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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똥싼 이야기
게시물ID : humordata_18255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ory
추천 : 13
조회수 : 3161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9/07/25 18: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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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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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겨울. 군동기들과 술자리 약속을 잡았던 날 은사님이 돌아가셨다.
다행히 두 장소 사이에 커다란 대학 부지 하나가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술자리에 먼저 가서 어울리다가 조문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되겠다, 하고 그때는 가벼이 생각했다.

군동기들과의 술자리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같이 씹을 거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취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어쩌다보니 취하지 않을만큼 마시겠다는 내 의지보다 좀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렇게 나와 캠퍼스를 휘적휘적 걸어가며 장지로 향하던 중 눈이 내렸다.
하얗고 이쁜 날에 돌아가셨네, 하면서 중간쯤 왔을까.

똥이 마려웠다.

여러분들은 급똥이 찾아왔을 때 신체 시스템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한 번이라도 밖에서 급똥을 맞이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위기와 평화의 반복, 그리고 위기가 찾아올 수록 심해지는 강도.

나는 이것을 웨이브라고 부른다.

첫 번째 웨이브.

보통은 이때 어느정도는 그 녀석의 힘을 측정할 수 있다.
이 측정된 힘으로 오늘은 집에가서 쌀 수 있겠다, 혹은 당장 화장실을 찾지 않는다면 오늘을 평생 기억할지도 모른다. 하는.
그날 그 녀석의 힘은 강력했다.

더이상 걸을 수 없었다.
첫 번째 웨이브부터 이토록 온 몸의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녀석이라니.
심상치 않았다.
이 웨이브가 끝나면 서둘러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

체감상 한참동안 길에 서서 눈을 맞으며 웨이브를 버텼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마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감상하는 운치있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오로지 똥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걸 싸겠다는 몸뚱이와 싸면 안 된다는 머리가 치열하게 싸우고 버티는 중이었다.

웨이브가 끝났고 나는 서둘러 주변 건물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래 대학교인데 건물마다 화장실은 당연히 있겠지.
나름의 합리화와 함께 어떻게든 여유있어 보이는 걸음걸이로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당도한 건물 앞에서 나는 잠겨있는 문을 확인하며 좌절에 빠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웨이브

문 손잡이를 잡은채로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잡을 게 있어서 손에 온 힘을 집중하여 바들바들 떨며 문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방학, 그래 그 학교는 방학이었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으니 문이 잠겨 있는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학교는 이렇게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한 가운데서 급똥을 맞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화장실을 개방하지 않은 것인가.

하나는, 한 건물만은, 열려있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이 나에게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유리문을 깨고 들어가서 싸고 변상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유리문을 깨기 위해 몸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유리문을 깰 이유가 없어질 것 같아서 곧바로 포기했다.

중간에 건물 사이 구석이 보였으나 그 길이가 길지 않아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보일까봐 그냥 돌아서버렸다.

두 번째 웨이브가 지났고 나는 아까보다는 조금 서두르는 걸음으로 두 세 건물을 더 방문했고,
얻은 것은 이 학교가 보안에 얼마나 철저한 지에 대한 정보 뿐이었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몸에서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발에 채이는 눈이 너무 무거워졌고 이제 웨이브가 끝났는데도 무엇인가가 내 항문에서 조금씩 비집고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래 골목을 찾자.
눈이 뒤집힐 것 같았던 나는 세 번째 웨이브는 못 참을 것 같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다행히 내 시야에는 두 건물의 틈이 보였고 벨트를 풀며 그 사이로 들어가며
세 번째 웨이브의 시작과 함께 바지 지퍼를 내릴 찰나였다.

세 번째 웨이브

골목으로 들어서자 들어서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환한 불빛이 나를 덮쳐왔다.
큰길이었다.

얼마나 헤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곳은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건물이었다.
골목은 큰길과 닿아있었고 수많은 대학생들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순간 풀렸던 긴장과 더해 세 번쨰 웨이브는 가혹했다.
벨트를 다시 멜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냥 벨트를 잡아당겨 허리에서 빼버렸고 한 팔로 벽을 짚은채 어금니를 깨물었다.

여러분은 언제 신앙심이 생긴다고 생각하는가.
그때도 지금도 무교인 나는 내가 아는 신의 이름은 다 생각하며 빌었다.
이렇게 로테이션으로 기도를 돌리다가 진짜 존재하는 신이 하나라도 걸려서 나를 구원해주길 바랐다.
정신이 혼미해졌고 땀은 비오듯 쏟아졌다.
신은 일단 없거나 아니면 이정도 간절함은 아직 이겨낼 시련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옷을 입고 있는지 눈이 내리고 있는지, 여기가 이승인지 사바세계인지 뭐 아무것도 상관이 없었다.

턱을 지켜들고 몸을 베베 꼬면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누가 본다면 어디 사막에서 갓 탈출하여 목이 너무 말라 눈이라도 먹으려고 뛰쳐나온 정신나간 놈인 줄 알았을 거다.
내가 내 눈을 본 것도 아닌데 분명 눈이 풀렸겠다고 생각했다.
시야가 멀어지고 소리도 잘 안들렸다.
세 번째 웨이브를 그렇게 견뎌내면서 나는 네 번째 웨이브가 찾아왔을 때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옷을 입고 싸든가, 벗고 싸든가.

네 번째 웨이브.

나는 세 번째 웨이브가 끝나자 마자 뒤로 돌아 달렸다.
아까 두 번째 웨이브때 눈에 들어왔던 건물과 건물 사이 틈으로 향했다.

선택지는 없었다.
그 곳에 도착하기 전에 싸느냐, 아니면 도착한 후에 싸느냐, 이 차이밖에 없었다.
나는 달리면서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가방을 풀숲으로 던져버렸고,
입고있던 자켓도 벗어 던져버리며 달렸다.
달리는 도중에 네 번쨰 웨이브가 찾아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는 틈에 들어가기 직전 바지 지퍼를 내리는 데에 성공했고 거의 슬라이딩 하듯이 틈 사이로 들어갔다.

몸을 벽에 기댄채로 똥을 쌌다.
바닥은 하수구 같은 철망이 주욱 이어진 형태였다.
아래는 보고싶지 않았다.
혹시나 지하 동아리방 같은 거라도 있을까 싶은 생각 때문에 쉽사리 아랠 보지 못했다.
사람들 목소리라도 들리면 나는 고개를 숙여 머리를 붙잡고 최대한 웅크렸다.
한 손으로는 옆에 난 잡초를 당겨 내 최소한의 존엄을 가렸다.

항문에서 소리가 날 때 마다 인간으로서의 무언가가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으론 한 없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되풀이했다.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죄송합니다 하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제서야 내리는 눈 차가움과 발 밑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볼일을 마치고 휴지로 뒷처리를 한 뒤 가방과 자킷을 찾아 은사님의 장지로 향했다.
다시는 이 캠퍼스에 오지 못하겠지.
그 긴 길을 걸어가며 뒤 한 번 돌아볼 수 없었다.

아주 가끔 사회생활을 하며 그 대학 출신의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나는 묘한 채무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제가 당신의 모교에서 똥을 쌌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속으로 절을 하며 사죄하곤 한다.
출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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