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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갤문학) 샌드위치
게시물ID : humordata_18262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눔계
추천 : 14
조회수 : 2624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9/07/31 0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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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멍이 뚫린 자정이었다.
핸드폰에선 호우경보 재난문자가 시끄럽게 울려댔고 편의점 야외테이블은 접혀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다.
오늘같은 날씨라면 담배가 다 떨어진 헤비스모커라도 
'비 좀 그치면 나갈까.' 하며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아침까지 빗줄기가 끊기지 않으면 좋을텐데.

오랜만의 여유에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담배로 도미노라도 할까.
편의점 미식회를 열어볼까.
들려오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춤출까.
정말 한없이 무익한 생각을 하며 손님이 없는 것이 생각보다 심심해 곤란한 참이었다.
문이 열렸다.
체격이 왜소해보이는 소년이었다.
우산이 의미가 없었는지 어깨죽지가 홀딱 젖어있었고 젖은 앞머리에선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있었다.

소년은 말없이 카운터 앞에 서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쿠..쿠바나 더블 한 갑 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거 아니니.
직감이고 뭐고 넌 어딜봐도 미성년자야.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신분증 한 번만 확인할게요."
소년이 제시할 신분증은 있을 리 만무했다.

"지..집에... 두고왔어요..."
소년은 내 눈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나는 쐐기를 박기위해 말했다.
"나라사랑카드는 있어요?"

내말을 들은 소년은
"나라사랑 카드요?"
라고 말했다.
처음듣는 눈치였다.

"가라 그냥"

"네."

담배를 살거면 좀 성의라도 보이지.
하다못해 군가를 외울정도의 노력이면 속아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담배 한 대를 꺼내물고 편의점 문을 열었다.
곧바로 들어오는 빗방울에 담배가 조금 젖었지만 불이 안붙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까우니 그냥 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담배에 정신팔려 미쳐 보지못했던 정면에는
우산을 쓰지않고 비에 쫄딱 맞으며 서있는 소년이 있었다.

담배를 못 산게 그렇게 충격이 컸던것일까.
문득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손님이 두고간 우산을 꺼내 들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친구야, 이게 그정도로 충격받을 일이야?"
내 말을 듣고도 소년은 말 없이 서있었다.

난 우산을 소년에게 씌워주고 말을 이었다.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면 우리가 벌금물어. 어쩔수가 없어."
소년은 말 없이 서있었다.

"한 대 정도는 줄게. 그러다 감기걸리겠다."
아까 살짝 젖었던 담배를 건넸지만 소년은 내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불이 붙지 않은 담배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더는 필 수 없을만큼 젖었다.
말 없이 서있던 소년은 우산과 내가 담배를 내팽겨치고 는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나는 새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소년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지켜보았다.




열돔이 형성된 한반도의 장마는 불안정했다.
전날의 폭우로인해 습기만 올라가고 정작 비는 내리지않는 불쾌한 날씨였다.
교대직후 23도로 맞춰져있는 에어컨 온도를 곧바로 17도로 내린 뒤 새벽의 날씨를 검색하고있었다.
'흐림, 구름많음, 습도 95%, 강수확률 20%'
신은 내 편이 아닌건가.

카운터에서 보이지 않는 뒷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치우고는 "어서오세요." 라고 말했다.
거울에 비친 손님은 생필품 진열대 앞에 서서 1분정도 무언가를 찾다가 카운터 앞에 섰다.
어제의 소년이었다.
소년은 한 손에 들고있는 물건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정사각형의 작은 상자.
002 바른생각
'낀듯 만듯 0.02cm 바른생각'

숫기없어보이는 어린 학생이 이걸 쓰려고 사는걸까.
쓸 일은 없어보이는데.
아무렴 상관없다.
편의점에 있는 콘돔은 미성년자에게도 판매가 가능하다.
나는 바코드를 찍은 뒤 말했다.
"4500원 계산 도와드릴게요."

소년은 말없이 콘돔을 주머니에 넣고 정문으로 나갔다.
왠지모르게 기분이 찜찜했고 뇌는 니코틴을 원했다.
담배를 입에 꺼내물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들어오려는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담배를 입에서 빼고 다시 카운터 속에 들어가 "어서오세요." 라고 말했다.

두명의 어린 남자였는데, 능글맞은 웃음과 반항심이 엿보이는 주름진 얼굴은 그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금방 깨닫게 해주었다.
오른팔에 기분나쁜 잉어 문신이 그려져있는 남자가 드센 억양으로 말했다.
"아까 그새끼 뭐라고하면서 샀어요?"
나는 그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러자 그는 짜증나다는듯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 아까 어떤 찐따새끼가 콘돔사갔잖아요. 뭐라고 하면서 샀냐고"
머릿속에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소년이 담배를 사려했던 이유.
소년이 담배를 거절당하자 비를맞으며 서있던 이유.
소년이 콘돔을 샀던 이유.
"딱히 별 말 하지 않았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문신이 없는 남자가 말했다.

"아니 그럼 씨발 미성년자한테 콘돔을 그냥 팔아도 돼요?"
오른팔에 잉어 문신이 있는 남자가 이마에 손을 대고 앞머리를 넘기며 맞장구쳤다.
"와 이거 안되겠네"
목적이 그거였니.
더러운새끼들.

"법적으로 문제 없습니다. 오히려 미성년자가 피임없이 성관계를 하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문신이 없는 남자는 
"아 씨발 재수없네."
라고 말하며 슬리퍼 신은 발로 편의점 문을 밀어 열고 나갔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공부보단 메이플스토리가 우선이었던 나는, 당시 고레벨의 계정을 갖고 있었으며 그건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당연히 인간관계보단 메이플스토리를 중요시하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와 노래방을 가기보단 피씨방을 향하고, 돈으로 옷을 사입는것보단 메이플스토리의 아이템을 샀던 나는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그들에게 모든걸 빼앗겼다.
내겐 메이플스토리가 인생의 전부와 다름없었으니 인생의 전부를 빼앗겼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게 돈을 요구했고 계정을 요구했고 대리육성을 요구했고 모든걸 요구했다.
폭력은 부지기수.
어떤놈은 여자한테 일방적으로 차이고나서 나보고 '너도 고백해' 라는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한 적도 있었다.
당연히 따랐다.

고등학교 2학년때의 일이다.
밴드의 리드기타를 맡고있던 친구와 카페에 들려 자작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Chaser Riding에 꼭 신디사이저를 넣어야되냐는 작은 갈등이었는데 그는 신디의 음을 빼길 바랬고, 나는 신디의 음이 들어가길 바랬다.
서로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진지한 음악관을 토로하던 중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의 동생에 관한 전화였다.
평소 마음씨좋고 착한 그와는 정 반대로 그의 동생은 문제아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반 친구를 때리는 등 질나쁜 행동을 하다 중학생이 되고는 비행이 밑도끝도 없이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니 동생 도저히 안되겠다. 니가 좀 혼내줘라.' 라고 울며 그에게 도움을 청했고, 우리의 음악 논쟁은 잠시 중단됐다.
나는 그의 집까지 따라갔다.
집까지 가는 길에 들었는데 그의 동생이 학교에서 음식이 담긴 식판을 반 학생의 얼굴에 던졌고, 그로인해 피해학생은 얼굴에 화상을 입고 시력에 이상이 생길수도 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학교에 불려가 사죄했고, 전혀 반성하지 않는 아들을 어찌할 수 없던 어머님은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다소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가방을 바닥에 내던지고 방 문고리를 돌렸는데, 방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그는 문이 부서질세라 두드리며 소리쳤다.
"야 김대현 나와!"
문이 열리고 그의 동생은 눈치를 살피며 쭈뼛쭈뼛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도 놀랐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그의 동생은, 감히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을정도로 왜소한 그저 순진무구해 보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으니까.
중학교 1학년 때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그런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를 보고 그렇게나 겁먹었었지.
친구는 동생을 죽여라 팼다.
그냥 죽여라 팼다.
이 말 말고는 떠올릴 수 있는 표현히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변명을 들을 채도 없이 머리채를 붙잡고 들어올려 바닥에 내팽겨치고 넘어진 동생의 복부를 발로 찬 뒤 고통스러운듯 기침하며 도망치려는 동생의 머리채를 다시 들어올려 뺨을 치고 피를 흘리며 '이제..그만...'이라고 흐느끼는 동생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올려 다시 바닥에 내팽겨치며 소리지르는 친구의 모습은 다소 섬뜩했다.
"이번엔 분명 말로 안 한다 했지?"
입술이 불어터져 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지고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그의 동생은 무릎꿇고 빌며 
"다시는 안그럴게 다시는 안그럴게."
라고 말했지만, 그는 다시금 복부를 걷어찬 뒤 동생의 방에서 가방을 꺼내 지퍼를 열고 뒤집었다.
그 가방에선 말보로 레드와 아이스볼트 GT , 디스 아프리카 룰라와 라이터가 쏟아져내렸다.
담배곽을 들어 동생의 얼굴에 세게 던진 뒤 그는 섬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미안하다. 체이서 라이딩 얘기는 내일 하자."

돌아가는 길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를 그렇게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저 순진무구해보이는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야기는 다시 편의점으로 이어진다.
심한 괴롭힘을 당하는 듯 보이는 소년이 가여웠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있겠는가.
나는 힘이 없다.
애초에 어른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부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교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찰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광기어린 학교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고작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학교폭력을 진정시킨다?
말이 되는 생각을 해야지.
왜, 걔네들 찾아가서 '사이좋게 지내라.' 라고 얘기하게?
퍽이나 좋은 생각이다.
넌 소년을 도와주려는 게 아니야.
그저 찜찜한 상황을 타파할 자기만족을 찾아헤매는 거 아니야?

무력함 뒤에 밀려오는 깊은 공허함은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자기혐오에 침식된 새벽은 빠르게 지나갔고 아침이 되었다.
7시 30분, 소년은 편의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에 맞지않게 등을 굽히고있고 서늘한 에어컨 바람 탓인지 몸을 웅크려 팔짱을 끼고있는 소년은 진열대 앞에서 신라면 작은컵을 하나 꺼내들었다.
소년을 보자 무력함과 자기혐오는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나는 샌드위치와 초코우유를 하나 집었다.

"아침엔 라면보단 빵이 낫지 않아?"
내 말을 들은 소년은 말 없이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보았다.

"담배는 못줘도, 이런 건 줄 수 있어."

그를 도와줬다곤 할 수 없다.
그저 소년에게 샌드위치를 건넨 것 뿐이다.
그가 강해지기를 바라며.
억겁의 시간이겠지만, 지나고나서 과거의 자신을 한 컷 비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https://mega.nz/#!UMpiWCwY!Ks6qcTGBFihZkGiQ_5543ZkHDtTjanxVgL18hnpQMBE 
당시 밴드부원과 함께 작곡한 자작곡 -Chaser Riding

신디사이저를 넣을지 말지에 대한 그와의 갈등이 어떻게 끝났는지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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