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순
(1860년 8월 11일 <음력 6월 25일> ~ 1935년 8월 1일)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치면 왜놈 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나가 의병 하러 나가보세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 통치 받들쏘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 안사람 의병가
구한말 최초의 여성 의병장, 최초의 한글 의병가를 지음,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까지 3대가 독립운동
박차정
(1910년 5월 7일 ~ 1944년 5월 27일)
조선에서 자란 소년들이여 가슴이 피 용솟음치는 동포여
울어도 소용없는 눈물 거두고 결의를 굳게 하여 모두 일어서라
한을 지우고 성스러운 싸움으로 필승의 의기가 여기에서 뛴다.
소녀때부터 전 생애를 독립운동에 헌신,
아버지와 오빠들도 독립운동, 약산 김원봉의 아내
권기옥
(1901년 1월 11일 ~ 1988년 4월 19일)
열아홉 살 적 3.1 운동 때 내 목숨은 이미 나라에 바쳤으며
이후는 덤으로 사는 삶이었다.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3.1운동 및 임시정부 참여 독립운동
정정화
(1900년 8월 3일 ~ 1991년 11월 2일)
내가 임시 망명정부에 가담해서 항일 투사들과 생사 존몰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사사로운 일에서 비롯되었다. 다만 민족을 대표하는 임시정부가
내게 할 일을 주었고, 내가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주어지고 맡겨진 일을
모르는 체하고 내치는 재주가 내게는 없었던 탓이다. 그러니 나를 알고 지내는
주위 사람들이 나를 치켜세우는 것은 오로지 나의 그런 재주 없음을 사 주는 까닭에서일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주인
지복영
(1920년 4월 11일 ~ 2007년 4월 18일)
내 나라가 주권이 없어 지금 중국에서 유랑생활을 하지만
조선은 반드시 독립된다고 믿는다. 그러면 내가 떳떳이
한국 사람으로 살 수 있는데 무엇이 답답해서 중국인으로 살겠느냐.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의 딸, 광복군 활동 및 여성 참여 독려
김란사
(1872년 9월 1일 ~ 1919년 3월 10일)
조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다오
최초의 여성 유학생, 여성 계몽과 독립운동에 헌신, 유관순 열사의 스승
유관순
(1902년 12월 16일 ~ 1920년 9월 28일)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3.1운동의 주역이자 상징, 영원히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쉴 우리의 언니,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