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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기사에 달린 리플...
게시물ID : sports_38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창해역사
추천 : 29
조회수 : 95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6/06/16 15:43:48
이분은 진정한 애국자 조회 5146 추천 241 2006/05/30 08:59 
  
 
madalf9  IP 125.240.xxx.193  
독일에서 선수생활을 할때도 누구처럼 요란스레 태극기로 치장을 하고 다니지 않아도 항상 그는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을 알렸다. 그가 부상으로 긴 재활을 거치는 동안 국민들은 지금 박찬호에게보다 더한 야멸찬 비난과 조소를 던졌지만 그는 스스로 단 한번도 국민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독일로 귀화하면 더 큰 기회와 혜택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하지 않았다. 국가대표로의 부름에 만사를 제쳐두고 임했으며 입버릇처럼 이 축구의 기쁨을 우리나라에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감독으로서 경력은 밝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축협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모든 축구활동에서 파문당했을 때도 끝까지 놓치 않았던 것이 유소년축구였다. 모 방송사는 이 축구단이 비리가 있다고떠들어대기까지 했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2002해설 중에도 그는 국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바로 이게 너무 부러워서 한국에 축구를 전하고 싶었다고, 이래서 내가 축구에 미쳐 산다고 말했다(이 말은 직접 전파를 타지 않았다)

어떤 언론은 예전에 그를 비판하면서 이런 제목을 달았다.
축구대표팀감독이 축구와 가정 신 밖에 모른다고.
축협과의 원활한 교류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오늘날 외국인감독들이 오면서 이 얘기는 하나의 코미디가 되었다.

4백을 처음 시도한 대표팀감독
지금은 안하면 난리칠거 같다는 파워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한 감독,(그러나 당시 축협이 우린 체력은 무적이라고 거부)
평소의 선후배관계는 중요하지만 경기장에서는 대화를 위해 호칭을 빼라고 한 감독
기자회견시간을 정해놓았던 첫번째 감독

당시에 수없이 비난을 받은 이 모습들을 우린 2001년 히딩크감독이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보며 히딩크식 리더쉽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단 한번도 그 당시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유는 한가지. 자신은 패장이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름을 높이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국민들에게 쓴소리를 던진다.
자기를 위하여 다른 이들에게 쓴소리를 한적이 없는 이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쓴소리를 던지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
그는 애국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독일인이었다면 지금쯤 베켄바워를 능가하는
축구지도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곧은 성격이 감독으로도 행정가로도 나설수 없게 만드는
(물론 감독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견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네의 모습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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