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새벽잠이 없는 편이다.
아무리 늦게 자도 새벽 네시 반이면 칼기상을 하곤 한다.
문제는 그게 휴일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인데...
나는 새벽에 문자 한통을 받았다.
- 오늘 비가 많이 온다. 집에 있어라.
이게 웬 떡이람.
한껏 들뜬 나는 좋아하는 모자를 쓰고 바람막이를 입은 채 우산을 들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은근한 지갑의 무게가 좋고 종아리와 발목을 때리는
빗물이 좋아. 새로 산 휴대폰이 들어있는 주머니는 축 쳐졌는데 그게
허벅지를 때리는게 좋아.
클래지콰이의 after love를 흥얼거리며 빗소리가 우산을 때리는 소리가 좋고
빗물이 미끌려내리는 풀잎들이 예쁘다. 비를 피하고 있는 길고양이는 없을까
비가 내리는 도로에 낮게 깔린 빗물에 점멸등이 반사되어 비추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도로에는 지척지척 소리를 내며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에어컨을 끈지 얼마 안된 듯 약한 냉기가 맴돈다.
나는 핫도그와 콜라. 얼음컵 세 개를 사서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사실 내가 먹을 거라면 두 개만 사도 괜찮다.
어머니는 얼마전부터 내가 사 놓은 음식들을 자주 먹고 싶어 하는데
내 눈치를 본다. 누가 먹던 상관은 없는데 그게 신경이 쓰이시는 모양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 음식에 누가 손대는게 싫어.
이렇게 말하면 불효막심하고, 언제나 너에게 먹을것을 양보해주시던
어린시절 어머니를 떠올린다면 그럴 수 없을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몰라. 엄마는 옛날부터 뺏어먹었어. 진짜야.
아무튼 그런 이유로 얼음컵 세 개를 산 것이다. 두개는 내것. 하나는 어머니 것.
2.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온 몸을 지배했던것이 불과 1년전이다.
나는 그 때, 보증금 백만원 월세 이십오만원짜리 집에 살았다.
5년이 넘은 컴퓨터는 가끔 블루스크린을 띄우거나 괴상한 소리를 내며 멈추기 일쑤였고
최초 슈퍼플라워 파워를 달았던 컴퓨터는 파워가 나간 이후로 울며 겨자먹기로 저가
파워를 달아 근근히 연명해가며 썼다.
모든것이 좋지 않고, 힘든 시기였다.
당시 나는 게임하던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아무문제 없이 지내고 있는 것 처럼 포장해
이야기하곤 했다.
글쎄.
월급은 받자마자 없는 수준에 나는 항상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컴퓨터마저 꺼지고
휴대폰 요금마저 내지못해 도둑와이파이를 써가면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동네를 배회하곤
했다. 아 젠장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엄청 비참하잖아. 나 대체 어떻게 산거야 그때.
이건 정말, 믿기도 힘들고 생각하고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한번은 헤진 옷 대신
새 옷을 살 돈이 없어서 동네 의류함을 뒤져 적당한걸 찾아 빨아 입은 적도 있다.
나는 그 때 내가 처한 상황이 모두에게 알려지는 것이 꺼려졌다.
그래서 나의 생활을 아주 즐겁게 포장해 글을 쓰는 것에 열을 올리곤 했다.
그 글을 쓸 때의 나는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를 문 채 씨발을 입에 달고 글을 쓰곤 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것이 미웠다.
이사하던 날, 나는 남은 모든걸 털어 화물차를 하시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다.
아버지는 너 알아서 올라와라 하고 전화를 끊었고, 나는 그 모든것을 박스로 포장해
회사 동생의 차를 빌려 우체국 택배로 집으로 보냈다.
택배 비용은 어떻게 댔냐면, 로또 4등 된 돈으로 해결했다.
"행님 욕보셨소. 올라가가는 좀 이래살지 마소. 보는 내가 다 맘이 아리네."
"그래. 연락하고 지내자. 내 간다. 가라."
그리고 그 동생이 지금은 내가 다니는 직장 동료가 되었다.
이 질긴새끼.
모든 짐을 다 보내고 남은 것을 정리해야 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컴퓨터를 버릴 생각이였기에
그것만큼은 포장하지 않고 냅두고 있었다. 그 외에 정리하지 않은 쓰레기들과 이불 옷가지
같은 것들은 모두 재활용으로 버리거나 쓰레기봉투에 버릴 생각이였기에 지갑을 다 털어
백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사고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몇 개 신청했다.
컴퓨터는 마지막까지 코드를 뽑지 않았다. 정리를 하며, 컴퓨터를 하다 반복하는데
'아. 컴퓨터좀 하다 내일 오후에나 올라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컴퓨터에 블루스크린이 뜬 뒤로 더 이상 컴퓨터는 켜지지
않았다. 기막히고도 우연한 타이밍? 끝? 종말?
컴퓨터가 왜 꺼졌나는 물음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신기하게도 컴퓨터 코드를 뽑고,
재활용 쓰레기장에 그것을 내 놓았다. 그날은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날이였다.
푸르고 검은 그 새벽에 먼곳에서부터 뿌려지는 비를 맞으며 재활용장에 컴퓨터를 내놓고
나는 우산을 쓴 채 담배를 피우며 아주 낮게 읊조렸다.
"가. 너도 싫고 이 동네도 싫어. 고맙긴 하지만 싫어. 미안해."
나는 그 때 왠지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며 울었다.
새벽 네 시쯤 넘은 시각에 나는 베낭 하나와 쇼핑백 두 개를 들고 '월세'집을 나섰다.
이제 내 집이 아니니까. 비밀번호를 초기화 하는 것을 끝으로 아주 깔끔해진 빈 방을 보며
나는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도 그동안 고마웠어." 나는 집을 나와 첫차를 기다리며
샌드위치를 먹고 마지막으로 그 동네를 한번 둘러봤다.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와 있었다. 집에 온 뒤로도, 나는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잠을 자거나 간만에 온 동네를 둘러보거나 구석에 숨어 담배를 피우거나
집앞에 버거킹과 서브웨이가 있다는 문명사회에 감탄하며 지냈다.
그리고 며칠뒤에 재취직했다. 그게 지금의 이 회사다.
3.
글쎄 지금은 어떠냐고 한다면
일단 금전사정이라는게 굉장히 좋아졌다.
정말 불과 1년전에 거지처럼 지냈던게 꿈처럼 느껴질 정도다.
미친듯이 일만 하면 돈이 마법처럼 생겨나는 이 직장에서는 가능한 일이였다.
그래서 계속 일만 했는데 일한지 한달가량 되었을 때 월급명세서를 받고 나는
말도안되는 금액이 찍힌 통장을 몇번이고 확인했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줄 알았다.
한동안은 일만하고 시간이 없으니(지금도 없긴 하다만) 비싼 물건들을 마구 샀다.
사고싶던 수냉킷이 달린 총액 삼백을 약간 밑도는 컴퓨터와 무선 헤드셋 피규어 만화책
브로마이드 같은 것들. 그러고도 술을 마시거나 차를 빌려 짬날때마다 놀러다니고
그러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았다고 한다.
한 두어달 그렇게 살다 이제는 저축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요리를 잘 하니까, 언젠가 돈을 아주 많이 모아 볶음밥을 잘 하는 식당을 차리고싶다.
결혼은 잘 모르겠다.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그 상대방 입장이라는것도 있으니까.
안좋아진점이라고 한다면 집과의 관계다.
나는 부모님이 그런 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돈을 많이 버는 달은 부모님이 이런저런 이유를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백만원 이백만원씩 돈을 드리곤 했다.
아. 지금은 안준다. 안줄거야. 이거 다 내꺼임 ㅋ
그래서 관계가 굉장히 안좋다.
또 하나 안좋아진점이라고 한다면
하루 열다섯시간에 가까운 살인적인 노동량으로 인해 체중감소와
지속적 알콜섭취가 없으면 버티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물론 쉬는날은... 그래. 오늘같은날 쉬니까 됐다.
그 외에도 언급하지 못하는 정신적인 피폐함과 빈곤해진 감성같은 것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돈이 그걸 다 커버쳐준다. 개좋아. 완전사랑해.
물론 이건 다 내꺼니까 난 기부같은거 안하고 살거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나 하나만 잘살면 끝이다.
하하! 어디 덤벼보시지!
아디다스 티셔츠와 바지, 나이키 신발과 모자를 살 수 있는 자유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그걸 잃지 않기 위해 입으로는 욕을 하고 정신적으로는
괴랄해져가는데도 돈 버는것을 포기할 수 없다. 이러다 죽어도 좋아.
난 그래도 돈이 더 좋아. 라면살돈이 없어서 십원짜리 모아서 눈치보며
편의점에서 계산하던 그날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 죽어도.
4.
오늘은 비가오고 쉬는날이고, 그래서 기분이 좋아요.
항상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지하게 고민해주시는 여러분들을 사랑... 아니...
그냥... 사.... ...아니 그냥 좋아해요...
내가 힘들어 죽을 때마다 여러분들의 말이 없었으면 저는 진짜로 죽었을거에요.
따스한 세상에 여러분들이 있어서 고맙습니다. 진짜로 잘 살거에요.
번외)
일요일날 동생 내외와 할머니 산소에 갔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일하냐?"
"네"
"우린 지금 할머니 산소 갔다가 추어탕 먹으러 왔는데?"
"그래서요"
"아니 너 저녁까지 일하는데 우린 맛있는거 먹는다고."
"바빠요 끊어요."
이게 내가 전세대출을 고려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