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주 염치없이 행동하는 동생 하나가 있었다.
우리집에서 한번 실수한 이후로 나는 다시 그 동생을 우리집에
초대하지 않았었다. 우리집 물건을 제 마음대로 사용하고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하면서 사람 아주 미치게 만들었는데, 흠..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너무
결벽증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나 하는 미안함도 든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까지는 아니고...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나는 또 자취를 하게 되었고 이번엔 규모가
꽤 크다. 방 두개짜리 16평이여 어허헣
진짜 문재인정권 처음 집권했을 때 이니 하고싶은거 다 해! 라고 외쳤는데
이제는 이니는 모르겠고 나는 하고싶은거 다 할래! 하고있다.
16평이란 정말 혼자사는 남자에게는 탐험의 공간이다. 내 스스로가 인디아나존스가
될 수도 있고 내셔널 트레져를 찍을수도 있다. 3인가족쯤 되면 불행해지겠지만
향후 최소 5년은 그럴일 없으니 정말 완벽하게 멋져.
그럴뻔 했지.
썅.
우리 가게에는 부장이 하나 있다.
일 잘하고 열심히 하고 매사에 진지하고.
말뽄새가 더럽게 더러우며-더티 모어 더티-입에는 여자를
달고사는데 정작 여자는 없고 인간관계에서는 눈치라고는
고물상에 팔아넘긴 사람이다.
마치, 일하는 인격과 사람으로써의 인격이 분리된 듯하다. 하도
그 인격의 경계가 명확하다 보니 마치 짬짜면을 보는 기분도 든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이다.
문제는 내가 그 사람을 그런식으로 관망만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사실상 가게의 부장이다 보니 필연적으로는 나와 말을 섞을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내 부처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려는 다짐은 깨지고 만다.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불가능하겠지만 열반에 드는것에 있는데
이사람과 함께하다보면, 이사람을 먼저 부처님 곁으로 보내버리고 그분께서
이사람을 빠따질 하는 동안 나는 남은 삶을 살다 온전히 부처님 곁으로 가서
같이 빠따질을 하고싶어진다.
이런식이다.
내가 최근에 관계가 좀 진전되려는 사람과 카톡을 하고있는데 불쑥 끼어들어서는
"야, 누구냐?" 라고 묻는다.
"예. 요새 좀 연락하는 사람이에요." 라고 하자 낄낄 웃으면서 "야 번호 줘봐 내가
이야기하게" 한다. 뭐 대충 이런식으로 뜬금없다. 근데 그게 뜬금없는 말이란건 아는데
그... 묘하게 빡친다고 해야되나. '니가 뭔데?' 하는 그 감정.
그 뒤로는 집요하게 날 쫓아다니면서 너는 배가나와서 힘드니까 내가 대신
연락해서 잘해보겠다느니, 여자하고 연락좀 한다고 내 말 쌩깐다느니 퇴근해서
칼잡는 기술 연습하라고 했더니 집에가서 여자하고 카톡으로 노느라 바쁘다느니
쫓아다니면서 재잘대는데-갈구는건 아니고-사람 아주 미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참다못한 내가 "그만좀 해요 애도 아니고 형이 다른사람한테
그런말 들으면 기분좋아요?" 하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고 나서야 그만둔다.
본인은, 명백히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누가봐도 장난이 아닌게 아닐까.
아무튼 그런식의 인간이다.
그래, 최근에는 좀 그랬다. 나는 그동안 인간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데다가, 다이어트 중이라고 하루에 밥 한공기 이상을 안먹고 뛰어다니는 탓에
육체적으로도 크게 좋지는 않았다. 적절한 운동과 탄수화물을 멀리한 덕분에 최근에는
괄목할만한 성과도 보이곤 있지만 남들눈에는 걍돼지다.
그런 걍돼지라도(띄어쓰기 일부러 안한거임) 난 최근에 노력했고, 스트레스를 좀
풀게 필요했다. 간만에 좋아하는 조선명탐정 보면서 치킨에 소주한잔 하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았다. 퇴근하고 집근처에서 한마리 6500원 하는 옛날통닭 하나와 맥주 소주 하나씩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한 마음으로 iptv에서 조선명탐정을 검색했더니 띠용
빌려보려고 했다가 나도 모르게 깔깔 웃었다.
심지어 무료였다. 지니야 고마워.
네가 나 힘든거 알고 이거 무료로 풀어준거구나.
(당연히 아니겠지 병신아)
초반 김명민과 오달수가 관군을 피해 도망다니는 장면을 보며 여유롭게 치킨뜯는데
쿵쿵쿵-
어?
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누구세요?" 했다. 이시간에 올사람이 없는데?
문을 열어보니 술에 엄---------청 취한 부장이 맥주 두캔을 들고 서 있었다.
"여긴 어쩐일이에요? 이시간에?"
"야-! 임마! 형이! 너 외로울까봐 술친구 해주려고 왔지!"
"...일단 들어오시고요."
그래도 집까지 찾아왔는데 바로 문닫을만한 야박함이 나에겐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한시간 뒤에, 그 야박함을 좀 가졌으면 어땠나 하게 된다.
그는 오자마자 치킨을 보더니 "오 치킨. 이런게 있으면 연락을 했어야지" 하면서
바로 비닐장갑을 끼고는 "아니 이시간엔 왜..." 하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고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그리곤 바로 다리 하나를 가져가며 남은 다리 하나는
나에게 주고는 "야 다리먹어라" 하면서 맥주캔을 깠다.
배려하지마요. 그거 원래 내 치킨이거든? 눈치없이 장난이랍시고 하는 말이
술취하니까 거의 한 백배쯤 증폭되더라. 인켈은 뭐하나 이사람 데려가서 술쳐맥이고
스피커 안에 넣어놓으면 음량증폭 개잘될텐데.
그는 집을 둘러보며 내가 아끼는 피규어에 손을 대려고 하고, (입구컷 당했지만)
에반게리온 브로마이드를 보며 예쁘니까 이거보고 밤에 x치냐 오타쿠냐 하면서
멋대로 떠들어대질 않나, 보던 tv를 꺼버리고 이야기좀 하자며 휴대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고 아주 난리도 아니였다. 손씻고 오더니 수건이 없다며 행주에 손을 닦고
소주를 따라마시는 내 잔을 뺏더니 맥주컵을 가져와서는 소주를 한가득 맥주컵에 따라
주며 "야 남자는 이런잔에 마시는거야" 하며 지혼자 호탕하게 웃었다.
"형"
"오 우리 노동자 왜!"
"나가요 제발"
"야 넌 내가 이렇게 찾아와줬는데 고맙지도 않냐?"
"안고마워요. 나가요."
결국 참지 못한 내가 나가라고 했고, 그는 고개를 푹 숙인채 자기가 혼자 살다보니
외로워서 이런식으로밖에 풀 수가 없다며 진심이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가지가지한다 야발 진짜. 삼십분을 혼자 그렇게 웅웅 떠들어대더니 간다며 일어났고
나는 멀리 안나갈테니 다시는 오지말고 술깨면 할말 많으니까 전화좀 하라고 했다.
그는 알았어 알았어를 반복하며 간다고 말하고는 내 배를 만지며 "아이고 우리 돼지"
했고 마침내 나는 폭팔하여 "그냥좀 집에 가라고!!!!" 하고 사자후를 외쳤다.
그가 떠난, 내 작은 성은 아주 엉망이 되어있었고 술에 취해 치킨을 이리저리
헤집은 탓에 나는 다리하나 빼고 단 한점의 치킨도 먹을 수 없었다. 술병은 엎어져
카페트를 적셔놨고 나는 조선명탐정이 다 끝날때까지 청소만 하다가 소주 두잔 마시고
거의 울면서 잠에 들었다.
그는 오늘 쉬는 날이고 나는 일어나자마자 "아오 ㅆ발 자고 일어나도 분이 안풀려" 라고
중얼거리며 남은 청소를 한 뒤 이 글을 쓰고 출근한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고 내가 분노할 일도 존시나게 많다 진짜.
다 꺼졌으면 좋겠다. 제-에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