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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개화기 속 극과 극의 입장을 취한 최익현과 김옥균
게시물ID : history_183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마존커피
추천 : 2
조회수 : 16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10 17:58:28
요즘 학교 시험 때문에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참 인상깊으신 분들인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최익현과 김옥균은 정말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두 인물이죠

최익현은 반외세에 보수 세력의 상징이었고 김옥균은 개화론자에 진보적인 세력의 상징이었구요

제 추측이지만 서로 굉장히 싫어하지 않으셨을까...합니다

최익현
최익현 이미지 1

진짜 진짜 보수적이셨던 분. 가난한 선비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셔서 또다른 보수파 이항로의 제자로 들어가 병과에 급제, 이조전랑까지 역임하심.

흥선 대원군 시절 경복궁 중건과 서원 철폐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결과적으로 흥선 대원군의 하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셨죠

흥선대원군이 물러나신 후에는 굉장히 개화적인 모습을 보여준 민씨 정권과 극심하게 대립하기도 하구요

강화도 조약이 체결될 당시에는 '5불가소'를 올려 조약의 모순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도끼를 앞에 놓고 조약을 맺을 거면 도끼로 자신을 죽여달라 말하죠

그러나 이분은 자기가 쉴세없이 계속해서 욕한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잔혹하게 시해당하자 이에 대해 누구보다 심하게 반발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단발령을 일제가 단행하자 "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저항도 하구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분노를 금치 못하며 74세의 나이에 의병을 일으키고 직접 지휘합니다.

물론 한계도 분명히 보여주시긴 하시죠.

관군이 의병을 진압하려오자 "나는 임금이 보낸 군대와는 싸울 수 없다"며 관군더러 의병에 합류하라고 간청하지만, 관군이 이를 거절하자

스스로 투항합니다. 성리학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얽혀있으셨던 거죠

그러나 그는 이로 인해 일본의 쓰시마 섬에 유배를 갈 때

"일본의 땅을 밟고 싶지 않다" 며 몰래 신발 속에 조선의 흙을 담아가기도 하고

그곳에 가서도 "일본인이 주는 밥은 먹고 싶지 않다" 며 단식투쟁을 벌이시다가 순국하시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꼬장꼬장한 유생이고 또 이분이 지키려고 했던 가치가 좀 오늘날의 잣대로 평가하면 낡은 가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한 보수는 이런분을 두고 쓰이는 말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위해서,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신 분이니깐요

진짜 보수는 이 분처럼 자신의 가치를 위해서 목숨을 내던지시는 분이죠

오늘날 보수의 의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걸로 변질된거 같아 사실 좀 안타깝습니다.

이분이 진짜 보수죠. 

참 훌륭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김옥균
김옥균

갑신정변의 주역

이분을 친일파라며 매국노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로서는 진심 이해 불가

진짜 친일파는 같이 갑신정변 일으킨 박영효 정도가 되겠죠

뭐 정확히 말하면 친일이지만 매국은 아닌(?) 그런 케이스

일제를 이용하려 했던 건 맞지만 일제한테 나라를 팔아먹을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니깐요

(물론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한게 한계임은 인정합니다)

갑신정변 14개조 정강에 첫 번째가 '청에 압송된 흥선대원군을 돌아오게 한다' 인데 그게 김옥균 때문에 생겨난 조항이라 합니다.

흥미로운건 이분이 안동김씨라는 사실이죠. 흥선대원군과 원수를 진 그 집안.

그럼에도 이 분께서는 우리 나라의 국왕의 아버지가 다른 나라에 가 있는것이 말이 되느냐, 나는 안동김씨이기에 앞서서 조선 백성이다라고 말하시며

그런 조항을 넣게 되시죠

갑신정변은 3일만에 끝나고 김옥균이 꿈꾸던 개혁은 좌절되지만 이 분이 훌륭하신 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음

그 예로 일본에 망명간 상태에서 정부가 척살령을 내렸는데도 고종에게 진심을 담아 조언하는 내용의 서한도 보내구요

허나 안타깝게 돌아가시죠. 민씨가 얼마나 독한 여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척살령을 내린 후 결국 죽이는데 성공하자

이 분의 시신을 8등분하여 8도에 하나씩 걸어놓았다 합니다 

어쨌건 수단적인 면에서 일제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한계가 있고 결과론적으로 갑신정변의 실패로 조선의 개화정책이 부진해진 것도 맞지만

여흥민씨가 꽉 쥐고 놓지 않으려했던 거의 독재 수준의 권력에 작은 저항이나마 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굉장히 뛰어난 지식인인데 이 분을 품기에는 시대가 좀 너무 혼란하지 않았나 하구요




서로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 두 사람이고 또 두 분다 한계를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어쨌건 정말 훌륭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익현이 신봉했던 성리학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고 또 김옥균이 일제에 지나치게 의존한 건 분명히 잘못한 점이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던졌다는 점에서 정말 존경할만하다고 봐요

현재 대한민국 국민 중에 이 분들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누가 저런 격동기 속에서 저런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참된 보수와 참된 진보의 상징과도 같은 분들인 거 같네요

걍 공부하다가 머리도 시킬 겸 좀 많이 인상깊어서 써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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