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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중순의 어느날...
2016년 2월 중순의 어느날...
오늘은 회사생활 중에서 중요한 날 중의 하나입니다.
바로바로... 작년업무평가에 대한 메니저의 결과가 통보되고, 그에 따른 새로운 연봉과 보너스, 그리고 승진여부가 결정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면담을 준비합니다.
일단 작년에 제가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따박따박 정리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메니저라는 사람이 저에게 관심이 많아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는 없는 바... 어떻게 하든지 자신을 어필한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써야 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도맡아했던 업무는 물론, 숟가락만 살짝 얹었던 프로젝트, 어깨 너머로 슬쩍 곁눈질했던 프로젝트까지 다 집어넣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오고가다 슬쩍 들었던 프로젝트까지 웬만한 건 다 집어넣습니다.
아... 물론, 집어넣기만 하면 안 되고,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올 지 모르니 (물론 우리 매니저가 그렇게 날카로울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무슨 프로젝트가 뭐 했던 프로젝트냐... 하는 개념은 있어야겠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올해 해야할 일 보여주고, 어디어디에서 더 성과를 보여주겠다, 어디어디에 더 노력을 기울여서 우리 부서에 이만한 기여를 하겠다... 라는 것도 준비해야 하고...
메니저가 나에게서 기대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 지, 요것도 파악해서 가려운 곳도 팍팍 피가 나도록 긁어줘야 하고...
이렇게 며칠을 준비해서 미팅을 준비합니다.
캐나다의 연봉인상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자면...
그 전까지는 그저 소문으로만, 그리고 대체적인 통계적로만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우리 회사의 연봉에 대해서 파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다른 부서의 메니저가 자신 팀의 연봉인상에 대한 메일을 저랑 친한 우리팀 직원에게 잘못 보냈고, 그 친구가 저에게 그 메일을 보여주면서... 어느정도 파악이 가능했죠...
기본적으로 연봉 인상률은 2%가 기준인 것 같습니다.
즉, 잘하지도, 잘못하지도 않았고, 그저 자기 임무만 열심히 했다... 영어로는 Meet the expectation 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에 2% 인상이죠... 거의 대부분의 직원이 요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예전에 수학을 잘했던 분은 정규분포라는, 제가 누웠을 때 제 배를 보는듯한 그래프의 중앙부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걸 기준으로 좀 못했다... 즉, Below the expectation 라고 하면 1%, 심지어는 0% (- 는 보지 못했습니다. - 라면 아마 회사를 나가야 하지 않을까...), 잘했다 라고 하면, 즉 Above the expectation 이라고 하면 3%, 4%... (제가 봤을 때는 5%가 최고였습니다만... (사장의 아들이거나 하면) 더 높을 수도 있겠죠?
이를 기준으로 45,000불의 연봉을 받는 직원이 10년동안 꾸준히 기본적인 연봉인상만 기록하면서 근무를 했다면, 약 54,000불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갑갑하죠...
요래서 승진이 중요합니다. 승진을 하면 바로 기본 5% 깔아줍니다. 그것도 기본 인상과는 별도로...
이를 바탕으로 5년차와 10년차 때 승진을 한번씩 했다고 생각하면... 59,200불의 연봉이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5,000여불의 차이가 있군요... 머... 그냥 그렇다구요.
물론 이 연봉인상은 회사마다, 부서다마 다 다를 수 있습니다만, 우리 회사처럼 특별하게 기류에 편승하지 않고 꾸준한 회사들은 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하네요.
이미 연봉인상과 보너스는 작년말 면담으로 정해진 터... 오늘의 주제는 과연 승진을 어떻게 어필하느냐가 관권입니다.
한국은 년차가 되면 바로바로 승진대상에 포함되고, 심사되고 그러는 것 같지만, 여기 캐나다는 다릅니다.
내가 승진을 원하면 승진을 원한다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메니저는 '아 이놈은 승진에는 별 관심없는 아주 착하고 순딩순딩스런 부하구나...' 라고 생각해서 아예 승진대상에서 제외시켜놓습니다.
따라서 기회 있을 때마다 '나 승진에 관심 많아요...' 라고 김국진 어투로 어필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메니저와의 면담시간이 그렇게 어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중요한 시간이죠.
승진 어필을 위해서 열심히, 라임에 맞추어서 이야기할 사항을 조목조목 준비합니다.
드디어 미팅시간... 현실감을 주기 위해서 메니저와 직접 했던 영어버전으로 올려보겠습니다.
메니저: Good Job, This is your new salary and that is your bonus, good?
1년동안 고생 많았으... 요거, 요거 니가 작년동안 한 일들이고... 올해는 저거, 저거 더 신경쓰면 좋겠고... 니가 작년동안에 한 일을 감안해서... 요게 너의 새로운 연봉이고, 요건 보너스... 어때?
나: (What a mouse tail!) Oh... Thank you, thank you...
(니 같으면 그 돈 갖고 살겠냐? 라고 따지고 싶지만...) 오우... 땡큐, 땡큐
메니저: Keep on going, let's finish it.
그래... 올해도 작년처럼 열심히 해 보고... 머 더 할 이야기 없으면 끝낼까?
메니저가 슬쩍 미팅을 마치려고 합니다.
나: Action Stop, is it finished?
동작그만... 여기서 이야기 끝내기냐?
메니저: Anything more?
머 할 이야기라도?
나: P... Pr... Promotion...
그래 내가 여기서 일한 지 꽤 됐고, 그동안 성과도 어느정도 있으니... 스... 스... 승... 진...
철저한 유교문화에서 자란 저에게는 나를 스스로 어필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아.. 시간되면 그냥 재깍재깍 알아서 올려주지...
메니저: What?
머라고?
나: PROMOTION?
(우띠...) 나 승진은 어떻게 됐냐고?
메니저: Ah, promotion? not yet
아... 프로모션... 그게... 니가 열심히 한 건 알겠는데, 아직은 이른 감도 있고, 좀더 개발쪽으로 성과를 더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아... 진짜... 그 참 드럽게 까다롭게 구네... 마지막 어필을 위해서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어필 랩을 선 보입니다.
웃지마...
요... 체키럽... 잘 들어 봐... 내가 지금부터 님 귓구멍 달팽이관에 팍팍 박히게 하겠어...
애들이 얼마나 이 자릴 싫어하는 지, 님은 그 자리에서 안 보이는 지...
작년에 이 자리 왔던 놈만 4명, 그런데 힘들다고 떠난 놈만 3명, 이 자리 수명은 단명...
애들 새로오면 나만 바빠, 걔네들 가르치느라 바빠, 그렇게 키워놓으면 그놈들은 떠나느라 바빠, 그럼 그 일들은 또 나에게로 와서 바빠, 그래서 주말에도 바쁜 나는 나쁜 아빠...
내가 끝낸 프로젝트만 이것저것요것, 발 담근 프로젝트는 저것고것그것, 데일리 서포트만해도 상당할 것...
우리팀 애들도 나를 인정, 다른팀 메니저도 나를 인정, 인지상정이면 님도 인정?
이렇게 열심히 어필 랩을 선보였건만, 메니저는 요지부동입니다. 아직은 좀 더... 라는 기세...
우띠... 결국은 알았다... 라고 이야기하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서 씩씩거리고 있는데, '띵똥'하고 셀폰으로 메시지 알림이 옵니다.
확인하니, 같은 팀이었다가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로 옮긴 중국여자애였습니다.
간단히 답장을 보냅니다.
'니하오' '응, 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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