인다. 저곳에서 쏘아진 작렬하는 작살은 급강하 뇌격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무력한 수송선들을 마구잡이로 유린했다.
항상 고고도에서 수직에 가깝게 급하강하는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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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침강할 필요가 없거나, 부상후 여유롭게 이륙할 여유가 없는 상황일때에는 저공에서 얕게 저각으로 강하하기도 한다. 이경우,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보다 많은 수의 기체가 단일 목표에 투입된다.
이들 급강하 뇌격기는 잠수중에는 수상함에 비해 항공공격에 대하여 비교적 안전을 보장받던 잠수함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유보트에 대한 보고를 듣던 히틀러를 불같은 분노에 떨도록 만들었다.
히틀러는 나치독일이 패망해가는 와중에 이 유보트 위를 날아다니는 날파리들을 처치할 기적적인 신무기를 요구하여 개발진은 항공요격 시스템개발에 착수한다. 그러나 개발이 완료되기 전에 머지않아 나치독일은 완전하게 패배한다.
그런데, 독일을 점령하고 발굴작업을 하던 연합군의 수중에 들어온 나치의 수많은 비현실적인 신무기 프로젝트 가운데에는 잠대공 항공요격 시스템의 구상안이 있었다. 바로 FuC(Fisch und Chips)계획이 그것이다.
▲FuC(Fisch und Chips)계획. 이 말도 안되는 구상은, 잠수함이 급강하중인 대잠편대 사이로 뛰어올라 급강하 뇌격기를 직접 요격한다는 발상이었다.
2차대전이 종식되자마자 평화의 기쁨을 나누기도 잠시, 세계는 동서의 초강대세력이 대치하는 세계로 나뉘어지고, 미국과 소련의 무기개발경쟁이 시작된다. 나치독일이 마저 완성하지 못한 수많은 신기술의 청사진들을 입수해간 양측은 그 기술의 유산을 바탕으로 서로를 똑 닮은 무기들을 생산해가며 경쟁한다. 바로 냉전이다.
▲독일의 Ta 183
▲영국의 Gloster E28/39-독일의 Ta 183을 꼭 빼닮았다.
▲소련의 MiG-15 파고트와 미국의 F-86 세이버-역시 모두 Ta 183과 유사하다. 동,서 양측이 같은 청사진을 입수해갔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양 세계는 나치독일의 유산인 FuC계획을 바탕으로 잠수함으로 항공기를 요격하고, 더 나아가 은밀하게 핵을 날릴 수 있는 수단까지 되는 SLBM을 비롯해 여러가지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미사일 체계를 개발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