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옥 한성대 교수가 한 주간지에 기고한 글을 소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을 때 국회의원실을 어떻게 꾸렸는지 소개하는 글인데, 노 전 대통령이 어떻게 사람을 대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1988년 어느 국회의원의 비서로 근무한 바 있다. 눈으로 직접 본 걸 글로 옮긴 것이다.
가운데 눈에 띈 한 의원실(노무현 의원실)이 있었다. 신참 국회의원실은 고참 의원실에 비해 좁았다. 그 의원실엔 짐이 책밖에 없는 듯했다. 그 의원실의 세간은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조만간 그 의원실은 다른 의원실의 비서들로부터 부러움을 독차지했다. 한 마디로 탈권위의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해방구’였다. 그곳에서는 국회의원과 비서 등 지위의 문턱이 없고, 성별의 문턱이 없었다.
게다가 그곳에서는 월급날이면 소위 ‘월급분배’ 사건이 일어났다. 누구나 중요한 일을 한다는 전제하에 각자의 월급을 회수하여 지위와 무방하게 가족 수가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월급을 주고, 가족 수가 적은 사람에게 더 적은 월급을 주었다. 운전기사의 월급이 가장 많았고, 당시 보좌관이었던 이광재 의원이 가장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민주화가 바로 이것이구나!” 각성이 몰려왔다.
노 전 대통령이 보좌관, 운전기사 포함해 모든 사람의 업무를 똑같이 중요하게 여겼다는 내용이 인상 깊다. 당시 가장 많은 월급을 받았다는 운전기사 최영씨는 1988년 24세의 나이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해인 2009년까지 노 전 대통령을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경호훈련을 받게 한 뒤 최씨에게 운전대를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 사저의 궂은 일을 돕고 권양숙 여사를 위해 운전대를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는 달리 이명박 전 대통령은 7년간 그를 수행한 운전기사를 전세금을 빌려달라고 말했단 이유로 바로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를 지낸 김유찬씨의 책 ‘이명박 리포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필자가 1998년 제2회 민선 구청장 출마를 준비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우연치 않게 거리에서 이명박 씨를 모시던 운전기사 이모 씨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지루한 법정공방으로 심신이 지쳐 있던 때였다. 그리고 캠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이 컸을 때였다. 그러나 이 기사가 거리에서조차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우리는 지난 이야기나 나누고자 인근 사우나로 자리를 옮겼다. 사우나에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그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김비!(당시 캠프에서는 나를 ‘김비’-김 비서관의 약칭-라고 불렀다) 김비 기자회견하고 난 후 얼마 안 있어서 나도 잘렸어!” 나는 흠칫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혹여 나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나 때문은 아닌 듯했다.
“왜 형님을 잘랐어요? 형님은 이 의원을 오랫동안 모셨잖아요?” 한참 정적이 흘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가 생활이 어려워서 이명박 의원에게 200만원만 꿔달라고 했어. 전세금이 올라 200만원을 갑자기 만들 길이 없었어! 바로 다음날부터 그만 나오라고 그러더라고. 그래도 성실하게 이 의원을 7년간이나 모셨는데….”
오늘 다시 또 정의가 이루어 졌습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한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해 본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죄값 잘 치르고 지옥으로 떨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