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얘기하다보면 쉽게 걸리는 함정이 있습니다.
결과를 아는 현대인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결과에 대한 원인을 마음대로 추론하는 것.
현재의 시각만으로 과거를 해석하는 것.
마지막으로 이미지를 먼저 만들어 놓고 내 입맛대로 정의내려버리는 것
현대 경제학자들이 비웃음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어떤 치명적인 경제적 사건을 전혀 미리 추론하지 못하다가 결과가 나온 후에 그 원인을 잘난듯 분석하여 내놓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현대인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기 전의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완벽히 분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건 과거의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재미있는게 우리는 현재의 자신의 행동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이상하리만치 과거의 역사 인물들에겐 한없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는 겁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전쟁에 대해서 (백성들이 반발을 하고 고생을 하건말건) 왜 전시체제로 대비하지 못했느냐.
200년후 세계 정세가 어떻게 급변하는데 조정에 앉아서 상복을 1년을 입니 3년을 입니로 그렇게 논쟁을하냐..나라가 망하는 원흉이 되느냐...등등.
내가 역사적 결과를 알고 있다는 정보적 지위를 이용하여,
우리와 똑같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과거의 사람들에겐 한 없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거지요.
이건 비단 200년 후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어떠한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망하니
민주주의가 뭐라고 부정투표니 아니니 근거도 빈약하고 민생과 관련도 없는 사건을 가지고 온 국가가 분열에 휩쌓였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망했다. 라고 우리 후손이 현대의 우리를 비난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결과를 아는 우리가 현대의 시각으로 과거를 해석하기에 나오기도 합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대를 잇는 대화라고 해서 모든 사건과 개념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에겐 그들이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가치와 사상이 존재합니다.
그 가치와 사상이 과거와 현대와 이어지는 부분도 있고 이질적인 부분도 존재합니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되고 착하게 살아야한다처럼 현대와 상통하는 부분도 있지만,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권력자는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야한다는 것처럼 과거에 없던 전혀 다른 개념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과거에 전혀 없는 현대적 개념을 과거에 억지로 개입해버리면,
세종대왕은 독재자다. 라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교훈을 바탕으로 현대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하는 부분은 무분별한 인종차별주의로 발생한 KKK나,
특정 인종에 대한 멸시로 일어난 학살, 극단적 민족주의/국가주의로 일어난 인권 탄압 등...
행동적 과정에서 일어난 시대상을 반영하더라도 납득할 수 없는 비인간적 비인륜적인 부분을 비난하며 그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지,
결과가 부정적이니 그 과정에 일어난 현대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가해 해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 역사를 이미지로 해석하려 드는 것.
재미있는 게 임진왜란 때 도망쳐 막연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욕한 선조는 알지만,
홍건적이 쳐들어 오자 안동으로 도망치고 백성들은 도적에 죽임을 당하는 와중에도 뱃놀이를 즐긴 (개혁군주로 알려진) 공민왕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일본에 당하기만 한 조선과 선조는 알아도,
항시 국경을 넘어와 문제가 됐던 여진족을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명령해
7개의 부락을 점령하고 여진족 1만명을 죽인 선조시대 때의 조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성리학을 조교화 시키고 조선의 탈레반으로 알려진 송시열은 알지만,
오로지 군주만이 예법을 실행할 수 있고 존비귀천을 실행하기 위해 예법이 존재한다는 (사문난적으로 몰린)윤후를 비판하며,
유학적 성인은 인간으로서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여성도 학문을 배우고 그걸 통해 사람답게 살수 있다 주장하고,
양반에게도 군역을 지워야하며 호포제를 실행해야한다 주장한 송시열에 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죠.
상복을 1년 입는지 3년입는지로 그렇게 논쟁을 했던 것에대핸 알아도,
같은 시기 너무나 주관적인 수취체제인 공납의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동법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민생에 도움이 되느냐,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걸 어떻게 보완해야하는가... 대해 온 조정이 토론한 것 역시 동시에 진행한 것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습니다.
즉, 막연한 이미지로 저 나라는 이랬고 저 사람은 저랬다라고 정의 내리고 그 생각을 고착화시켜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긍정적인 것은 한계점만 부각하고 부정적인 것은 그 자체를 부각시켜,
'그러니 조선이 망했지'라고 정의내려져 버리는 것입니다.
더 문제는 이런 이미지에 의한 역사적 해석 때문에, 진짜 비난받아야할 조선의 모습을 비난하기가 망설여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나면 김대중이나 노무현 대통령 역시 완벽한 대통령이 아니었는데,
도대체 있지도 않은 일이나, 인과관계도 없는 완벽한 오해로 과도한 비판을 받으니
그들이 진짜 저질렀던 어떠한 실책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그런 역설적인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사람이기에 역사를 한 없이 객관적으로만 바라본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또한 어떤 결과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반성적으로 원인을 내부에서 찾으려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조선에 대한 인식과 해석은 너무나 극단적 결과론에 치우쳐 과도한 오해를 낳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조선의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 일기 등등..
그런 문서들에 대해 20세기 초 서양사람들은 너희는 그런 쓸데 없는 서류들이 많으니 나라가 개판이 된 것이다... 라고 했던 걸 보면,
국가의 문제점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종이 한장 차이인가를 때론 느끼곤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