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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직장인 이직도전기 (結)
게시물ID : emigration_18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캐나다소시민
추천 : 10
조회수 : 3106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6/08/04 10: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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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잘 안 들릴까 봐 차문 꽁꽁 걸어잠그고 HR Manager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HR Manager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합니다.

"XX? 축하여... 우리가 너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아니... 시방 그 말이 정말이여?'

3차 인터뷰가 언제일까나... 주제는 무엇일까나... 어디서부터 준비를 해야하나... 그런 걸 생각하고 있던 저에게 정말 뜻 밖의 소식을 전합니다. 

제대로 된 인터뷰 한번만으로 덜컥 채용을 결정하다니... 음... 이 놈의 회사는 뭘 그리 사람을 철썩같이 믿는다냐... 

내가 들어가서 회사기밀 갖고 튀면 어떡하려고...


"응... 그려... 어쨌든 니 연봉은 불라불라, 휴가는 불라불라, 베니핏은 불라불라... 맘에 들어?"

이렇게 열심히 채용조건에 대해서 영어랩을 뱉어냅니다. 


캐나다에서는 항상 이렇게 전화로 미리 조건을 통보하고, 육성으로 동의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다시 이메일로 채용조건을 보냅니다.

연봉은 지금보다 조금 오른 정도, 휴가와 베네핏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 정도입니다.

다다익선이라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내가 뭐 주크버그도 아니고... 라는 생각과 합격되었다는 기쁨에 뒤섞여서 바로 '오케이' 대답을 합니다. 


"자... 그럼 너의 시작일은 지금부터 2주 후인 언제언제... 그리고 그동안 너의 백그라운드 체크와 범죄사실 확인도 들어갈 거여... 오케이?"

아직도 들뜸에 젖어있던 저는 무조건 오케이, 오케이만 외치다가, 통화를 끝냅니다. 

그리고, 바로 확인이메일을 받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리스닝이 좀 늘었는 지, 놓치거나, 잘못 알아들은 건 없네요... 휴우...


그런데, 백그라운드 체크에 2주 넘게 걸린다는 사항이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만약에 백그라운드 체크에서 탈락되면 어찌되는 겨? 레퍼런스를 줬는데, 이 놈이 나에 대한 억하심정으로 천하의 월급도둑이라고 나를 깎아내리면 어떡혀...'

'기껏 기세좋게 사직서 메니저에게 던졌는데... 백그라운드 체크에서 걸리면, 이건 완전 낙동강 오리알 아녀?'

'물론 백그라운드에 체크에서 걸릴 만한 게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사람 일을 모르는 거니... 혹시 알아? 숨겨놓은 자식이라도 찾아낼 지... 아... 물리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겠구나... 웃프군... 쩝...'


또한 그 회사에 있던 중국친구와 합격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 휴가도 지금과 비슷하다는 점이 조금 걸립니다. 

그래도 내 짬밥이 얼마인데... 하루, 이틀이라도 더 쳐 줘야지... 

베네핏이야 회사방침상 정해져 있지만, 연봉과 휴가는 네고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는 고분고분 알려주는대로 오케이, 오케이 했지만, 이번에는 휴가에서 한번 네고를 땡겨보기로 합니다. 

한가지 걸리는 점은 제가 워낙 흥정의 둔재라는 점... 네고든 뭐든, 잘 안 됩니다. 워낙 심장이 조막만한 소시민이라귀가 얇은 팔랑귀라서...

따라서 저는 뭔가 물건을 고를 때, 네고나 흥정을 하기보다는 아예 발품을 팝니다. 

내 발 고생해서 그 흥정의 둔재에서 오는 손해치를 보상해보겠다... 라는 생각이지만... 결과물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바가지는 바가지대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에 와서 장문의 이메일을 보냅니다.

'오... 날 채용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2가지 걸리는 점이 있네.

첫번째는 백그라운드 체크... 난 확실하게 하는 게 좋아... 그러니 시작일을 백그라운 체크 완료 시점에서 2주 후로 하는 게 어떨까? 

그리고... 휴가가 좀... 그 왜... 있잖아...그래도 내가... 이 바닥에서 뒹군 게 얼마인데... (몸 비비 꼬면서)응?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곧 답장이 옵니다.

'응... 그럼 시작하는 날은 노우 프로블롬. 백그라운드 체크 끝나고 2주 후로 해... 

그리고, 휴가는 뭐? 작다고? 여긴 다 그렇게 시작해... 대신 2년 후부터 2년 주기로 하루씩 늘어나지... 맘에 안 들어? 쫄리면 뒤지시던가...' 


허... 이것들이 나 네고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나? 강하게 나오네...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아니... 내 말은... 휴가가 너무 많다고... 휴가 반납하고 목숨 바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네고를 마치고, 본격적인 싱숭생숭 기간으로 접어듭니다.

싱숭생숭기간이란... 거의 이직이 확정되었지만, 정말 친한 몇몇에게만 이야기하고는 회사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기간으로, 일이 와도 이 일을 내가 계속하게 될 지, 아닐 지 모르기 때문에,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대충대충 시간 때우는 기간... 

요약하자면...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일,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일...

'정말 옮기는 게 잘하는 짓일까?' 하는 아와 '야야... 옮기면 뭐해? 그냥 쭉 참고 댕겨...' 라는 피아, 즉 아와 피아의 투쟁이 계속되는 기간이기도 하구요...  


어쨌든 이런 싱숭생숭기간에도 백그라운드체크는 계속됩니다.

인터뷰는 설렁설렁 넘어가면서, 백그라운드체크는 정말 확실하게 합니다.

이전 회사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서 전 메니저 이름과 했던 주요업무도 다시 기입해야 하고, 각각 회사에 레퍼런스도 한명씩 적어야 하고...  

정말 백그라운드 기본 폼 적다가, '우씨, 그냥 때려칠까' 라느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자세하게 물어봅니다.

 

게다가 백그라운드 폼 적어서 내면 끝이 아닙니다.

증명서류들도 제출해야 합니다. 월급명세서라든지, 재직증명서라든지... 

요즘은 거의가 온라인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따로 챙겨놓은 것도 없고,  

서류가 있더라도, 워낙 이런 서류정리 쪽으로는 취미가 없어서 뭐 1장 찾으려면 집 안을 발칵 뒤집어놓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이직을 생각하시는 분들... 기본적으로 전 회사에서 이런 서류들은 하나씩 어딘가 쟁겨놓으세요. 

아니, 이직을 지금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어느순간에 쓰여질 지도 모르니...


T4

ROE

PayStub

Employment Letter

Signed Contract


여하튼 마지막 스테이지로 저에게 연락할 레퍼런스 3명을 요구해서, 저와 친한, 정말 웬간하면 좋은 말 해 줄거 같은 직장동료 명단 보낸 걸 마지막으로 장구했던 백그라운드 체크가 거의 3주에 걸쳐 끝나고, 드디어 정식 오퍼레터를 받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고비만 남았습니다. 바로 사직서 제출...

마음 같아서야 사직서 메니저 책상에 팍 던지면서 '내가 오늘부로 이 회사 때려친다...'라고 하고 싶지만, 아무리 날 갈구던 메니저라도 그건 좀 그렇고...

전날 열심히 구굴질 해서 찾아놓은 사직서 양식을 바탕으로 간단하게 정확히 2주 후에 회사 그만둔다고 사직서를 작성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서, 메니저 오기만을 기다겼다가, 메니저 오자마자 잠깐 회의실로 불러냅니다. 


"메니저... 내가 말이야, 요즘 딴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거든... 그런데 그 조건이 참 좋아... 그려서 옮기기로 결정했어... 2주 후에 그만둘 겨..."

"(흠짓 놀라며...) 어... 그래? 그거 굉장히 서프라이즈한 뉴스네..."

"응... 남은 기간 동안 인수인계 잘하고, 문서도 잘 만들어 놓을께..."

"흠... 그래... 머 조건 말고 다른 이유는 없고? 회사에서 맘에 안 드는 거?"

"(너... 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니 전혀 없어...  조건만 아니었으면 여기 계속 다녔을 거야... (라고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지금까지의 회사생활 중 넌 정말 최고의 메니저였어..."

캐나다 회사생활에서 늘은 건 이 표리부동한 세치 혀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려... 아쉬워서 어쩌나... 그래도 그리 결정했으니 잘 되길 바라며... 불라불라..." 

'그렇게 아쉬우면 진작 연봉 좀 팍팍 올려주지 그랬어...' 라는 공허한 속외침과 함께 메니저와의 간단면담을 끝내고, 저의 사직은 이제 공식메일로 동료들에게 쫙 돌려집니다.


이제 싱숭생숭의 기간을 지나서, 뻘쭘의 기간으로 접어듭니다.

캐나다에서는 회사 나가고 싶다고, 내일 당장 나갈 수 있는 게 아니고, 2주의 버퍼기간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2주동안 인수인계할 건 하고, 문서 만들 건 만들고, 기밀문서 있으면 빨리빨리 챙기라는 의미겠죠...

그런데, 이미 회사 옮기는 건 결정되었고, 그래도 회사는 나와서 멀뚱멀뚱 있어야 하고... 얼마나 뻘쭘하겠습니까?

팀동료들도 아무리 바빠도 저에게 일을 주지 않는, 그런 투명인간 같은 포즈로 앉아 있어야 하고...

이렇게 2주동안 열심히 뻘쭘뻘쭘, 투명투명거리면서 다니다가, 마지막날 같은 팀 직원들이랑 거하게 점심식사 하고... (절대 회식없음...) 웬일로 짠돌이 메니저가 점심값까지 내주는 그런 경험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책상에 있던 짐을 다 챙기고 팀 돌아다니면서 직원들이랑 일일히 인사 나누고 회사를 나옵니다.


캬.... 기분 참 묘합니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시원섭섭이라는 간단한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됩니다. 

그래도 어떻게 설명해보자면... 판타스틱멜랑꼴리시원회한섭섭아쉬움기대걱정근심희망우하하하엉엉엉엉휴우... 등등입니다.

3년여의 정들었던 회사를 떠남에도 이런 기분인데 나중에 은퇴할 때에는 어떤 기분일 지... 참... 흠...


이렇게 해서 저의 2달여의 이직기가 끝이 납니다.

나중에 혹시라도 참조를 위해서 도표도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Moving Company.png


이번 이직을 하면서 제일 크게 느낀 점은 캐나다에서의 네트워크가 참말로 중요하구나...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옛 동료 한명씩이라도 안부메일을 보내야하겠다... 라고 느끼게 되었고...

그리고, 벌써 큰 회사만 3번째인데... 아예 웬만한데 다 다녀보고 그걸로 책이나 써볼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나 이력서부터 인터뷰, 백그라운드 체크, 기다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너무 지칩니다. 

이번에는 꾹 참고서 은퇴 때까지 자리잡고 다녀볼까... 합니다.


여하튼... 과연 실력도 별로 없고, 영어도 어눌하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경력도 없는 나를 뭘 믿고 이렇게 덜컥 받아주었나... 제 스스로 찬찬히 한번 따져보니... 

결론은 한가지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외모... 


크... 이 놈의 외모지상주의... 

정말 매일 영어공부하고, 실력쌓고 그러면 뭐합니까? 

살인미소, 눈 찡긋 한번에 다 넘어오는데... 크... 정말 외모에서 빛이 안 나게 먹물을 칠하고 다닌 수도 없고...

모두 열심히 외모 가꾸어서 원하는 바 모두 이루시길...


이상 기-승-전-외모지상주의 이직도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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