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서기 228년
촉의 초대 황제 유비가 사망하고도 5년이 지난 후
촉의 승상 제갈량은 5년동안 쌓은 국력을 바탕으로 유비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북벌에 나섭니다.
한번에 위의 천수, 남안, 안정 3군을 얻는 잭팟을 터뜨리고 위기의식을 느낀 위도 조진, 장합 등의 용장을 파견해 1차 북벌은 본격적 전쟁에 접어듭니다.
이 때 요충지 중 하나였던 가정을 촉의 입장에선 무조건 지켜내야 했는데 하필 조운, 오의 등의 숙장들은 다른 곳을 맡고 있는 상태라 빼올 수가 없는 상태.
이 때 제갈량은 후계인재 양성을 겸해 평소 자신이 신임하던 마속을 사령관으로 삼아 가정 방위를 명령하는데......
실제 부사령관 왕평은 마속이 잘못되었다고 부득부득 싸우지만
결국 마속이 고집을 안 굽히느라 일군을 떼어 산이 아닌 길목에 자신의 군을 배치했습니다. 같이 등산 안했어요.
그리하여 마속의 일군은 전멸.
그나마 산 외의 길목에 진친 왕평이 구하러 와준 덕에 목숨은 건집니다.
덕택에 처벌이 난무하는 가정 패전에서도 왕평 혼자만 승진.
그리고 그 결과 1차 북벌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 이긴 싸움 말아먹은 게 분했는지
결국 제갈량과 조운은 황제 유선에게 표를 올려 스스로의 벼슬을 깎아 사죄합니다.
그리고 이 패전의 가장 큰 책임자 마속에겐 결국 사형이 내려지고
여기에서 읍참마속의 고사가 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