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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서클 | 서건 대표] FC서울이 2차 전지훈련으로 가고시마에 간다. 물론, 전지훈련을 일본으로 가든 태국으로 가든 그건 FC서울의 자유다.
그러나 나는 FC서울이 자유를 즐기기 이전에, 자신들의 뿌리와 자신들의 연고를 스스로 반추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해서, 일본 전지훈련에 대해 다시 한 번만 더 생각을 했으면 한다.
물론, 이런 나의 의견에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불매운동은 자유다.
라고 반박할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맞는 말들이다. 정치가 스포츠에 끼워져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매운동 역시 자유다.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일본 제품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오롯이 소비자의 마음이다. 관광이나 전지훈련도 똑같다.
그러나 적어도 FC서울이라는 팀은 위 두 가지의 말이 내포하는 가치보다 더 가치 있는 책임을 가진다. FC서울은 대한민국 제 1의 도시인 서울을 대표하며, 대한민국의 기업 GS를 대표하는 팀이다. 그들의 연고는 서울특별시고, 그들의 모기업은 GS다. 그들은 유니폼에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을 새겼었으며, 가슴팍에 GS 상품명을 새겼다.
이번 글에서는(정말 많은 반박과 욕이 들어오겠지만 오래 살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위 문장들보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설명해보려고 한다.
#. 정치는 스포츠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자,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정치가 중요한가, 스포츠가 중요한가?”
그래, 맞다. 설사 정치가 더 중요하더라도, 최대한 서로가 부딪히지 말아야 한다. 모르는 바 아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정치와 스포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정답은 정치일 것이다. 대한민국과 축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대한민국을 선택할 것처럼.
물론, 너무 성급한 질문이다. “축구가 아닌 대한민국을 선택할 만큼 대한민국이 망할 위기에 처해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긍정의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G20에 속한 나라가 왜 망할 위기에 처해있겠는가.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외세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가?”라고 다시 한번 질문해보자. 우린 이 질문에 긍정의 답을 내놓기 힘들다.
헌법에 나와 있기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제의 강점 속에서 10여년을 지낸 조선의 민중들은 일제의 부당함을 깨닫고, 그 부당함에 항거하기 위해서 3.1 운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3.1 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의 지배가 무효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했다. 물론,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은 그 자체로도 무효였다. 여기에 3.1 운동 이후부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민중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부정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 설립 이후부터 한반도의 주인은 대한민국이 되었고, 조선 총독부는 한반도를 강점한 ‘괴뢰정부’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일본의 불법적인 한반도 지배에 항거한 조선 민중과 그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한 독립 운동가들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우리의 정통성을 ‘국가적 차원에서’ 짓밟으려 하고 있다.
일본의 전범기업들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수많은 조선인들을 학대했다. 그들은 조선 사람들에게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조선 사람들을 차별했고, 조선 사람들에게 신체적이고 정신적 폭력을 가했다. 3.1 운동 이전의 폭압적이고 불법적인 정치상황과 다를 게 없었다. 아니, 더했다.
그래서 당시 강제징용의 피해자였던 어윤택과 이춘식씨는 1997년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2003년까지 이어진 소송의 결과는 ‘상고기각’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판결 내용에 있었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한반도 지배를 단 한 번도 불법이라고 판단한 적이 없다. 강제징용 소송 역시 동일했다. 일본은 어 씨와 이 씨에게 일본법을 적용하여 판결을 내렸다. 한마디로, 일본은 강제징용 소송에 있어 한반도 지배는 합법이었다고 못을 박았다.
반면 대한민국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에서 일본 전범기업 신일본제철에게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결코 소멸될 수 없는 개인의 청구권을 기반으로, 죄를 지은 기업들에게 그 죗값을 치르도록 명령했다. 우리 대법원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 아래 일제강점기의 법령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일본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일본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판결을 보고 ‘국가적으로’ 경제도발을 시행했다. 모두가 아는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적극적으로 한반도 지배가 합법이라고 관철하려 하고 있다.
우리의 정통성은 일본의 불법적인 한반도 지배를 부정하는 데 있다. 또한, 그러한 불법적인 한반도 지배에 대항한 3.1 운동과 임시정부 설립에 담긴 정신을 계승하는 데 있다. 헌데 일본은 이러한 우리의 정통성을 뿌리째 부정하고 있다. 한반도 지배를 합법이라고 하는 순간 3.1 운동은 폭동이 되고, 임시정부는 불법정부가 된다. 일본은 이러한 주장을 경제 도발을 통해서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경제를 끼워 넣었다. 악질적이다. 사람을 피떡으로 만들어놓고 ‘김앤장 로펌’에서 변호사 구해다가 무죄판결 받는 행동과 다를 게 없다. 적어도 이 행동이 ‘정치에 스포츠를 끼워 넣는’ 행동보다는 백배 천배 나빠 보인다.
나는 그래서 이번 이슈만큼은 정치가 스포츠에 끼어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는 ‘정치적 맥락이 스포츠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정통성을 일본이 ‘국가적으로 나서서’ 부정했다. 또한, 평화를 지향하려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역시 일본이 ‘국가적으로 나서서’ 부정했다. 그 부정의 방법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에 경제를 개입시키는’ 것이었다.
축구 더 잘하려고 일본에 전지훈련을 가는 것보다 일본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기 시작하는 일본에 저항하는 게 더 급하고 더 중요한 일인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그러한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강제할 것이 아니라, 깨달아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FC서울도 이러한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 일본과 똑같은 나라가 되면 안 된다는 의견에 대한 반박
그러나 여기서 반박이 다시 나온다. 똑같은 나라가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한 짓과 똑같은 짓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 똑같은 나라가 되면 안 된다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을 했을 때, 우리가 응징사격으로 갚아줬다면, 대한민국이 북한과 똑같은 나라가 되는가? 아니다. 잘못한 건 북한이다. 이번 사건도 똑같다. 잘못한 건 일본이다. 그리고 우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주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일본은 경제를 개입시켰고 우리는 스포츠를 개입'시키자'고 하는 것이며, 우리의 경우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일본에게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매운동은 자유다!”라는 의견에 대해서
다시 말하지만, FC서울의 전지훈련을 국가적으로 막아야 한다느니, 가지 말라느니 할 생각은 없다.
일본의 공격에 저항하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이 우리에게 경제도발을 하면 당연히 우리 국민들 중에는 ‘뭐 우리가 어쩌겠어.’라며 계속 일본에 가고, 일본 물건을 사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게 죄는 아니다. 그것 역시 자유다. 하지만, 그게 자유라고 해서 ‘일본에 가고, 일본 제품을 사는 게 일본의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역사인식과 외교정책에 저항하지 못하는 태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더구나, 서울을 대표하고, GS를 대표하는 팀이 ‘남들은 태국으로 감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본으로 가서 전지훈련을 한다는 것은 ‘서울과 GS를 대표하는 팀이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과 외교정책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게 과연 당당한 일일까?
만약 당당하려면, 서울을 대표한다는 자격과 GS를 대표한다는 자격을 가지고도 당당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있는 서울과, 독립운동을 직, 간접적으로 지원한 허만정 독립투사가 세운 GS 앞에서 FC서울이 당당할 수 있는가? 이순신 장군은 왜 일본과 싸웠으며, 허만정 창업주는 왜 일본에 맞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는가? 적어도, 일본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옳지 못한 경제보복을 하는 와중에도 돈 꼬박꼬박 내가며 가고시마에 가기를 바래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GS의 노력에 FC서울도 부응했으면 한다.
불매운동을 하지 않는 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 특히, 대체재가 없어서 직업적으로 일본 제품을 써야만 하는 이들을 비난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FC서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또, FC서울은 전지훈련에 대해 분명한 대체재를 가지고 있었다. 전지훈련 일정은 12월에 정해졌는데, 시간 상으로 태국이나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전지훈련 장소를 변경한 시간적 여유가 없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많은 K리그 팀들이 일본 ㅈ너지훈련을 취소한 바도 있다. FC서울은 서울시와 GS에게 사회적인 책임이 있는 구단이다. 그렇기에 FC서울은 그 책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봤어야 한다.
#. 전북 현대는 왜 욕 안하냐고?
그렇다면, 쿠니모토를 가진 전북, 츠바사를 가진 대구와 FC서울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냉정하게, 쿠니모토나 츠바사나 가고시마나 똑같은 상품이다. 가는 거나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똑같이 일본 사람이 돈을 벌게 된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가 분명 있다. 아니, 미묘하지 않다. 적잖은 차이가 있다. 일본 사람과 일본 정부는 확실히 구분해야한다.
가고시마 전지훈련에는 가고시마 시가 굉장히 많은 개입을 한다. 시 차원에서 전지훈련 유치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인프라 역시 시가 주도해 정비한 것이다. 가고시마에서 전지훈련을 한다는 것은 곧, 가고시마 시 주도의 관광산업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고시마 시는 일본 중앙정부와 가고시마 현의 지원을 토대로 돌아간다. 현재 가고시마 현의 현지사는 자민당 계열이 아니지만, 현의회 51석 중 34석이 자민당 의원이다. 중의원 4석 중 3석이 자민당 소유고, 참의원 2석 중 2석이 자민당 소유다. 그리고 일본 중앙정부 수장은 모두가 알고 있는 아베 신조다.
그렇기에,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것은 일본의 관광산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가고시마 시, 가고시마 현, 나아가서는 일본 정부의 지방 산업 분야에 있어 숨통을 틔워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일본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 일본인은 일본 정부의 소유가 아니다. 일본 정부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중앙정부-지차체’관계와 ‘중앙정부-국민’의 관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쿠니모토가 담배를 해서 일본에서 팽당했니, 재일교포니, 이런 무의미한 이유는 대지 않겠다. 다만, 일본의 지자체와 일본인은 분명 다른 차원에서 보는 게 옳다.
현재의 역사분쟁 및 경제 갈등은 한-일 간의 싸움이 아니다. 한, 일에 남은 양심세력과 한, 일에 남은 잔존 군국주의 세력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개인을 상대로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이번 역사분쟁과 경제 갈등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일본인을 팀에 들이지 않는 행위는 인종주의고 국가주의인 것이다. 국가적으로 진행 중인 비이성적 외교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자발적 책임감을 통해 그 국가의 정식 기관에 되갚는 것, 그 국가의 산업 기반에 되갚는 것과는 다르다. 인종주의, 국가주의는 외교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국가 간의 충돌 그 자체가 아니다. 인종주의, 국가주의는 그 충돌로부터 산출된 개인, 단체에 대한 편견과 혐오다.
사실 이렇게 보면 인종주의 및 국가주의 역시 일본이 먼저 시작했다. 전쟁범죄를 저질러놓고도 ‘개인’에 대한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그것이다. 적잖은 일본 정치인들이 아직도 한국인을 조선인이라고 칭하면서 식민지 시절을 추억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우라와 레즈가 한국인 영입 불가 기조를 세운 것이 그것이다. 경제 논리 속에서 자발적으로 상품을 소비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인종주의가 아니다.
부디, 한 번만 더 생각해봤으면 한다. 팬들도, 구단도. 무책임한 행동은 바로잡으면 된다. 경험만큼 소중한 건 없다. 경솔한 선택도 분명 경험이다. 바꾸면 된다. 다만, 바꾸려면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느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려 한다. 일본 전지훈련을 두고 FC서울 구단에게 “가지 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갈 수 있다. 그들은 죄가 없다. 오히려 죄는 K리그를 응원하면서 서울에 살며, GS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는 나에게 있다. 나에게 ‘FC서울이 소통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아는 구단이라고 생각’한 잘못이 있을 것이다. 다만, 부디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 그리고 적잖은 서울 시민과 GS 기업 소비자들, K리그 팬들이 느끼는 부끄러움을 대신 느껴주길 바란다. 적어도 FC서울이 애가 아니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회적 책임은 질 줄 알리라 생각한다.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348632&memberNo=65257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