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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잊혀진 제국
게시물ID : history_187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dwinD
추천 : 9/4
조회수 : 174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11/17 01: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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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직 게임기획자에요. 

오래전부터 만들어 보고 싶은 게임 소재가 있었습니다.

독립전쟁에 대한 이야기 인데요. 뭔가 제가 독립전쟁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자료도 찾아보고 짜집기해서 1편의 대략적인 시놉시스가 완성 되었어요.

저는 게임에 뭔가 저만의 철학적인 것을 담고 싶어서 이번에 준비하는 <잊혀진 제국>은

소설의 형식으로 먼저 연재를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어요.


활동하는 사이트가 딱히 없고 오유를 자주 오는 관계로 이곳에서 

연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고 맛깔나게 쓰는 재주가 있는 편도 아니라서 

많이 부끄럽지만, 훗날 멋진 게임으로 탄생 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작 소설게시판 같은 것이 없어서... 이곳에 적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있었던 역사에서 소재를 찾은 것이니 이곳이 맞겠죠!?

시작하기 전에 대한제국의 군대에서 부터 전개되니 아무래도 생소할 수 있는

대한 제국의 계급표 먼저 알려드리고 갈게욥. <>안이 참고할수 있는 현재의 계급이예요.


자 그럼, 완결까지 무탈하게 갈 수있도록 기합 한번 넣고 출발해 볼게요!

아자!!!


잊혀진 제국  제 1막 -바라지-

프롤로그

1편 - 굴 속의 새끼고양이들

 

노곤하다기 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 여름의 아침이다. 한성 땅에 위치한 황성 경복궁에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완전 무장한 일본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탄약과 무기를 운반하고 있는 일본군들 사이로 말을 탄 장교들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병사들은 수레에 육중한 중화기 장비를 싣기 위해 얼굴을 쥐어짜듯 인상을 찌푸리며 애를 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준비 된 중화기가 모두 수레에 올라가자 지휘자로 보이는 장교가 말을 천천히 몰아 단상 위에서 바라보고 있던 노인에게로 향한 후 말에서 내려 보고했다.

 

"준비가 완료 되었습니다 총독님"

 

허연 수염을 턱 아래로 길게 내려 기른 그 노인은 조선 총독이자 통감인 이등박문이었다. 오늘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왔던 대한제국군을 해체 하기로 한날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한성 전역의 방위를 정비하는 참이다. 이마에 깊은 주름을 잡고 초조한 눈빛으로 군대를 바라보고 있던 그는 장교를 바라보며 나즈막한 소리로 물었다.

 

"약속 된 칙서는 아직인가?"

"아직 그것에 대해서는 전보가 없었습니다."

 

짜증스러운 듯 혀를 끄는 소리를 내며 인상을 구긴 이등박문은 퉁명스럽게 지휘관을 향해 말했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리도 늦어지는가? 칙서가 없다면 움직일 수 없다. 참정 이완용에게 연락을 취하라."

"하지만 총독님 이미 작전 시간이 다되었습니다."

 

지휘관의 말에 이등박문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더니 안색이 붉게 변하며 노기 어린 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러니 지금 당장 연락하라는 것 아닌가! 명분 없이 움직일 수 없다! 대 일본제국의 전투를 모독하지 마라!"

"! 알겠습니다!"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지휘관은 주먹을 불끈 쥐어 팔을 아래로 꼿꼿히 내려 펴며 차려자세로 크게 답했다. 이등박문은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듯 지팡이를 살짝 들어 옆쪽으로 휘휘 저어대고는 돌아서서 탄식과 함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물러터진 황제 하나 구슬리지 못하는가? 조선인들이란... 쯧쯧쯧"


 

같은 시각 남대문 방위본부 1대대에서는 젊은 참교 한 명이 입 꼬리가 귀에 걸칠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거울을 보고 정모를 고쳐 쓰고 있었다. 참교의 뒤로는 그런 모습이 우스워 보이는지 졸병 하나가 문에 기대어 삐딱하게 서서 팔짱을 끼고는 피식 웃으며 서있다.

 

"한 참교님, 입이 귀에 걸치셨습니다. 그리도 좋으십니까?"

 

빈정대는 병사의 질문에 한참교라고 불리는 사내는 고개를 앞으로 빼어 더 가까이 거울을 보면서 정모의 차양 양 끝을 멋을 내듯 살짝 구부리며 답했다.

 

"좋다마다! 최상졸 자네는 내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왔는지 모를 걸세. 그토록 바라던 부교 진급이니 어찌 아니 좋을 수 있겠나? 얼씨구나~"

 

한 참교는 정모 차양을 원하는 대로 슬쩍 휘게 만들어 놓고는 신이 절로 나는 듯 어깨 춤을 덩실거리며 움직여 댔다. 참교의 이름은 한치웅. 총기류를 아주 귀신처럼 다루는 달인 중에 달인이다. 함경도 지방에서 유명한 포수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총기를 가까이에서 접했기 때문에 무과의 사격시험과 병기과목에서 으뜸생도로 꼽혔던 이력이 있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을미사변의 참혹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라왔고 그 영향으로 인해 두 번 다시 처참한 역사를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군에 입대했다. 치웅은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격술과 병기에 대한 지식을 다른 병사들에게 알려줘 강력하고 유능한 군인을 육성하는 것에 뜻이 있었고 참교에서 부교로 진급하게 되면 대한제국 무관학교에 교관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진급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었다. 그러던 중 1909 8 1일자로 부교 진급이 확정 되었으니 날 듯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나저나 참령님께서는 아직도 외출 중이신가?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 말일세"

 

병사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치웅의 말에 답했다.

 

"참령님께서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참교님은 모처럼 정복을 빼 입으셨으니 탄약 운반작업은 제가 주도해서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따라 왜놈들이 왜 이리 닥달 하는지 모르겠네요."

 

"난리 피우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탄약과 폭약을 모조리 옮기라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상부의 지시이니 따를 수 밖에... 아무튼 그럼 부탁하네 나도 진급신고를 마치는 대로 도우러 가겠네"

 

"알겠습니다. 병졸 전원 집합!!!"

 

최상졸이라는 병사는 담배를 땅으로 떨어트려 밟아 뭉개 끄고는 큰 소리로 소집령을 외치며 빠져나갔고 치웅은 최상졸이 나가자 벽 쪽에 놓여진 의자에 앉으며 상의 주머니에서 진급명령서를 꺼내 펴 보이고는 뿌듯한 미소와 함께 바라봤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병졸들은 일본군의 감시아래 바삐 움직이며 탄약고에서 탄약과 폭약을 꺼내 수레에 싣는 일에 열심이었다. 연병장으로 꺼내놓은 탄약을 담은 짐짝이 대부분 수레에 실리고 있을 때쯤 본부로 들어오는 두터운 나무 대문이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대장인 박승환 참령이 들어섰다.

 

"부대 차렷! 대장님께 경례!"

 

참령이 모습을 나타냄과 동시에 최상졸은 구호를 외치며 경례를 했다. 박승환 참령은 무슨 심각한 일이 있었는지 대충 한 손으로 답례를 받아내고는 짙은 한숨과 함께 재빨리 병사들 사이를 가로질러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최상졸은 아래 후임에게 운반 작업 마무리를 맡기고는 한치웅이 있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한 참교님! 한 참교님! 참령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래!?"

 

한치웅은 읽고 있던 무기서적을 퍽 소리가 나도록 급히 덮어버리고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최상졸에게 물었다.

 

"참령님께서는 기분이 좀 어때 보이시던가? 내 오늘 진급신고가 끝나면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이네"

 

최상졸은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미간을 찌푸렸다.

"글쎄요... 평소와는 좀 달리 보였습니다. 보통 때라면 환히 웃으시면서 차려자세로 답례를 받으시는 분이신데 오늘은 뭔가 있어 보입니다."

 

"? ? 어떠셨길래 그러는 겐가?"

"제가 그 일을 어찌 압니까? 그냥 답례를 대충 흘리시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집무실로 가셨습니다."

"... 병사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군인의 기본인 경례에 항상 그리 신경을 쓰시던 분이 그러셨단 말인가?"

 

최상졸은 한치웅의 옷깃을 정갈하게 펴주며 말했다.

 

"한 두번 정도는 그럴수도 있는거 아닙니까? 염려 마시고 어서 진급 신고를...."


 

!!!

 

집무실에게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총소리에 본부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한치웅은 권총을 꺼내들고는 최상졸과 함께 밖으로 달려갔다. 연병장에서는 다른 참교들과 부교, 정교들이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있었고 일본군들은 갑자기 총을 겨누더니 앉아쏴 자세로 병사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대대의 특무정교 정일준이 양팔을 들어 진정하라는 듯 손바닥을 펴서 아래로 두드리듯 제스쳐를 취하며 말했다.

 

"아 그참, 군인들이 총소리에 그리 놀라서 쓰나? 우리가 지금 알아보고 있으니 총을 거두고 하던 일들이나 마저 하시게."

 

한치웅은 연병장의 병사들과 부사관들을 뒤로 하고 집무실로 곧장 달렸다. 이 좋은 날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허겁지겁 달려 도달한 집무실에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하고 울고 있는 위관급의 장교들과 머리통이 박살 난 채 죽어 있는 박승환참령이 있었다. 치웅은 권총을 잡았던 손에 힘이 풀리며 축 느러졌다.

 

".. 이게 무슨... 진급 날 이 무슨..."

"진정하게 한참교. 지금 우리는 국운이 걸려있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네."

 

침착하고 부드럽기로 소문난 1중대 중대장 김중환정위가 한치웅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치웅은 정위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눈알을 굴리며 집무실 안의 상황을 탐색하기 바빴다. 참령의 시신 옆에는 참령의 권총이 나뒹굴고 있었고 집무실 안의 모든 창이 닫혀있는 것을 보았을 때 암살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자살? 자살인가? 치웅의 눈은 박승환 참령의 책상으로 재빠르게 향했다. 그리고 곧디 곧은 박승환참령 특유의 글씨체로 써져 있는 글귀를 발견한다.

 

'군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인데 나라가 망하면 군인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치웅은 맥이 탁 풀렸다. 자살이구나... 그 고결한 박승환 대대장님께서 자결을 하셨구나. 그런데 나라가 망하다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 망국의 국면을 막아보고자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더욱 결연한 자긍심으로 제국과 황성을 수호하기 위해 충성을 다하자 하지 않았던가? 치웅의 머리 속은 싸리비로 수 차례 휘저어 놓은 양 얽혀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교차하며 지나갈 때 김중환 정위가 다가와 치웅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다독이듯 말했다.


"냉정해져야 하네 한치웅참교. 오늘 폐하의 칙서가 있었네.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한다는 내용의 칙서가 말일세. 박승환 참령님께서 오늘 오전에 용산에 있는 일본군 사령부로 불려가신 이유가 칙서를 전달 받으시러 간 것이라네."

 

한치웅은 김정위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국모를 무참히 시해했던 왜놈들에게 다시금 황실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김 정위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암, 암 이라고 대답하고는 이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 말이 모두 맞네. 하지만 해산하지 않으면 폐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될 수 있어. 더군다나 어떻게 해보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좋지가 않다네. 왜놈들이 대한제국의 무기와 탄약을 모조리 압수해 버린 상태야. 우리 대대가 마지막 차례이고 연병장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왜놈들이 점거한 상황일세. 딱히 방도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야."

 

흥분을 가라 앉히는 낮고 부드러운 김 정위의 말에 치웅도 냉정함을 되찾으려는 찰나 박승환 참령의 시신 옆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던 남상덕 참위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대대장님을 따르겠습니다. 더 이상 왜놈들에게 국권을 휘둘리지 않도록! 이 자리에서 사지가 찢겨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제국의 투지를 만천하에 보여 줄 겁니다!"

 

시뻘겋게 충혈 된 남상덕 참위의 눈에는 광기마저 돌아 보였다. 눈물과 침 그리고 콧물이 서로 뒤엉켜 뭐라 할 수 없는 타액을 입술로 튀겨대며 한이 서린 분노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고는 밖을 향해 튀어나가려던 찰나 김 정위가 뒤에서 매달리듯 붙잡고 말리기 시작했다.

 

"이봐! 남 참위! 지금 그런 무모한 행동은 마지막 남은 우리마저 한 순간에 시체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 정신을 차리고 차근차근 생각해보게나!"

 

확실히 탄약과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의 전투는 무모했다. 불길을 향해 날아가다 한줌의 재가 되어버리는 불나방과 다를 바 없는 모양새다. 치웅도 김정위의 생각과 같았다 그래서 남 참위를 함께 붙잡으려던 때에 갑자기 남 참위가 팔꿈치로 김정위를 휘둘러 쳐 널브러지게 만들었다.

 

"어차피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저항조차 못하고 죽는 것보다 밟혔을 때 사정없이 꿈틀대다 찢겨져 죽겠습니다!"

 

남참위는 결의에 찬 말을 하고는 밖으로 뛰어나가며 외쳤다.

 

"일어나라! 대한 제국의 병사들이여! 우리가 제국의 최후의 희망이다! 대장님의 뒤를 따르자! 왜놈들을 모조리 쏴죽이고 황제폐하와 제국을 수호하자!!!"

 

남 참위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얼굴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악을 쓰며 병사들을 동요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권총을 꺼내어 말을 타고 있는 일본군 지휘관의 머리통을 향해 총을 쏴 즉사시켜버렸다.

 

밖에서 상황을 중재하려던 특무정교 정일준의 동공이 눈알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졌고, 그 순간 총구를 겨누고 있던 일본군의 총에서 불을 뿜으며 탄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 타타탕!!!! !!!

 

집무실에 있던 치웅과 위관급 장교들은 일순간에 밖으로 뛰쳐나가며 총을 꺼내 교전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무기도 없이 일하던 병졸들은 무참히 쓰러져 갔고 살아남은 병졸들은 각자 총을 꺼내와 전투에 응했다. 교전사격소리가 남대문 일대의 정적을 깨트렸고 주민들은 놀라 대피하기 바빴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남대문 방위본부로 일본군의 지원병력이 증원되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정일준 특무정교가 몸을 낮춰 김 정위에게 달려가 말했다.

 

"중대장님, 이렇게 된 이상 대대의 총 지휘를 맡으셔야겠습니다. 지휘와 목표 없이 전투를 벌일 수 없죠."

"알겠네. 지금 우리 병력은 어느 정도 되는가?"

"대략 400정도 입니다. 왜놈들의 수가 아직은 적으니 탄약과 무기만 확보한다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습니다."

"나도 생각이 그렇다네. 근데 문제는 이미 왜놈들이 점거하고 있는 탄약을 어떻게 탈취해야 하는가가 문제일세. 더군다나 급작스럽게 전투가 벌어져 소통 또한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정일준은 잠시 생각에 빠진 후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우선 집무실 안에 있는 물건들을 밖으로 죄다 꺼내놓고 방어벽을 세워 병졸들의 피해를 줄이면서 교전을 계속하고 몇몇 정예대원을 선출해서 벽 뒤로 넘겨 후방을 치면 어떨런지요?"

 

"후방을 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왜놈들의 수는 지원병력으로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날겝니다. 지금 수적으로 유리할 때에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어차피 이제 이곳을 최후의 진지로 삼아야 할 테죠. 우리 대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와 탄약을 한시라도 빨리 확보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좋소. 당장 움직이도록 하게! 그런데 정예대원 선출은 어찌할겐가?"

"사격술이 기막힌 녀석들이 있으니 그 놈들을 보낼 생각입니다. 그쪽은 우선 믿어주시죠."

"알겠네. 특무정교의 방침대로 하겠네. 어서 움직이시게나."

 

말을 마치자마자 김 정위랑 정 특무정교는 갈라졌다. 김정위는 위관급 몇 명과 함께 집무실로 들어가서 안에 있는 농이며, 선반이며 죄다 꺼내와서 연병장을 향해 내던졌고 특무정교는 구석에서 교전하고 있던 한치웅에게 갔다.

 

"야 한치웅이 해야 할 일이 생겼다."

"? 무슨 말씀 이십니까?"

"지금 수적으로 우리가 유리하니 양동작전을 쓸 생각이야. 네가 너네 소대아이들을 데리고 집무실 뒷벽을 넘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왜놈들 뒷통수에 총을 쏴제끼는거야."

 

한치웅이 벽에서 몸을 빼어 조준하여 일본군의 소총수 한 명의 이마를 향해 정확히 권총을 발사해 즉사시키고는 다시 벽으로 몸을 붙이며 엄폐했다.

 

"왜놈들은 이미 완전 무장한 상태인데 병력이 조금이라도 빠지면 기울 수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왜놈들이 저게 다 일거라고 생각해? 완전 무장한 애들이 더 늘어날거다. 지원이 안 올 수가 없어 한시라도 빨리 지금 교전을 정리하고 탄약을 확보해야 된다고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가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분명 특무정교의 말이 맞다. 이미 일본군은 증원을 결정 한 상태이고 그렇다면 순식간에 숫자가 불어날 것이다. 치웅은 특무정교를 보고 고개를 힘껏 끄덕 인 뒤에 휘파람을 있는 힘껏 불었다최상졸을 포함한 몇몇이 치웅을 바라봤고 치웅은 오른손을 들어 살짝 휙 하고 뒤쪽으로 넘겨 보이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10명 정도의 병졸이 일본군 쪽을 향해 총을 난사하여 몸을 숙이게 하고는 치웅이 있는 벽 쪽으로 달려 들어왔다. 치웅과 병졸들은 벽에 등을 붙이고 엄폐한 상태로 정일준 특무정교의 작전을 설명 받고는 본부 집무실 뒤편의 벽을 향해 달려갔다. 특무정교는 치웅이 벽을 넘기 전에 2알의 폭탄을 손에 쥐어주며 힘껏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잘 해야 한다. 실패하면 죄다 이 안에서 죽는 거야."

"걱정 마십시오. 왜놈들의 뒤통수에 주먹만한 총알구녕을 내주겠습니다."

 

치웅은 환하게 웃어 보이고는 훌쩍 담을 넘었다.


 

한편 황성에서는 이등박문과 이완용 참정이 대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참정 옥쇄를 본인이 찍은 게 사실이오?"

 

이완용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으며 난처한 표정을 하고는 살짝 웃어 보였다.

 

".. 그것이 총독각하께서 준비한 시각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등박문은 잔뜩 화가 났는지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쳤다.

 

"아니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자네는 어디까지 판을 만들어 놔야 제대로 황실을 움직일 수 있는 게야!?"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게 워낙... 황제폐하께서 완고하셔서...."

 

짜증의 연속이었다. 원활하게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하기 위해서 무장해제를 진행하고자 했으나 결국 황제의 의지로 해산이 된 것이 아니라는게 밝혀지면 필시 큰 저항을 마주할 터였다. 이등박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궁으로 향했다.

 

"폐하 이등박문 총독이 알현을 원한다 하옵니다."

 

순종은 나즈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군대가 말도 안 되는 연유로 해체되고 있는 판이어서 심기가 몹시 불편한 와중에 얼굴만 봐도 위액이 역류 할 것만 같은 자가 보기를 원한다니 절로 한숨이 나올 만 했다.

 

"들라하라"

 

갖은 인상을 다 찌푸리며 탄식과 함께 말을 토해냈다. 이등박문은 궁으로 들어온 후 황제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자리에 앉았다.

 

"통감께서는 무슨 일로 짐을 찾아왔소? 우리 군대의 일로 바쁜 참이 아니오?"

 

순종의 말에는 짜증과 불만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불쾌한 자신의 심기를 그대로 표출하며 쏘아붙이듯 몸을 앞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등박문은 고개를 숙인 채 피식 웃고는 몸을 낮추어 숙이며 황제의 말에 답했다.

 

"과분하게도 폐하께옵서 친히 칙서를 하달하시어 신이 수고를 덜고 있사옵니다. 폐하의 은총에 감사함을 표하는 바입니다."

"짐의 뜻이 아니오. 그것은 짐의 뜻이 절대 아니외다."

 

이등박문은 고개를 들어 순종을 보며 말했다.

 

"신은 이참정에게 전해 받은 폐하의 칙서 대로 시행해 옮겼을 뿐이옵니다. 신은 그저 대일본제국과 대한제국의 원활한 국교와 굳건한 동맹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옵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다면 노여움을 풀어주시옵소서."

 

순종은 이등박문의 말에 콧웃음을 치며 답했다.

 

"짐의 노여움이 그대에게 기별이나 있기나 하오?"

"이제 폐하께옵서는 대일본제국의 굳건한 비호로 수 많은 열강들에게서 안전하게 보위를 영위하실 수 있으십니다."

"짐은 짐의 백성들로 하여금 보호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오. 일제의 군대가 황성의 호위를 맡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소이다."

"연유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져있는지 신은 상세히 모르겠사오나 한성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향하는 대한제국군의 용맹한 용사들을 위한 청이 있어 폐하를 찾아 왔사옵니다."

 

어차피 늘 이런 식이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든 저들은 저들의 말을 하고 저들이 원하는 바만 고집하여 왔다. 황제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쏘냐 저들에 있어 황제란 그저 적당히 에둘러치고 넘겨버리면 그만인 허수아비인 것을... 순종은 그나마 귀향하는 군인들을 위한 제안이라하니 들어나 보자는 생각을 한다.

 

"그대의 제안을 고하라."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남은 여생을 보다 안락하게 보내도록 폐하께옵서 친히 귀향하는 이들에게 은사금을 하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아무런 위로 없이 귀향하는 그들을 가여이 여겨 주시옵소서."

 

이등박문의 제안에 순간 순종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울컥하며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축축한 울음이 넘어왔다. 아무런 전조 없이 하루아침에 실업를 한 군인들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눈에서 굵직한 눈물줄기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른 이는 몰라도 이등박문에게만큼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기에 주먹만한 뜨거운 울음을 삼키려 입을 찌푸려 굳게 다물고 쓰디쓴 약덩이를 삼키듯 크게 넘겨버리고는 답한다.

 

"들어보니 통감의 제안이 일리가 있소. 내 아니하여도 수고한 우리 장병들의 노고를 어찌 치하해줄지 고민하던 참이었소. 그대의 제안을 승낙하여 내 친히 은사금을 하사하겠소이다."

 

이등박문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답례했다. 그 후 일어서서 빠져나갈 때 밖에서 허겁지겁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옆을 휙 지나 순종의 앞에 엎드려 고했다.


"폐하, 남대문 대대에서 일본군과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합니다. 서둘러 조치를 취해주시옵소서."

 

순종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등박문을 향해 외쳤다.

 

"통감!!! 이 어찌 된 일인가?! 그대의 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더욱이 우리 군은 무기와 탄약이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일본제국의 군대는 전의가 없는 적을 향해서도 총을 발포하는가!!! 그것이 그대들이 자랑하는 무사도 정신이란 말이냐!!!!!"

 

이등박문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라들고는 안색이 사과처럼 붉게 상기되었다.

 

"말해 보아라 통감!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순종의 꾸지람에 이등박문은 그 자리에서 엎드려 말을 이어갔다.

 

"신의 명이 아니옵니다 폐하. 신이 속히 알아 본 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사옵니다."

"알아보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당장 그대의 군대에게 퇴각을 명하라! 짐의 군인이 단 한 명이라도 다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야!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결단코 그대를 용서치 않으리라!!!!"

", 알겠습니다 폐하."

 

이등박문은 도망치듯 빠르게 궁을 빠져나갔다.

순종은 노하여 분노에 찬 고함을 외친 탓인지 어지럼증을 느껴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하염없이 흐느낀 뒤 궁 안에 있던 환관에게 말했다.

 

"으흑, 가서 전보를 전하라. 남대문의 군인들에게 더 이상 응전하지 말고 투항하라 하여라. 짐이 지켜줄 수 없으니 스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온전히 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 전하라. 그 동안 못난 황제를 지켜주어 너무나 고맙고 짐이 눈을 감는 그날까지 결코 잊지 않겠다고 전하라. 그리고... 그리고 귀향에 부족함이 있거든 주저하지 말고 찾아와 고하라 하라. 으흐흑... 으흐흐흐흐흑"

 

환관은 황제에게 깊이 절하고는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순종은 양손으로 머리털을 쥐어 짜내듯 비비적거리며 괴로운 듯 울음과 함께 혼잣말을 토해냈다.

 

"으그흑...짐의 뜻이 아니다. 짐의 뜻이 결코 아니다...미안하오. 으흑...내 정말 너무나 미안하오... 흐흐흑"


이등박문은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진 채 일본군 지휘관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하여 한 시각도 안되어 전원 몰살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보고를 다 들은 후 옆에 앉아 있는 이완용에게 말했다.

"싸질러 놓은 똥은 궁으로 가서 치워놓았다. 군인들에게 은사금을 쥐어주라 했으니"

"?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

 

완용에 반응에 갑갑하다는 듯 한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탄식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하아...황제에게 은사금을 지급하는 것을 제안하였단 말이다. 귀향 가는 군인들에게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리하면 칙사가 날조이든 아니든 결국 황제가 군인들에게 퇴직금으로 돈을 쥐어주는 격이니 결과적으로 황제의 뜻이 되는 셈이지 않느냐."

 

이완용은 이등박문의 계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남대문은 어차피 곧 무너질 것이니 계속 응전하라 일러라. 아니 더 거세게 몰아붙여서 가급적 빠르게 정리 될 수 있도록 하라. 어차피 굴 속에 갇힌 고양이 새끼들 아니더냐?"

 

"! 알겠습니다!"

일본군 지휘관은 경례를 하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오늘은 매우 피로한 날이구나 미리 명월관에 연락을 취해놓아라.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쉬고 싶다. 조선의 어린 아이들은 쫄깃한 맛이 있으니 지친 심신이 위로 되겠지..."

 

"너무 이른 시각인지라 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준비를 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총독각하"

 

완용이 말을 마치자 귀찮다는 듯 한 팔을 덜렁 거리며 휙휙 손바닥을 휘둘러 저리 나가버리라는 듯 손짓했고 이완용은 이에 깊은 목례를 해 보이고는 방을 나갔다.

 

"죄다 고양이새끼들 밖에 없어 보이는 구나. 겁에 질려 이리 휘두르면 휙 도망가고 저리 휘둘러도 휙 도망가고... 500년의 기상 또한 총칼 앞에서는 결국 부질 없는 것일테지 쯧쯧 한심한 종자들이로고..."

 

한참이나 교전이 벌어지고 있던 남대문 방위본부에는 이미 많은 수의 일본군이 증원되어 있었다.

뒤쪽을 돌아 나온 별동대원들은 본부 대문 옆의 벽에서 급습할 때를 기다리며 치웅의 작전을 듣고 있다.

 

"특무정교님께서 주신 폭약이다. 한발을 신호로 쓸터이니 자네들은 폭발과 동시에 문으로 향하는 것이네. 알겠는가?"

 

"."

 

병졸들이 일제히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총 소리가 잦아들어 장전하는 시점에 바로 던지면서 달려들 것이니 나를 따라 돌아서 와야 하네. 그리고 뒤로 들어가자마자 자네와 자네는 대문을 닫아 왜놈들의 증원시간을 조금이라도 막아 줘야 하네. 아시겠나?"

 

치웅이 지목한 2명의 병졸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위본부에서 요란하던 총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잦아들어 아주 짧디 짧은 적막이 흐르는 찰나에 귀를 고막째 뚫어버릴 듯한 맹렬한 폭음이 남대문의 하늘로 울려 퍼졌다.

 

투쾅!!!

 

"빌어처먹을 왜놈들아!!!이제 우리차례다!!!"

 

본부의 연병장을 향해 폭탄을 던진 치웅이 고함을 외치며 권총을 양손에 잡아들고 대문을 향해 달려나갔고 

그 뒤를 최상졸과 나머지 병졸들이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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