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아주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내가 마트에 가면 항상 수입맥주를 일일이 살펴보던거. 그렇게 가만히 서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한병이라도 살라치면 다른 것들 보고있다가도 귀신같이 나타나서 원래 자리로 돌려놓던거. 그러면서 너는 어머님드릴 막걸리 사야된다면서 캔막걸리 한묶음씩 사가던거.
한동안 마트에 가도 맥주코너는 거들떠도 보지않다가 오늘 장보러가면서 오랜만에 수입맥주코너앞에서 한참을 고민했어. 평소에 좋아라했던 아사히, 기네스, 칭타오를 두고 고민하다가 레페 브라운을 봤어. 매번 사려고 해도 블론드밖에 없어서 아쉬웠는데 오래간만에 들린 맥주코너에서 브라운을 볼줄이야. 얼른 레페 브라운을 두개 집었는데 그게 마지막 레페 브라운이었어. 오래간만에 느낀 행운이어서 기분이 무척 좋아졌어.
생각지도못한 행운은 더 큰 기쁨을 주는것 같아.
난 아주 못된 습관이 생겼어. 길을 걸어가면서 정면을 보기보다 항상 차도를 살펴. 특정 차종을 찾아내고 그렇게 차를 찾고 나면 번호판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어. 네가 타고 다니는 차를 찾고 그 차의 번호판을 확인해. 웃기는 것은 7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한번도 널 발견하지못했다는거야. 네가 지나갈법한 시간에 맞춰서 운동을 하러가거나 장을 보러가면서도 말야.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순간에 네가 지나갔어. 여느 날처럼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걷고 있는데 익숙한 차가 보였어. 뭐, 워낙에 네 차가 특이해서 보는 순간 너이겠구나라고 판단을 내렸지만 그래도. 순식간에 눈이 번호판을 향했고 번호를 확인한 후에는 운전자를 확인했어. 웃기지도않게 전혀 기대치도 않았던 시간에 네가 지나가더라. 멀어지는 차 뒤꽁무니를 보면서 한참 서있었어. 넌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더라. 여전했어. 교차로에서는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아대던 모습. 위험하다고 했더니 빨리 가줘야 뒷차가 안답답해하고 신호를 받아가 지나갈수 있다는 네가 떠올라서 갑자기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나왔어. 운전대만 잡으면 전투적으로 변하는 네가 떠올라서 웃었어. 넌 정말 여전하더라.
난 아주 많이 변해버렸는데 말이지.
어두운 아파트 놀이터 삐걱이는 그네에 앉아있어. 오래토록 찾지않던 그 자리에 앉아서 골목 끝자락을 바라봐. 그 곳에서 어느 순간 네가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내 깊은 한숨에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눈을 감고 뒤로 걸어가. 한걸음 걸을때마다 네가 스쳐가는 기분이 들어. 꺄르르 웃는 네가 스쳐가고, 부장님이 짜증나게 군다고 투덜대던 네가 스쳐가고 정색하고 화내던 네가 스쳐가고, 미안하다고 울던 네가 스쳐가고. 분명 눈을 감고 있었는데 네가 보여. 동그랗게 뜬 네 눈을 한참을 봤어. 아주 오랜 시간을.
그리고 다시 눈을 떳을땐 아무것도 보이지않았어.
어지러운 걸음을 옮겨서 집으로 돌아왔어. 술을 마신지 한참된것 같은데 아직도 많이 어지러워.
조금만 더 좋아할께. 세상 사람 모두가 알아도 너는 모르게 아주 조금만 더 좋아할께.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