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준비하는 비전공자가
역사 참고서를 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하나 올려봅니다.....
고구려가 낙랑을 봉쇄하려 서안평을 건드리자
위는 관구검을 통해 고구려의 기갑군을 털고
환도성까지 역관광하는데 성공했다합니다.
그 뒤로 동천왕은 탈주낚시를 통해
밀우와 유유의 분전으로 역전승에 성공했다 하고요.
아무튼
관구검이 환도성까지 초토화시키고 나서
"고구려 허접이네. 깝 ㄴㄴ" 의 의미로 세운것이
관구검기공비라 하는데
동천왕은 관구검에게 역관광을 되둘려주며
쫓아냈는데 어떻게 여지껏 관구검기공비를 놔뒀을까...환도성을 재탈환 한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올리려고 했는데.....(1차 질문수정)
했는데.....
질문을 위해 검색하다보니
관구검기공비가 지안에 있다더라고요?
그런데 지안이라하면
호태왕릉비를 비롯하야 수많은 고구려유적들이 있는 후일 고구려의 영토였는데
왜 거기 떡하니 세워져있는
같잖은 정신승리의 관구검기공비를
그냥 놔뒀을까 하는 질문을 올리려고.....했는데...(2차 질문수정)
보다 확실한 질문을 위해 검색하다보니
현 관구검기공비가 그때의 관구검이 세운것이 아닌
후손에 의한 공적비이다 라는 얘기도 있고
삼국위서 관구검열전에서의 내용을 토대로
얼추 그내용이랑 대충 맞으니 이게 아마 관구검기공비일것이다
라는 얘기도 있네요.......??? ㄷㄷㄷ
그럼....
관구검에게 털리긴했는데 후대까지 갈것도 없이 동천왕이 다시 쫓아내고
미천왕때 서안평도 완벽하게 점령 한 마당에
삼배구고두급 치욕도 아니고
딱히 원한이라 할것도 없는 관구검기공비를
전공자도 아닌 제가
시험공부용 역사참고서에서 봐야 할만한 이유가 있긴 할까요...??
(최종 3차 질문으로 변질..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